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고독사...60년 세상살이, 작별은 고작 2시간
  • 구민주 인턴기자 (minjookoo91@naver.com)
  • 승인 2016.08.25 10:55
  • 호수 14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족도 찾지 않는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작은 장례식 현장

흔히 그려지는 장례식 풍경이 있다. 눈물짓는 가족과 줄 잇는 추모객, 가운데 놓인 환한 영정사진 정도가 그렇다. 그러나 여기, 이 기본적인 것 하나 갖추지 못한 조용한 장례가 치러지고 있다. 가족 대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정성스레 상을 차리고, 사진 대신 이름 석 자만 겨우 쓰인 위패 앞에 고개를 숙인다. 배웅할 가족도 친척도 없는 사망자, 무연고사망자의 장례식 모습이다. 

 

7월28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에 운구차량들이 연이어 들어왔다. 유족들은 차량에서 내려지는 관 주위를 둘러싼 채 흐느꼈다. 그 사이로 무연고사망자 서재철씨(가명·61)와 박진태씨(가명·60)의 관도 나란히 들어왔다. 이들을 기다리는 건 무료장례지원단체 ‘나눔과 나눔’ 직원과 목사, 자원봉사자, 그리고 기자까지 넷이 전부였다. 한 명이 모든 짐을 짊어들고, 다른 한 명이 두 고인의 위패를 양손에 들고 나면, 수십 kg에 달하는 관을 옮길 수 있는 손은 남은 두 명과 운구차량 운전기사 셋뿐이다. 드문드문 오는 자원봉사자마저 없는 날이면 승화원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힘겹게 관을 싣고 나면 그때부터 화장이 끝나기까지 약 1시간 반이 소요된다. 장례식을 위해 주어진 유일한 시간이다.

 

7월28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 유족대기실에서 무연고사망자 2명의 장례식이 ‘나눔과 나눔’ 단체에 의해 치러지고 있다.


“이들에게도 세상과 작별할 시간이 필요”

 

본래 이곳은 3일장을 모두 마치고 화장을 하러 오는 곳이다. 그러나 무연고사망자의 시신이 담긴 관은 안치실에서 곧장 이곳으로 향한다. 장례를 제대로 치러줄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나눔과 나눔’이 가족을 대신해 화장 시간 동안 이들을 배웅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미리 시장에 들러 사온 사과·곶감·술 등을 제기(祭器)에 담아 정성스레 상을 차리고, 상 한가운데에 영정사진 대신 이름이 적힌 위패를 세워놓는다. 푸짐하진 않지만 대추 한 알, 밤 한 톨까지 깨끗이 닦아 올린다. 유족 대신 대리상주 역할을 하는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은 “찾아오는 사람은 없지만 이들에게도 세상과 작별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혹 유족들이 뒤늦게라도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상을 차리고 기다린다”고 말했다.

 

승화원 내부에 장례를 위한 별도의 공간은 없다. 그래서 이들이 택한 최선의 장소는 한 평 남짓한 유족대기실이다. 화장을 기다리는 동안 유족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곳이다. 여기에 자리 잡기 전에는 서울시내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며 식을 치렀다. 장례식장 측에서 달가워하지 않아 늘 눈치를 봐야 했다. 그에 비하면 승화원의 유족대기실은 공간도 협소하고 정식 식장도 아니지만, 눈치 볼 필요 없이 조용히 식을 치를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준비를 마치면 간략한 순서에 따라 식이 진행된다. 우선 대리상주가 사망자의 신원에 대한 짧은 소개를 한다. 서재철씨는 지난 6월 영등포의 한 옥탑방에서 외로이 죽음을 맞았다. 박진태씨는 그보다 앞선 지난 4월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역시 홀로 사망했다. 주거지와 사망지가 서로 다른 바람에 어느 관할에서 비용 처리를 해야 하는가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 그 탓에 박씨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병원 안치실에 냉동 상태로 머물다가 사망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화장이 결정됐다. 호적상 아들이 있어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답변이 없어 무연고사망자 신분이 되었다.

 

소개가 끝나면 단체가 직접 작성해 온 조사(弔辭)를 읽는다. 이날 대표로 조사를 낭독한 자원봉사자 임정씨(35)는 감정이 북받쳐 한참을 울먹였다. 임씨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고인이지만 끝까지 외롭게 떠나는 것만 같아 눈물이 났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연고사망자의 유골함은 일반 사망자들의 것보다 크다.


