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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평양 Insight] 외교관·주재원 이탈 단속에 골머리 앓는 김정은

태영호 망명 후폭풍…러시아 외교관 부부 망명길 올랐다는 관측도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9(Mon) 16:15:41 | 1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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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8월은 악몽 같은 시기로 기억될 게 분명하다. 8월초 영국 런던으로부터 태영호 공사 일가족의 탈북·망명 소식이 평양으로 보고됐다. 북한에서 손꼽히는 엘리트 외교관으로 특히 김정은 체제의 서방지역 대변인 역할을 해 온 인물이 한국행을 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외화벌이를 해 온 외교관 신분의 경제 간부가 비슷한 시기 부인과 함께 종적을 감춰 망명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지는 등 여진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기대했던 올림픽도 실망감을 안겨줬다.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종합 34위를 기록해 종합 8위인 한국(금9, 은3, 동9)에 한참 뒤졌다. 평소 강조해 온 ‘체육 강국’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집권 첫해인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잇단 승전보로 20위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초라하다. 

 

8월22일부터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합동 군사연습이 시작됐다. 미 본토와 태평양사령부 소속 해외 증원병력 약 2500명을 포함해 모두 2만5000여 명의 미군이 참가했고, 한국군 5만 명도 동원됐다. 한·미 군사연습에 대한 북한의 히스테리적 반응을 감안하면 김정은에게 편치 않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8월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북한명 북극성) 시험발사에 성공을 거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8월 한 달은 김정은에게 힘든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통일부가 8월17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용호 공사가 가족들과 최근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밝혔다.


현학봉 영국 주재 대사 소환 등 후속 조치

 

이런 악재 가운데 특히 태영호 사건의 파장은 만만치 않다. 현학봉 영국 주재 대사를 소환하는 등 후속조치를 벌이고 있지만 사태는 수그러들기 어려운 분위기다. 대북 소식통은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 대한 강도 높은 검열과 문책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 주재 공관에 머물던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요원들이 런던에 파견돼 집중적인 감찰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런던의 경우 해외 주요 공관에 상주하는 보위영사(보위부 소속으로 외교관에 대한 감시나 첩보활동 담당)가 없었고, 베를린 등지에서 순회 근무하는 형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허술한 틈을 이용해 태영호 공사 일가가 영국 현지의 외교관이나 언론인을 비교적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해외 다른 지역 북한 공관이나 무역기관에도 불똥이 튀었다. 김정은의 특별 지시에 따라 함께 체류하던 동반 가족의 경우 즉각적인 평양 귀환이 이뤄지고 있다. 또 긴급한 사안이 아닌 경우 일단 평양으로 소환돼 검열이나 사상검증을 받고 다시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미 6월초부터 진행돼 왔던 해외 대사관과 대표부, 무역상사, 식당 등에 대한 평양 차원의 단속이 부쩍 강화된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김정은은 “도주나 행방불명 사건에 대해 발생요인을 적극 제거하고 실적이 부진한 단위는 즉각 철수시키라”고 지시했다. 또 “컴퓨터와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이용해 남조선 자료와 불순 출판 선전물을 몰래 보는 일을 막으라”고 강조했다. 해외 근무자들은 북한 사회에서 중시하는 출신성분과 당성 등을 모두 인정받아 선발됐다는 점에서 김정은과 북한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태영호 망명’ 후 북한으로 소환된 것으로 알려진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대사


검열단 조직해 해외 각지로 파견

 

김정은의 지시가 하달되면서 담당 기관도 바빠졌다. 노동당과 내각, 보위성에서는 이를 이행하기 위해 검열단을 조직해 해외 각지로 파견하고 있다. 이들이 들이닥친 곳은 중국 지역으로, 재정성 소속 검열단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국가 자금을 담당하는 재정성 해외 공관과 사업체의 상납금과 공관 유지비 납부 실태, 파견 인력의 생활비와 집세 등을 꼼꼼히 들여다봤다고 한다. 또 이 검열이 마무리되는 단계에 접어들면 보위성 검열단이 들이닥쳐 해외 파견인원의 거주상황은 물론 휴대용 정보통신기기의 사용 실태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정은의 경우 해외 북한식당의 운영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닝보(寧波) 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과 한국행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는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은 자신의 처지를 불안하게 여겨 동요하기 쉽다”며 문제가 있으면 예외 없이 철수시키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환이나 철수를 모면하기 위해 검열단에 뒷돈을 주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김정은까지 나서 해외 공관과 사업체의 탈북을 막으려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해외생활을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외부 세계에 눈뜬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김정은 체제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자녀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서방국가나 한국행을 결행하려는 행렬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인권문제 등으로 도마에 오른 북한 정권을 옹호하고 대변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문제는 동요하는 엘리트를 부여잡을 뾰족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망은 해외 체류 외교관이나 외화벌이 간부들뿐 아니라 평양의 특권층까지 뒤흔들고 있다. 고급 생필품이나 가전제품·사치품 등의 유입이 차단되면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가을 제재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김정은에 대한 엘리트 특권층의 반감이 더 고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올 초 4차 핵실험에 이어 잇단 미사일 시험발사로 군사도발 노선을 이어가고 있는 김정은의 행보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도 북한을 압박하고 태도변화를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심상치 않은 평양 엘리트 그룹의 이탈과 망명 움직임 속에서 김정은이 어떤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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