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왜 이정현을 밀었나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8.15 13:06
  • 호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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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 번, 친박에서 짤박 거쳐 다시 친박으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가 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언론에서 그를 ‘친박’당 대표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복박’(復朴)이다. 친박에서 ‘짤박’(짤린 친박)을 거쳐 다시 ‘친박’이 됐기 때문이다. 7월7일 그가 당 대표 출마선언을 했을 때, 외부에서는 이 대표를 ‘친박’으로 분류했다. 정작 청와대 내부에서는 그를 ‘친박’ 후보가 아닌 ‘비박’ 후보로 분류하는 분위기였다. 

 

비록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도우며 오랜 기간 ‘친박’ 실세로 불렸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박’ 후보로 튕겨져 나갔다. 하나는 그가 지난 총선에서 청와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보수석을 그만두고 출마를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 정권 내내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이들과 계속 긴장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8월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이정현 신임 당대표의 옆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총선 출마하면서부터 ‘비박’ 취급

이정현 대표가 2014년 7월 전남 순천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청와대는 이 대표의 출마를 강하게 반대했었다고 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교적 자신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이 대표를 정권 초반에 내보내지 않고 싶어 했다. 당시만 해도 이 대표는 청와대에서 정무수석과 홍보수석 자리를 오가며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힘을 실어줬다. 그런 그가 대통령 취임 1년6개월도 지나지 않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다고 나서자 대통령의 실망감이 컸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박 대통령에게는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달가워하지 않는 수준이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정현 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을 정도로 반감이 크지는 않았지만, 실망감은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것이 이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가지고 있는 ‘로열티’는 확실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 대표가 청와대를 나갔던 그 순간부터 친박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는 그를 농담 삼아 ‘짤박’이라 불렀다.

10년 넘게 박 대통령을 보좌했던 그가 순식간에 ‘짤박’ 취급을 당하게 된 데에는 그가 애초부터 ‘친박’ 코어그룹에 끼지 못했던 이유가 크다. 이 대표는 항상 대통령 근처에 있었지만 최경환 의원, 윤상현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등 실세그룹으로 분류되는 인사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1년 차였던 2013년 12월 친박 핵심 인사들의 송년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의 이 야기를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1차를 마치고 2차에 강남 모처에 있는 바에서 열린 송년회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 에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10여 명의 친박 실세그룹이 있었다. 이 자리에 한 공기업 임원이 참석해 술도 따르고 했었다. 그런데 유독 이정현 대표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정현 대표는 당 대표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자신은 무(無)수저다’ ‘평생을 홀대받으며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호남 출신이고 일류대학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받았다는 이야기도 포함되지만, 친박으로 분류되면서도 그 안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어 있 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가 친박 핵심그룹에 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출발’이 달랐기 때문이란 분석이 가장 많다. 앞서 언급했지만 그는 지역적으로도 보수정당에서는 소수인 ‘호남’ 출신에다,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정치도 말단 당직자로 시작했다. 그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당직을 맡고 있던 1990년 후반 최경환 의원은 이미 고위공무원을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윤상현 의원은 대통령의 사위라는 배경을 갖고 있었고, 당에서 핵심 당직을 맡고 있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친박 실세들이 보기에 이 대표는 정치판의 ‘흙수저’나 다름없었다.

이정현 대표, 원래는 4~5순위에 불과

이정현 대표는 청와대와 친박 핵심들이 생각하는 당 대표 후보에서 아무리 잘 봐줘야 4~5순위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당 대표 선거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당 대표 선거에서 ‘대통령의 의중’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만난 친박계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은 이번 선거에서 청와대의 구상은 서청원 전 대표나 최경환 의원 등이 우선순위이고 이마저도 안 될 경우 이주영 의원 등을 적합한 당 대표 후보로 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들이 하나둘 이런저런 이유로 나가떨어졌다. 서 전 대표나 최 의원의 경우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에 휘말려 아예 출사표도 던질 수가 없었다. 이주영 의원의 경우 ‘자살골’을 넣은 케이스다. 이번 선거에서 한 유력 당권 주자를 도운 정치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주영 의원이 총선 패배 원인과 관련해 청와대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여기까지도 청와대가 한 후보로 내부적 입장을 정리할 상황은 아니었다. 친박 및 비박 후보 간 다자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면 친박 후보들이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 막판 주호영 후보로 비박계가 결집하면서 청와대나 친박계가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당 대표 선거 막판 ‘박심’이 이 대표에게 쏠리면서 그가 주호영 의원을 밀어내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앞서 언급됐던 정치권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는 이정현 후보가 앞서서 나왔어도 원내대표나 당 대표 선거는 여론조사가 의미가 없는 선거”라며 “선거 3일 전부터 이 의원에게 조직이 활 쏠리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청와대가 다른 사람보다는 이정현 대표가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이 대표 역시 뚜껑을 열기 전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7월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결과는 믿을 게 못 된다’ ‘조직력이 약하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었다. 기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실제로는 상당히 불리한 선거였다는 것을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대표의 당선에 청와대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이러한 분석을 청와대 측에서는 당연히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당선된 후 정치권 분위기는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단 여당과의 관계에 청신호가 들어왔다는 분석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이 대표 역시 여러자리에서 ‘대통령의 뜻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또한 보수정당 첫 호남 출신 당 대표라는 ‘배지’는 호남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야당들을 긴장하게 만들면서 대권 판도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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