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청장은 靑 비서관 출신 정치적 중립 훼손될까 우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8.29 11:07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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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 1기’ 황운하 경무관 작심 토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24일 이철성 경찰청 차장을 제20대 경찰청장으로 임명했다. 이 신임청장은 청문회 과정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경찰 신분을 숨기고 징계를 피했던 사실이 드러나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됐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 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했지만 야당의 거부로 채택은 끝내 불발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고, 재요청 시한이 만료된 지 하루 만에 임명을 강행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가 국회와 국민을 무시했다. 이 청장 임명은 국회 모욕이자 국민 모욕”이라면서 “대통령 스스로 그렇게 강조해 온 법치주의의 근간을 자신의 손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부실검증 논란이 있었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겨냥해 “잘못된 검증을 정당화하기 위해 잘못된 인사를 강행하겠다는 대통령의 독선과 오기”라며 “우병우 해임이라는 한 번의 결단으로 그칠 수 있는 일을 고집스레 버티면서 연이어 온 나라를 망칠 요량”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사저널은 경찰 수뇌부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황운하 경무관(경찰대학 교수부장·경찰대학 1기)을 이 신임청장의 취임식이 열린 8월24일 만났다. 황 경무관은 “이철성 청장이 경찰의 시대적 과제인 ‘정치적 중립’을 지켜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면서 “이 청장은 바로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지냈다. 청와대 비서관이 경찰청장으로 임명되는 것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놓고 봤을 때 ‘최악의 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정부의 1·2대 경찰청장인) 이성한·강신명 전 청장을 거치면서 경찰 내에서 특수수사는 자취를 감췄고, 외부 입김에 인사가 좌지우지되면서 경찰의 자긍심은 바닥까지 떨어졌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경찰의 침체기로 기억될 것이다. 이성한·강신명 전 청장은 역사의 죄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 끝에 이철성 신임청장이 임명됐다. 

 

수사권 독립, 정치적 중립 확보 등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 청장은 여러 가지 약점을 잡힌 채로 출발하는 셈이다. 일단 경찰청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에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음주운전 경력은 경찰청장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걸림돌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어떤 점을 지적하는 것인가.

 

이철성 청장은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 있었다.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치안비서관으로 있은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이전에 청와대 비서관이 경찰청장으로 온 것은 허준영 청장이 유일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강신명 전 청장에 이어 이철성 청장까지 연속해서 벌써 두 번째다. 전임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구은수 청장도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다. 

 

(비서관 출신 청장들은) 태생적으로 정치권력, 특히 청와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치안비서관(치안감)을 거쳐 곧바로 승진(치안정감)해서 나오고, 또 청장(치안총감)이 되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실세 비서관들에게 잘 보이려고 얼마나 절절맸겠나.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치안비서관은 청와대 내에서 비중이 떨어지는 자리다. 실세들이 난무하는 청와대 내에서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경찰청장 자리에 올랐을 때 (청와대 실세들에게) 경찰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나. 경찰을 이리저리 부려먹기 딱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 측면에서 ‘최악의 수’다. 

 

정권이 바뀌거나 청와대 비서관을 마치고 3~5년 뒤라면 문제가 없지만, 지금처럼 바로바로 중용되면 정치권력의 입김에서 경찰이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됐다고 보는 것인가.

 

이성한(18대 경찰청장·2013년 3월~2014년 8월), 강신명(19대 경찰청장·2014년 8월~2016년 8월) 청장을 거치면서 경찰조직이 왜소해졌다. 잘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권력자에게 꼬리를 흔들면서 아양 떠는 그런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왔다. ‘경찰은 강한 자에게 비굴하고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국민들이 보는 경찰의 모습이다.

 

김학의 차관 성상납 의혹 사건 이후 경찰의 특수수사가 ‘죽었다’. 김학의 사건을 맡았던 수사관들을 문책성 인사조치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실제로 그랬다면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경찰청장의 역할은 ‘바람막이’다. 수사 담당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외압을 차단해 줘야 한다.

 

그러나 이성한 청장 때부터 잘못됐다. 이 전 청장은 바람막이 역할을 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날려보내는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내부에 어떤 시그널이 가겠나. ‘검찰과 대립하는 듯한 사건이나 대형 비리 사건은 손도 대지 말자, 나만 불이익 당한다’ 이런 생각들이 경찰 내부에 팽배해졌다. 이 전 청장 때부터 망가져서 강신명 전 청장 때까지 이어졌다.

 


강신명 전 청장은 경찰대 출신 1호 청장으로, 임기 2년을 채운 유이(有二)한 청장이다. 강 전 청장을 평가한다면?

 

강 전 청장은 경찰대 출신 청장으로서 역할을 했어야 했다. 정치권의 외압에서 자유롭고, 강자에게 당당한 경찰을 만들기 위해 만든 것이 경찰대다. 그런데 강 전 청장은 이러한 과제를 인식조차 못했다.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강 전 청장 시절 정치적 독립을 논할 수 있는 큰 사건이나 시책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강 전 청장은 청문회 때 “임기 내에 수사권을 독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지만, 한 것이 뭐가 있나? 전형적인 영혼 없는 공직자의 발언에 불과했다. 

 

강 전 청장 시절 인사에 있어서 정치권의 입김이 워낙 심했다. ‘인사철이면 여권 실세와 누가 동창이고, 누구는 친척이라더라’는 등 이런 얘기부터 돌았다. 외풍에 의해 경찰 수뇌부 인사가 흔들리면 중하위급 인사에도 자연히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되면 사소한 사건에도 외압이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 민원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들이 평소에 어떤 일을 하겠나. 외부 실세들의 ‘사병’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강 전 청장 역시 말 잘 듣는 경찰청장 아니었나.

 

경찰 인사가 온갖 외부 인사들에게 휘둘리면서 경찰 내부에서 상층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현장 하위직들이 공감할 수 없는 엉뚱한 인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 전 청장은 “승진지상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현장 업무를 중시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일 중심이 아닌 “빽 중심”, 업무 우선이 아닌 “승진이 장땡”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이철성 신임청장은 앞선 청장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신임청장이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면?

 

경찰청장은 국민들과 시대가 부여하는 과제를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이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치권력에 취약하다, 강자에게 비굴하다’ 이런 모습이 불신의 원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신임청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청장직을 수행했으면 좋겠다. 이 청장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기저기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신세 지고 도움을 얻고, 신세를 다시 갚아야 하는 그런 관계가 많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청장이 된 이후에는 모든 관계를 잊고, 경찰 조직과 국민만을 생각해야 한다. 욕먹을 각오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외부의 입김으로부터 경찰을 지켜내야 한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최근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찰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검찰 개혁 방안이다. 검찰의 대안으로서 경찰이 인식될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한다. 아울러 이는 경찰 개혁 방안이기도 하다.  

 

수사권 독립은 이 시대의 과제인 부패척결과 직결된다. 경찰수사가 위축되면 검찰의 권력 남용이 많아진다. 경찰의 견제를 통해 검찰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 전·현직 검찰 비리는 경찰이 제 역할을 못했을 때 창궐한다. 지금이 그렇다. 경찰이 제 역할을 못해서 검찰 비리가 많아진 것이다.

 

4대 악(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으로 대표되는 민생 치안도 중요하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 역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것은 사법 정의에 관한 문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경찰의 역할이 순찰이나 돌고 도둑이나 잡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찰의 역사에서 가장 깊은 침체기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은 검찰과 함께 수사권을 행사하는 중요한 조직이다. 경찰 스스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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