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경쟁구도 뒤흔든 친박 실세들의 ‘입’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5 10:41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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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최경환 등 친박 핵심들 줄줄이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에 연루

 

새누리당 8·9 전당대회가 열흘 전후로 다가온 가운데, 친박(親朴·친박근혜)계와 비박(非朴·비박근혜)계 간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친박 핵심 인사들의 20대 총선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이 일순 불어 닥치면서 전당대회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으로서는 쓰라린 패배의 경험을 겪었던 2014년 7·14 전당대회가 마치 데자뷰처럼 재연되는 양상이다. 


당초 이번 전대는 20대 총선에서 당내 세력을 크게 확장한 친박의 순조로운 우세가 점쳐졌다. 더욱이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실세인 최경환 의원을 대신해 대리 출전할 채비를 하면서 승세는 친박으로 급속히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전대를 3주 앞두고 당권 전쟁의 전세는 급변했다. 서 의원이 7월19일 윤상현·최경환 의원 등 친박 핵심들의 공천개입 발언이 알려지는 등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이라는 불의의 일격으로 중도 하차하는 돌발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친박의 유력 당 대표 후보가 낙마하자 비박이 상승세를 타는 형국이다.

 

 

최경환(사진왼쪽)과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


 


‘친박 vs 비박’ 힘의 균형 깨뜨린 녹취록


전세 역전현상은 친박 실세의 공천개입 녹취록에서 비롯됐다. TV조선은 7월18~19일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경기 화성 갑 출마를 선언한 김성회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변경하라고 압박하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20대 총선 참패의 원인을 제공했던 친박이 공천에 공공연히 개입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공천 과정에서 상향식 공천을 추진했던 김무성 전 대표를 흔들며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에 일조했던 서 의원은 결국 거세지는 친박 책임론에 무릎을 꿇고 당권 도전을 접었다. 실세인 최 의원도 앞서 똑같은 이유로 전대 출마를 포기했다. 그의 출마 포기도 수도권의 원외 당협위원장의 원성과 친박에게 등을 돌린 민심을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전 의원의 녹취록 공개를 놓고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왔다. 우선 김 전 의원과 서 의원 간의 악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2013년 10·30 재·보궐 선거 당시 경기 화성 갑에 출마하려던 김 전 의원은 같은 지역구에 서 의원이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김 전 의원은 “지역연고도 없고 나이도 많이 드셨다”면서 서 의원의 출마를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당 지도부의 전방위 설득에 명예회복을 내세운 서 의원에게 지역구를 양보해야 했다. 일각에서는 김 전 의원이 서 의원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지역구를 내준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후 김 전 의원은 지역난방공사 사장이 됐다. 김 전 의원은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서 의원이 명예회복을 한 뒤 지역구를 나에게 돌려주기로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지역난방공사 사장직을 자진 사퇴했다. 임기를 1년가량 남겨둔 상태였지만 4·13 총선 출마를 준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김 전 의원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서 의원은 김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지 않고 ‘8선 도전’을 선언했다. 배신감에 충격을 받은 김 전 의원은 서 의원과의 경선도 불사하겠다며 결사항쟁 의지를 다졌다. 그러자 친박 실세들은 서 의원을 돕기 위해 ‘교통정리’에 나섰다. 윤 의원은 김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기면 ‘친박 후보’로 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김 전 의원은 분구 지역구인 화성 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친박 실세들이 친박 후보로 밀어줄 것이란 약속을 어겼다는 게 김 전 의원의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 김 전 의원이 공천관리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 전 의원의 녹취록은 공교롭게도 서 의원의 당권 도전이 임박한 시기에 공개됐다. 일각에서는 김 전 의원이 서 의원에게 개인적 복수를 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 전 의원은 자신의 공천이 꼬이자 지인들에게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 의원은 김 전 의원이 자신을 협박했다고 역공하며 수세에 몰린 ‘친박 구하기’에 나섰다. 서 의원은 7월21일 “김 전 의원이 20대 총선 경기 화성 병 경선에서 떨어진 뒤 나한테 전화를 했다”며 “이런(지역구 변경 종용) 전화를 받았다고 하며 폭로하겠다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이 여러 사람들에게도 (폭로하겠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친박, ‘기획 폭로설’로 비박에 역공 


친박은 비박의 ‘기획 폭로 의혹설’로 반격에 나섰다. 비박이 전대 승리를 위해 녹취록 공개 시점을 의도적으로 조율했다는 얘기다. 서 의원은 7월21일 “김 전 의원이 김무성 전 대표에게도 알리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고 말했다. 서 의원이 앞서 20일 “왜 이 시점에서 음습한 공작정치 냄새가 나는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기획 폭로 의혹설을 제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확인 안 된 부분이지만 김 전 의원이 누군가와 상의하고, 뒤에서 누군가 조정했다면 전당대회 갈등을 유발하는 해당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비박도 강력 반발했다. 친박의 총선 패배 책임 프레임을 희석시키려는 친박의 공세를 차단하겠다는 의도에서다. 당권 주자인 정병국 의원은 7월21일 “분명한 것은 선거를 앞두고 권력의 실세들이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협력했다는 것”이라며 “이 시점에서 공작이냐, 아니냐라고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당이 신속히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친박 일각에선 비박의 구심점인 김무성 전 대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김 전 대표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친박 실세들에게 돌리고 친박의 당권 장악을 막기 위해 배후 조정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김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녹취록 후폭풍은 전대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이진곤 신임 중앙윤리위원장은 7월21일 “국민적 눈높이에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전대 판세가 요동칠 여지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녹취록 파문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친박은 이미 출마를 포기한 서 의원이 직접 당권 전쟁 전면에 나서는 등 당 대표 탈환에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그만큼 친박은 이번 전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력한 당권 후보를 잃은 친박은 범(汎)친박 후보군 가운데 대안 후보를 고르는 ‘플랜B’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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