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가 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언론에서 그를 ‘친박’당 대표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복박’(復朴)이다. 친박에서 ‘짤박’(짤린 친박)을 거쳐 다시 ‘친박’이 됐기 때문이다. 7월7일 그가 당 대표 출마선언을 했을 때, 외부에서는 이 대표를 ‘친박’으로 분류했다. 정작 청와대 내부에서는 그를 ‘친박’ 후보가 아닌 ‘비박’ 후보로 분류하는 분위기였다.
비록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도우며 오랜 기간 ‘친박’ 실세로 불렸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박’ 후보로 튕겨져 나갔다. 하나는 그가 지난 총선에서 청와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보수석을 그만두고 출마를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 정권 내내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이들과 계속 긴장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현 대표가 2014년 7월 전남 순천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청와대는 이 대표의 출마를 강하게 반대했었다고 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교적 자신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이 대표를 정권 초반에 내보내지 않고 싶어 했다. 당시만 해도 이 대표는 청와대에서 정무수석과 홍보수석 자리를 오가며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힘을 실어줬다. 그런 그가 대통령 취임 1년6개월도 지나지 않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다고 나서자 대통령의 실망감이 컸다고 한다.
“1차를 마치고 2차에 강남 모처에 있는 바에서 열린 송년회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 에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10여 명의 친박 실세그룹이 있었다. 이 자리에 한 공기업 임원이 참석해 술도 따르고 했었다. 그런데 유독 이정현 대표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정현 대표는 청와대와 친박 핵심들이 생각하는 당 대표 후보에서 아무리 잘 봐줘야 4~5순위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당 대표 선거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당 대표 선거에서 ‘대통령의 의중’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만난 친박계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은 이번 선거에서 청와대의 구상은 서청원 전 대표나 최경환 의원 등이 우선순위이고 이마저도 안 될 경우 이주영 의원 등을 적합한 당 대표 후보로 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들이 하나둘 이런저런 이유로 나가떨어졌다. 서 전 대표나 최 의원의 경우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에 휘말려 아예 출사표도 던질 수가 없었다. 이주영 의원의 경우 ‘자살골’을 넣은 케이스다. 이번 선거에서 한 유력 당권 주자를 도운 정치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주영 의원이 총선 패배 원인과 관련해 청와대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여기까지도 청와대가 한 후보로 내부적 입장을 정리할 상황은 아니었다. 친박 및 비박 후보 간 다자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면 친박 후보들이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 막판 주호영 후보로 비박계가 결집하면서 청와대나 친박계가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당 대표 선거 막판 ‘박심’이 이 대표에게 쏠리면서 그가 주호영 의원을 밀어내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앞서 언급됐던 정치권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는 이정현 후보가 앞서서 나왔어도 원내대표나 당 대표 선거는 여론조사가 의미가 없는 선거”라며 “선거 3일 전부터 이 의원에게 조직이 활 쏠리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청와대가 다른 사람보다는 이정현 대표가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이 대표 역시 뚜껑을 열기 전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7월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결과는 믿을 게 못 된다’ ‘조직력이 약하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었다. 기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실제로는 상당히 불리한 선거였다는 것을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