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줄이는 설계와 디자인의 힘
  • 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6 14:10
  • 호수 14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을 여행해 보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인지 절감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밤늦은 시간에도 마음 놓고 시내를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사회 자산이다. 형사사법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우리 치안도 위협받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강력범죄 발생 건수가 2005년 40건에서 2014년 66.5건으로 증가했고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처럼 끔찍한 범죄도 이어진다. 단속과 처벌, 교정 등 전통적 형사정책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 예방 설계’ 혹은 ‘셉테드(CPTED) 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범죄 예방을 위한 환경 설계(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는 물리적 환경에 따라 범죄 발생 빈도가 달라지므로 도시 환경 설계를 통해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1960년대 미국 정부가 처음 도입했고, 뉴욕시장 줄리아니는 이 기법을 응용해서 뉴욕의 치안 상황 개선에 큰 성과를 거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셉테드 연구가 본격화됐고 2000년 이후 정부 정책에도 반영됐다. 2005년 경찰청이 국내 최초의 범죄 예방 설계 지침을 마련했고, 국토교통부는 2014년 건축법을 개정해 ‘제53조의2(건축물의 범죄예방) ①국토교통부장관은 범죄를 예방하고 안전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건축물, 건축 설비 및 대지에 관한 범죄 예방 기준을 정해 고시할 수 있다. ②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은 제1항의 범죄 예방  기준에 따라 건축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에 따라 500세대 이상 아파트·소매점·오피스텔 등은 정부의 범죄 예방 기준을 적용해 설계하도록 돼 있다.

 

2012년 서울시에서 진행한 범죄 예방 디자인 사업으로 만들어진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의 지킴이집


지방자치단체의 셉테드 활용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 마포구 염리동, 관악구 행운동, 중랑구 면목동, 용산구 용산2가동 등 4곳에서 범죄 예방 디자인 사업을 실시했고, 금년 8월까지 금천구 가산동 등 6곳의 환경 개선을 마쳤다. 사업 내용은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하다. 야간 인적이 드문 지역은 막다른 길 앞에 조명 필름을 붙여 바닥에 문자를 비추는 고보조명을 설치하고, 폐가가 많은 지역은 폐가를 마을 게시판이나 주민 갤러리로 사용하며, 여성 거주율이 높은 곳은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고 안전 확성기를 설치하는 식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서울시의 1차 사업지역 4곳의 범죄 예방 효과를 조사한 결과 면목동은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가 30% 이상 감소했고 용산2가동도 강도·성폭행 범죄가 22.1% 줄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 문제는 많다. 셉테드의 근거법률이 건축법 1개 조항에 불과하고 그나마 강제조항이 아니다. 구체적 기본모법이 없기에 정부가 지자체의 동참을 강제하기 어렵고, 통일적 기준이 없다 보니 각 지자체별로 체계적 전략 없이 치적용 공공사업에 치중하다가 중구난방에 그칠 우려도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범죄 예방을 위한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