[단독]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병원 인증마크
  • 노진섭 기자·김헬렌 인턴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8.30 17:01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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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평가인증원, 병원에 유료 컨설팅 ‘강요’…병원들 “복지부에 찍힐까 불이익 감수”

“자신에게 과외를 받은 학생에게만 높은 시험 점수를 주는 나쁜 교사와 같다.” 병원 단체의 한 고위 관계자가 정부의 잘못을 꼬집는 말이다. 병원은 4년마다 ‘의료기관 인증’이라는 ‘시험’을 치른다. 정부는 병원의 의료서비스와 안전을 평가하고 이를 통과한 병원에 ‘보건복지부 인증마크’를 준다. 이 마크는 국민이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표시다. 그런데 정부는 병원을 상대로 유료 컨설팅을 받으라고 강요한다.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2300만원짜리 ‘과외’를 받은 병원은 ‘시험’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다는 인식이 병원 업계에 팽배하다. 정부가 인증마크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는 2004년 국민에게 안전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병원을 평가하는 ‘의료기관 평가제’를 시작했다. 당시 약 300곳의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하다가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등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인증마크’가 병원의 홍보수단으로 변질됐고, 병원은 평가 기간에만 반짝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일 뿐이어서 인증의 의미가 무색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복지부는 2010년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인증원)에 평가인증을 위탁했다. 평가인증을 민영화한 것이다.

 

인증원은 미국 인증기관(JCI)을 벤치마킹해서 설립됐다. 인증원은 2011년 국제의료질관리학회에 회원으로 가입했고 2012년 국제인증을 획득하며 인증기관으로서의 공신력을 확보했다. 인증원은 2011년 JCI를 본떠 ‘인증 준비 컨설팅’도 시작했다. 평가인증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막막한 병원에 컨설팅을 해 주는 것이다. 인증원 관계자는 “컨설팅은 병원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기관 인증마크(왼쪽 작은 사진)와 서울 여의도 소재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수백만원짜리 컨설팅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컨설팅 문제를 두고 병원 업계는 불만이 많다. 수백만원짜리 컨설팅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의료인증원은 인증만 하고 컨설팅은 하지 않는다. 병원 단체 관계자는 “병원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기관이 유료 컨설팅까지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돈을 받고 인증마크를 파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병원에서 인증평가 준비를 담당하는 실무자는 “그 제도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말이 많았지만 인증원 뒤에 복지부가 있어서 대놓고 불만을 말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불만을 얘기하면 복지부에 찍혀서 인증을 받지 못하는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컨설팅 비용은 컨설턴트 수, 기간, 병원 종류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컨설턴트 1명이 하루 컨설팅을 하고 받는 비용은 100만원대이고, 6명의 컨설턴트가 나흘 동안 컨설팅을 하면 그 비용은 2000만원대로 껑충 뛴다. 이 컨설팅 비용에 대해 인증원은 “수당 및 여비 등 컨설팅 서비스 제공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과 중소병원 및 요양병원 등 소규모 병원의 부담을 고려해 산정했다”며 “병원 규모에 따라 컨설턴트 인원과 기간을 안내해 주기도 하고 병원이 그 금액을 부담스럽게 느끼면 더 낮은 비용의 컨설팅(컨설턴트 인원과 기간이 줄어든)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협상에 따라 비용을 깎아주는 셈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보통 2~3명의 컨설턴트가 2~3일에 걸쳐 컨설팅을 하는 데 비용이 200만~300만원 든다”며 “사설 컨설팅업체보다 조금 싼 편이지만 반(半)강제성이어서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평가인증을 받기 위해 반드시 사전에 컨설팅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게 인증원의 주장이다. 인증원은 “병원이 컨설팅을 받지 않아도 평가인증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인증규정집’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증규정집은 오히려 인증원의 컨설팅을 받도록 부추기는 수단이라는 게 병원 현장의 목소리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인증규정집에는 기본적인 내용만 있고 평가기준이나 세부항목은 없다”며 “실제로 평가가 시작되면 병원을 조사하는 평가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80% 이상 작용한다”고 말했다. 또 사설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인증원이 평가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며 “인증원 홈페이지에 관련 질문을 보내서 답을 받기까지 몇 개월씩 걸리고 제대로 된 답변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병원은 인증원 컨설팅 대신 사설 컨설팅업체의 자문을 받을 수 있다. 사설 컨설팅을 받으면 노동보험에 의한 고용환급으로 최대 100%까지 환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설 컨설팅을 받는 병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인증원의 컨설팅은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컨설팅을 받으라고 압력이 들어온다”며 “인증원의 컨설팅을 받지 않으면 평가인증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인증원은 “컨설팅 부서와 평가 부서는 별개이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컨설팅을 받은 것과 무관하게 평가가 이뤄진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인증원은 다양한 방법으로 컨설팅을 종용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한 병원 관계자는 “평가위원이 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증원 컨설팅을 받지 않고 어떻게 평가를 받을 생각이냐고 따지다시피 한 경우도 있었다”며 “말이 선택사항이지 인증원 컨설팅은 반강제 사항”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병원에 온 평가위원이 인증원 컨설팅을 받았는지를 대놓고 묻기도 한다”며 “인증원 컨설팅을 받지 않았거나 사설업체의 컨설팅을 받았다고 하면 그때부터 ‘그러니 이 모양’이라며 별의별 꼬투리를 잡기 시작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평가위원이 꼬투리를 잡아도 ‘인증원 컨설팅을 받았다’는 말을 하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간다”고 덧붙였다.

