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승부조작, 그 끝을 보고 싶다면 대만을 보라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7.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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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을 던졌다고 해서 의심스럽게 볼 수는 없다. 야구는 조작할 수 없는 종목이다”

야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들 이야기 했다.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휘몰아치던 2012년, 야구 관계자들은 "축구와 야구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축구는 골키퍼 한 명의 결단만으로도 승부가 충분히 뒤바뀔 수 있지만 9명 전체가 움직이며 타석과 수비가 단절된 채 이뤄지는 야구의 특성상 승부조작 그 자체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한 선수의 의도로 경기 흐름을 바꾸고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역시 야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야구에 대한 신뢰는 이미 무너진 전례가 있다. 2012년 3월,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스포츠계가 시끄러울 때 프로야구도 승부조작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2012년 LG 트윈스 투수 김성현과 박현준은 불법 온라인도박 운영자를 위해 돈을 받고 고의로 승부조작에 가담을 했다. 특히 박현준은 LG트윈스의 미래로 불리던 투수였다.

승부조작에 연루된 두 사람의 결말은 어땠을까. 김성현은 KBO로부터 활동정지 징계를 받았고, 구단에서도 방출됐다. 박현준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법적처벌도 뒤따랐다. 두 사람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KBO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한 것도 같았다. 영구제명을 받았으니 두 사람은 국내뿐만 아니라 대만이나 일본, 미국 등에서 선수나 지도자로 활동할 수 없게 됐다. 어린 나이에 잠깐의 영광을 누렸지만 그 끝은 초라했다.
 

NC다이노스 투수 이태양


그리고 불과 4년 뒤 같은 일은 또 벌어졌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는 7월20일 "이태양이 최근 승부조작 혐의로 창원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고 발표했다. NC는 사과문을 발표했고, 법적 절차와 별도로 KBO에 이태양의 계약해지 승인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창원지검 특수부는 7월21일 브리핑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태양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직접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승부 조작을 제안하고 이태양에게 금품을 전달한 국군체육부대 소속 프로야구선수 문우람(24)은 군 검찰로 넘겨졌다. 선수들과 함께 승부조작에 나선 브로커 조 모(36) 씨는 구속됐고, 전주(錢主)이자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자인 최아무개(36)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최 씨가 벌어들인 수익 1억원 중 이태양에게 간 돈은 2000만원이었다. 문우람은 고급 시계와 의류 등 1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승부조작 사건은 누군가가 적발되면 연이어 연루자들이 줄줄이 엮이는 게 특징이다. 창원지검은 이번 사건 이외에 추가 경기조작 혐의가 나오는 대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을 갖고 있다. 만약 다른 사건이 과거처럼 연이어 발생한다면 프로야구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케이스가 될 수도 있다. KBO가 "일벌백계의 엄정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밝힌 이유다. 하지만 4년 전 KBO가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렸던 그 때, 이태양은 입단 2년차였고 문우람은 1년차 신인이었다. 둘은 2012년의 사건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KBO만의 일벌백계가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프로야구계 입장에서도 4년 전의 ‘학습효과’는 없었던 셈이나 마찬가지다.

프로야구는 승부조작 이전에도 병역비리 등 대형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 2004년에 터진 병역비리는 연루된 프로야구 현역 선수만 51명이나 되는 대형사건이었다. 하지만 승부조작은 이런 병역비리보다 더 은밀하게 이뤄지고 차단이 어려운 문제다. 병역비리가 선수 개인의 결정으로 생기는 문제라면 승부 조작은 선수 개인도 있지만 그 배후에 ‘불법 도박 조직'이 버티고 있어서다.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의 시장 규모는 합법적인 스포츠토토 시장(연 3~4조원)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대한 시장 규모만큼 따라올 이익도 크니 유혹에 약한 어린 선수나 외부 조직이나, 서로 흔들거나 흔들리기에 좋은 구조다.

이태양은 지난 시즌 10승5패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했다. 유망주에서 좋은 투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시즌이 끝난 뒤 ‘프리미어12’에 참가할 국가대표로도 뽑혔다. 지난 해 3300만원이었던 연봉은 올해 1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3300만원을 받던 시절, 경기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고 가볍게 여겼던 볼넷을 내주는 대가로 받는 2000만원은 거금이었다. 그런 브로커의 유혹이 달콤하게 들리는 순간 범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브로커들의 유혹에 우리 프로야구단은 여전히 면역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취약한 면역력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보고 싶다면 대만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 1990년 4개 팀으로 출발한 대만프로야구리그(CPBL)는 1997년 11개 구단이 양대 리그로 운영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1991년 처음으로 총 관중 100만 명을 돌파한 뒤 1995년 164만 명의 관중을 모으며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2년 뒤인 1997년 대만 프로야구의 총 관중 수는 68만5000명으로 급감했다. 도대체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승부조작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팬들이 야구장에 등을 돌린 게 결정타였다. 1995년 10월 14일 있었던 '검은 타이거즈'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삼상 타이거즈의 투수가 볼을 남발하며 고의로 팀을 패배로 몰고 간 게 밝혀지면서 부터였다. 삼상 타이거즈는 1990년 출범 멤버였지만 이 일을 계기로 1999년 해체하기에 이른다.

'검은 타이거즈' 사건에 이어 ‘검은 독수리’ 사건도 터졌다. 1997년 전반기 우승팀인 시보 이글스의 선수들 상당수가 조직폭력배가 운영하는 불법도박을 위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선수가 연루된 터라 개별 조치가 어려워지자 1998년 이 팀도 해체됐다. 1997년에는 ‘흑사회 스캔들’도 터지면서 대만 프로야구는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폭력조직 흑사회가 승부조작을 위해 현직 감독을 흉기로 찌르고 선수들을 납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대만프로야구는 본격적으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해체한 팀을 제외한 6개 팀은 2003년 단일리그로 통합됐지만 2005년~2008년 사이에도 거의 매해 승부조작 사건은 터졌다. 배후에 조직이 붙는 다는 건 그만큼 헤어 나오기 힘든 개미지옥과 같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을까. 지금 대만프로야구는 4개 팀으로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대만만큼 우리 상황이 극단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대만의 승부조작도 그 시작은 우리처럼 미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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