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를 먹다가 코끝이 찡해질 때가 있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15 14:28
  • 호수 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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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산문집 《칼과 입술》 펴낸 소설가 윤대녕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서’ 등단했다는 윤대녕 작가. 그는 2015년 캐나다에 건너가 1년여 동안 머물면서 손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끼니를 해결했다. 대개 한식을 조리해 먹었는데, 모국에서 먹던 음식과는 매번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그는 지난 세월 먹었던 음식과 맛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사람은 태어난 곳으로부터 사방 십리의 음식을 먹고 살아야 무병하다는 것을 절감한 그는 결국 돌아와 화해할 곳은 지난날의 음식·시간·사람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절 펴냈던 《어머니의 수저》를 다시 꺼내들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가끔 전화가 오갈 때마다 팔순이 넘은 나의 어머니는 더 이상 입맛이 없다며 국수나 죽으로 끼니를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육신의 옷을 벗어놓고 그만 하늘의 별들 사이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날에는 나도 국수를 삶아 먹었다.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육수를 푹 우려낸 다음, 고명으로 쓸 김치나 애호박과 새우젓을 볶아 천천히 국수를 먹으며 어머니가 이 세상에 좀 더 살아 있어주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윤대녕 지음 마음산책 펴냄 300쪽 1만3000원


 


‘맛의 기억 사전’ 형식 빌린 음식 여행 이야기


윤대녕 작가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풍경을 담아낸 《칼과 입술》은 ‘열 가지 맛의 기억 사전’ 형식을 빌려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이라 할 된장·간장·고추장·김치·장아찌·젓갈부터 소·돼지·닭, 그리고 갖가지 생선·술, 제주도와 섬진강의 먹거리 등을 정갈하게 담아낸 풍미 가득한 산문집이다. 우리나라 사방을 감싸는 지리적 음식 기행서인 동시에, 어린 시절, 방황의 청년 시절을 거치는 시간 속의 음식 여행 이야기다. “겨울의 황태 덕장은 그 풍경이 장엄하다. 바다에서 잡힌 명태가 깊은 산중에서 눈보라와 햇빛과 어둠에 번갈아 익어가는 과정은 사람이 도를 닦고 법을 구하는 일만큼이나 지난하다. 그것이 마침내 황태국이란 이름으로 아침 밥상에 올라오면 사람의 울혈진 속을 달래주는 맑고 뜨거운 해장국으로 변한다. 나 역시 해마다 속초와 강릉과 양양을 오르내리며 얼마나 많이 황태국으로 쓰린 속을 달랬던가.”


윤 작가는 학창 시절, 연말이면 문학도들과 함께 찾아가던 대전 시장의 두부 두루치기집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 집으로 배달해 먹던 두부라는 음식의 안온함을 덧붙여 기억한다. 20대 시절 방황하던 청년으로 절에 곁방살이를 하면서 벌로 장아찌만 먹어야 했던 일화도 눈길을 끈다. “내 생애 그토록 정갈한 밥상을 받아보기는 그제나 이제나 처음이었다. 그 밥은 맛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장아찌 덕분이었다. 어느 장아찌든 된장독 속에 오래 박아둔 터라 깊은 맛이 배어나왔다. 장아찌가 밥도둑 역할을 한 것이다. 한 달이나 장아찌 반찬으로 밥을 먹는 동안, 나는 몸과 마음이 지극히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 그 장아찌들은 묵언으로 전하는 스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내게 장아찌는 하나의 법이다.”


윤 작가는 데뷔 이래 줄곧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받았다. ‘시적인 문체’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 그의 글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시적 색채가 느껴지는데 《칼과 입술》에서도 그 색채가 빛을 발한다. “달밤에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오는 갈치를 볼 때마다 나는 숨이 멎곤 했다. 나로서는 도무지 형언키 힘든, 눈앞 어둠 속에서 살아 춤추는 긴 칼의 아름다움! 그 은빛의 서슬 퍼런 존재감! 그때마다 나는 그 칼에 여지없이 마음을 베였고, 누가 과연 그 순간을 지배하는지 몰라 감당키 어려운 고독에 사로잡히곤 했다.”

 

 

윤대녕 작가

“한 끼 식사가 크나큰 축복이자 위안일 때도”

 


《칼과 입술》은 윤대녕 작가가 소환한 기억의 맛이지만, 그 안에는 철저히 발로 뛴 흔적이 가득하다. 그가 소개하는 수많은 장소와 그곳의 음식들은 그의 경험과 공들인 자료 수집이 더해져 인문서를 읽는 재미까지 준다. “이 근처가 조기잡이로 유명한 칠산어장이라네.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제주도와 추자도를 거쳐 이쪽으로 조기 떼가 몰려오지. 그때가 되면 북상하는 조기 떼들이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며 바닷물 위로 뛰어오르는 걸 볼 수 있어. 수놈이 암놈을 부르는 소리라고 하지. 이봐, 봄이 되면 나는 자주 조기 떼 꿈을 꿔. 그들과 함께 푸른 카펫이 깔린 바다 속을 유영하는 꿈을 말이야.”


세태가 변하고 취향이 변하는 가운데서도 음식과 맛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 맛이 우리를 키웠고 살게 했던 힘이었기에 그러하다. 하물며 작가가 음미하는 맛의 멋은 변치 않는 고도의 미감을 선물한다. “같은 생선이라도 회를 뜨는 방법에 따라 회 맛이 달라진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또한 회를 뜨는 방법도 생선마다 다르다. 칼 솜씨를 보면 그 사람의 성품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칼 맛은 진득하고 우직하다. 화려하지 않으나 꾸밈이 없고 담백하다. 나는 그의 칼 솜씨를 ‘조선 칼 맛’이라고 일치감치 정의했다.”


윤 작가는 시종일관 맛을 떠올리면서 사람을 생각한다. 어느 음식에나 내놓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맛집 간판을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맛을 기억하게 해준 사람이 그리워 다시 달려가는 것이다. 그에게 한 끼 식사가 크나큰 축복일 때도 있다. 모든 이에게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이렇게 말한다. “저녁을 굶은 채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온 밤에 아내가 끓여주는 조기 매운탕과 뜨거운 밥 한 그릇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자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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