 

 

인증원 컨설팅 받은 병원 962곳

 

인증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 6월 현재까지 1565개 병원이 인증원의 평가인증을 통과해 ‘인증마크’를 병원에 붙였다. 상급종합병원·전문병원·요양병원·정신병원은 의무적으로 평가인증을 받아야 하고 치과병원·한방병원·의원급병원 등은 자율인증 대상이다. 이 가운데 인증원의 컨설팅을 받은 병원은 962곳이다. 병원은 4년마다 평가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때마다 컨설팅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사실상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 병원 관계자는 “곧 평가인증을 받을 시기가 되는데, 사실 4년 전 컨설팅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받을 필요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도 “그러나 인증원이 평가기준을 자주 바꾸고 까다롭게 만들어 컨설팅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놨다”고 지적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증원은 2014년부터 컨설팅 방식을 확대하며 ‘컨설팅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인증원 컨설팅은 ‘인증준비 컨설팅’ ‘모의조사 컨설팅’ ‘맞춤형 컨설팅’ 등이 있다. 인증준비 컨설팅은 평가인증을 받기 전에 병원이 준비할 점을 교육한다. 모의고사 컨설팅은 실제 평가인증 과정을 병원이 미리 받아보는 것이다. 맞춤형 컨설팅은 의료인 교육 등 특정 병원의 특성에 맞춘 내용이다. 병원 관계자는 “평가위원과 컨설턴트는 대부분 대학병원 의사와 간호사 출신”이라며 “물론 자신이 컨설팅한 병원에 평가위원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평가위원과 컨설턴트는 서로 봐주기식 평가인증을 하는 것 같다”며 의문을 표시했다.

 

컨설팅 이후에 실제 평가인증을 받을 때도 병원은 인증원에 ‘인증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인증원에 따르면, 277개 병상의 종합병원의 경우 평가위원 4명이 4일간 평가할 경우 24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상급병원이나 전문병원은 이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그나마 요양병원과 정신병원은 정부로부터 그 비용을 지원받는다. 그러나 인증을 받는 데 실패해서 평가인증을 다시 받을 때는 그 비용을 병원이 부담해야 한다. 한 병원 관계자는 “차라리 몇 백만원짜리 컨설팅을 받아 한 번에 평가인증을 통과하는 게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래저래 인증원의 컨설팅을 피해 갈 수 없도록 씨줄과 날줄이 얽혀 있다”고 밝혔다.

 


‘컨설팅 받으면 100% 인증’ 인식 팽배

 

이런 배경 때문에 ‘인증원 컨설팅=100% 인증’이라는 인식이 병원 업계에 만연해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인증원의 컨설팅을 받은 병원은 인증마크를 받는다는 인식이 병원 업계에 퍼져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증원은 “병원이 인증원의 컨설팅을 받았다 하더라도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취약점 및 미비점을 개선하지 않으면 인증 획득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병원 업계에 뿌리내린 불신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복지부를 업고 있는 평가인증 기관이 컨설팅을 하는데 병원 입장에서 그 컨설팅을 받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라며 “내가 알기로는 거의 모든 병원이 컨설팅을 받았다”고 말했다.

 

병원 업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증원 컨설팅은 평가인증 자체에도 흠집을 내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삼류 병원이 인증원 컨설팅을 받고 인증원에 잘 보여서 인증마크를 받는다. 의료와 안전의 질이 낮은데도 그 마크를 병원에 붙이고 정부가 인정한 일류 병원 행세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동안 ‘복지부 인증 병원’이 황당한 안전사고를 내기도 했다. 2014년 화재로 28명의 사상자를 낸 장성병원은 인증원의 인증을 받은 병원이다. 평가항목에 화재 안전도 있었지만 인증 후 화재 사고를 일으키자 인증 실효성과 인증원의 사후관리 체계에 불신이 쌓였다. 최근 열악한 환경과 환자 학대로 논란이 됐던 용인정신병원은 2013년 인증원의 평가인증에서 1등급을 받은 ‘우수병원’이었다. 또 무허가 의료용 산소를 사용하거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안전관리자를 두지 않은 ‘인증 병원’도 많다.

 

이런 지적을 받은 인증원은 사후관리 차원에서 ‘중간조사’를 하고 있다. 평가인증 후 1년마다 중간자체평가를 시행하고, 2년 후 중간현장조사도 한다. 그러나 중간현장조사를 한다고 해도 2년에 한 차례이고, 또 언제 조사를 진행할지를 미리 병원에 알려주기 때문에 병원에 준비할 시간을 벌어준다. 이에 대해 인증원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지만 24시간 관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해 사실상 의료안전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용인정신병원의 사례와 같은 윤리문제의 발생에 관해서는 “초기에는 가장 필수적인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부분에 중점을 두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점차 윤리와 인권, 직원의 안전 부문 등에도 관심을 증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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