유골 10년간 보관, 찾는 이 없으면 폐기

 

헌화와 목사의 마지막 기도까지, 고인을 위한 의식이 모두 끝나면 정해진 대기실 이용 시간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상을 정리해야 한다. 장례에 사용된 음식들은 모두 다음 날 쪽방촌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에게 전해진다. 제기를 닦고 짐을 정리하다 보면 이내 화장이 종료됐다는 방송이 대기실에 울린다. 안내를 따라가면 여느 사망자와 마찬가지로 화장터에서 갓 나온 유골을 분쇄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단, 차이점이라면 행여 뒤늦게 유족이 찾아와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사망자들처럼 유골을 가루로 만들지 않고 크게 조각만 낸다. 그 때문에 서재철·박진태씨의 유골이 담긴 함은 유난히 큼직했다. 

 

처음 관을 싣고 온 차량에 두 유골함은 다시 실린다. 두 관으로 꽉 찬 채 들어왔던 차 안이 이제는 빈공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승화원으로부터 30분 거리에 위치한 경기도 파주의 ‘무연고사망자 추모의 집’으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10년간 보관돼 있다가 기간 내에 아무도 찾아가지 않으면 단체로 폐기된다. 매년 밀려오는 무연고사망자 유골함을 모두 감당하기에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골함이 차에 실려 떠나고 나면 남은 이들은 끝으로 고인의 이름이 적힌 위패를 태우는 의식을 치른다. 승화원 한편에 마련돼 있는 분향대 앞에 서서 불을 붙인 종이가 완전히 태워질 때까지 고인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한다. 10여 분의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나면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는 비로소 끝이 난다. 60여 년을 산 세상과의 작별을 위해 고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총 2시간 남짓이었다.

 

 

단순 시신처리가 아닌 인간적인 장례지원 이뤄져야

 

홀로 생활하다가 일정기간이 지나 발견되는 사망자는 한 해 1만여 명에 달한다(2013년 기준). 다행히 곧장 유족과 접촉되기도 하지만 끝끝내 무연고로 처리되는 사망자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그 수는 지난해 1245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들 중 ‘나눔과 나눔’과 같은 무료장례지원단체와 운 좋게 연이 닿은 사망자만이 짧은 장례라도 치를 수 있다. 사망 전 미리 단체에 장례 신청을 해 두었거나, 사망 후에라도 주변에서 장례를 요청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죽음이 대부분일 뿐 아니라, 이들 단체가 안고 있는 비용·인력 등 물리적인 한계도 있어 장례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망자가 훨씬 더 많다.

 

대다수 무연고사망자의 시신은 누구의 배웅도 없이 조용하게 ‘처리’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사전에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가 시신 운구부터 화장, 유골함 안치까지 담당한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의 존엄성과 개별성은 사라진다. 시신 처리 모습을 지켜본 적 있다는 장례지도사 준비생 김경희씨(가명·35)는 “시신의 염 처리가 허술하고 관이 함부로 다뤄져 때때로 화장장으로 실려 오는 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때도 있다”면서 “무연고사망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이런 데서 다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용구 ‘나눔과 나눔’ 팀장은 “용역업체의 시신 처리 과정에 별도의 장례 순서가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는 사망 시 지자체로부터 75만원의 장례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수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무연고사망자에게는 시신 한 구당 이보다 적은 55만원이 지급된다. 사망 후 유족을 수배하는 동안 시신을 보관하고 화장을 진행하는 비용만 따져도 매우 부족한 금액이다. 때문에 ‘나눔과 나눔’과 같은 단체가 마련하는 무연고사망자 장례식은 대부분 후원금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최근 무연고사망자가 늘어남에 따라 서울시에서 이들의 장례에 대해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처음으로 고독사 실태와 대안을 위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장례 지원 단체와 서울시의 공통된 입장이다.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장례는 장례식장, 상조회사 할 것 없이 99% 돈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며 “우리 사회에 죽음에 대한 공공성이 좀 더 강조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원도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한 지원 센터를 마련해 이들의 마지막을 지금보다 인간적이고 정성스럽게 치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