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예비율 여유 있다고? 한 순간에 훅 갑니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8.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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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올라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7월31일 오후의 서울. 무더운 날씨에도 인파로 북적이는 명동 화장품 골목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왔다. 지상에 위치한 매장들이 출입문을 활짝 열어둔 채 냉방 시스템을 ‘풀가동’하고 있었다. 아예 “시원한 매장으로 들어오셔서 에어컨 바람만 쐬고 나가셔도 된다”며 ‘에어컨 마케팅’을 하는 곳도 있었다. 서울 용산역의 한 면세점 앞에서는 머리칼이 날릴 정도로 강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문 열어 놓고 냉방하면 단속에 걸리지 않느냐”고 묻자 한 화장품업체 직원은 “작년까진 그랬는데 올해는 전력이 빵빵해서 (문 열고 냉방하는 행위가) 단속대상이 아니라더라”고 답했다. 

 

올해 여름에는 문을 연 채 냉방을 하는 ‘개문(開門) 냉방’ 매장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력예비율이 높아 전력 수급에 차질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고 그래서 당분간 개문냉방에 대한 단속을 실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전력 예비율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문을 열고 냉방을 해도 단속하지 않기로 했다. 전력 대책이 해마다 바뀌는 셈이다. 7월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매장들이 문을 활짝 연 채 손님을 맞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도 7월14일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최대 전력공급 능력은 8960kW였던 지난해 여름보다 약 250만kW 늘어난 9210만W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 예비율도 크게 증가했다. 남은 여름기간 동안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전력 수요가 가장 집중될 때도 1040만kW 내외의 예비전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통상 예비전력이 400kW 이상을 유지하면 전력수급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며 그 이하로 떨어지면 경계를 강화하게 된다.

 

산자부는 올 여름 에너지 예비율을 12.7%로 예상했다. 주의·경보 단계가 2~3%니 긴장해야할 예비율을 훨씬 웃도는 예상치다. 그러다보니 각 지자체에 단속보다는 홍보와 계도 위주의 활동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실제로 올여름 전력수급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정부의 방침이 상당히 위태로운 계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표대로 올해 신규 발전소 등이 건설되면서 작년에 비해 전력예비율 자체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전력 수요다. 유례없는 한낮의 무더위와 열대야 탓에 전력 수요는 치솟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7월26일 전력 수요는 8111만㎾를 기록했다. 올해 여름철 전력 수요로는 처음으로 8000만㎾를 넘었다.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로 예측됐던 8170만kW에 근접하는 수치다. 7월11일 세운 여름철 최고 전력 수요인 7820만㎾ 기록을 15일 만에 경신했다.

 

그러다보니 전력예비율도 빠르게 곤두박질치고 있다. 두 자리 수였던 전력예비율은 7월26일 기준으로 9.6%로 떨어지며 한 자리수로 들어섰다. 예비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진 건 7월11일 9.3%에 이어 올해 두 번째다.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졌던 2011년 여름 당시 예비율은 4.7%였다. 그때보다는 여유가 있지만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한 자릿수로 예비율이 떨어진 이유가 일부 발전소가 정비에 들어갔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처럼 발전소 사정에 따라 예비율은 얼마든지 빠르게 떨어질 수 있고 따라서 언제든지 전력수요에 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 

 

정부는 에너지 예비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진다고 해도 예비발전소를 가동하는 등의 방법을 쓰면 에너지 수급에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장 올해 예비전력이 충분하다고 해서 전력을 ‘낭비’하는 것은 환경적 측면으로나 에너지 수급 측면으로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천연가스와 석탄 등 막대한 자원이 투입돼 생산되는 우리 전력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한정된 자원으로 ‘펑펑’ 써대는 꼴이기 때문이다. 

 

개문 냉방은 에너지를 빠르게 소비한다. 2014년 한국에너지공단이 한국냉동공조인증센터에 의뢰해 실험한 결과 개문냉방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전력 소비량은 3∼3.9배의 차이를 보였다. 환경 전문가들은 개문냉방을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도, 기후보호 차원에서도 반드시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전력예비율이 바닥을 쳐야 개문냉방 단속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각에서 “정부가 무분별한 개문 냉방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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