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선 핏줄도 없다
  • 이규석 일본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11 14:29
  • 호수 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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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오쓰카가구 ‘부녀 전쟁’ 3라운드 막 올라

 

일본 ‘오쓰카가구’를 둘러싼 부녀간 전쟁이 3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사진은 일본 도쿄에 있는 오쓰카가구 본사 빌딩과 오쓰카 가쓰히사 회장(왼쪽​), 오쓰카 구미코 사장(오른쪽)


 

 

지난해 3월27일 일본 오쓰카가구 정기주주총회에서 오쓰카 가쓰히사(大塚勝久) 회장(72)과 그의 딸인 오쓰카 구미코(大塚久美子) 사장(48)이 경영기법의 차이를 놓고 대립, 치열한 ‘프록시 파이트’(Proxy Fight·중요 의결에 앞서 주주들의 위임장을 더 많이 받으려는 공작, 위임장 쟁탈전)를 펼쳤다. 그 결과, 아버지인 가쓰히사가 딸에게 패배해 회사를 떠났다. 그렇게 오쓰카가구의 창업자인 가쓰히사는 경영권을 딸에게 완전히 넘겨주고 분을 삭이며 회사를 떠났다.

 

 

쫓겨난 아버지, 새 회사로 ‘복수혈전’


와신상담하며 권토중래를 꿈꾸던 가쓰히사는 지난해 7월 새로운 가구회사 ‘다쿠미 오쓰카(匠大塚·Takumi Otsuka)’를 설립한다. 여기서 가쓰히사는 딸의 오쓰카가구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며 딸을 향한 복수를 준비한다. 딸에 대한 가쓰히사의 복수는 분노에 찬 막무가내식 공격이 아니라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老)회장의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전개된다.


가쓰히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딸과의 경영권 다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 자신에게 고된 싸움이 될 수도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 주주총회가 개최되기 한 달 전인 2월부터 선제적 조치에 나섰다. 그는 구미코가 운영하고 있던 자산관리회사 ‘기쿄기획’을 상대로 15억 엔의 사채(社債)상환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걸었다. 가쓰히사가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한 이 소송은 딸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였다. 소송에는 최고의 변호사들을 동원했다.


한편, 작년 주주총회에서 61%의 지지표를 얻으며 아버지 가쓰히사를 회장직에서 쫓아낸 구미코 사장은 반대파들을 일소하며 오쓰카가구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어서 “가구·인테리어 업계에 있어 리딩 컴퍼니를 목표로 한다”는 야심 차고 도발적인 경영방침을 내놓았다. 지난해 7월1일에는 새로운 브랜드 비전을 발표하며 ‘신생 오쓰카가구’를 어필했다. ‘행복을 레이아웃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기업 로고도 ‘IDC(International Design Center) Otsuka’로 바꿨다. 


구미코가 이끄는 신생 오쓰카가구는 가쓰히사의 경영노선과 완전 결별했다. 가쓰히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고객을 회원제로 모셔 1대1 서비스하는 ‘고급가구 노선’이었다면, 구미코는 중간가격대의 가구를 판매하는 ‘중급가구 노선’을 취했다. 누구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가구점에 들를 수 있는 스타일로 전환한 것이다. 경영권 분쟁이 종식된 지난해 4월에는 ‘사죄 세일’이라 이름 붙인 파격세일을 단행했다. 많은 미디어가 부녀간의 경영권 분쟁을 주시했기 때문에 ‘사죄 세일’에 대한 주목도는 당연히 높았다. 특히 구미코 사장이 선착순 100명에게 거베라(Gerbera) 꽃을 직접 전달한 신주쿠점(新宿店)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어 지난해 5월에는 신생 오쓰카가구가 위기상황을 돌파한 것에 감사를 표하는 ‘감사 세일’이 이어졌다. ‘딸의 승리로 신생 오쓰카가구가 새로운 출항을 시작했다’는 자축 세일이기도 했다. 오쓰카가구는 감사 세일 덕분에 전년 동월 매출의 170%를 웃도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결국 지난해 6억3000만 엔의 흑자를 내면서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한 해를 견실하게 마무리 지었다. 지난해 전반기 몇 달은 경영권 분쟁으로 매출이 추락했지만 4월 이후부터는 구미코 사장 밑에서 순항한 것이다. 이런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은, 오쓰카가구를 알지 못했던 고객들도 연일 보도되는 부녀간 경영권 싸움을 계기로 오쓰카가구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오쓰카가구의 인지도가 올라갔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면서 제동이 걸렸다.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보였던 신생 오쓰카가구는 매스미디어의 주목도가 떨어지며 1~3월 매출도 하락했다. 4월11일에는 신생 오쓰카가구에 대악몽이 찾아들었다. 오쓰카가구를 창업했던 오쓰카 가쓰히사 전 회장이 구미코 사장이 이끄는 자산관리회사 ‘기쿄기획’을 상대로 15억 엔의 사채 상환을 요구했던 소송에서, 도쿄지방재판소가 가쓰히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딸은 소송 패배·실적 악화로 위기 맞아


판결이 나온 직후 구미코는 15억 엔 이상의 현금을 가쓰히사에게 송금할 수밖에 없었다. 가쓰히사는 갖고 있던 주식을 지난해부터 대량 매각해 20억 엔 이상을 손에 쥐고 있었고, 이번 사채상환금을 더해 35억 엔 이상의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이미 지난해 7월 새로운 가구회사 다쿠미 오쓰카를 설립한 가쓰히사는 올해 4월22일 새로운 가구판매점 1호점을 도쿄 니혼바시(日本橋)에 오픈했다. 가쓰히사의 스타일은 역시 고급가구 노선으로, 중급가구 노선의 구미코와는 정반대였다. 가격대는 대부분 100만 엔 이상으로, 오쓰카가구 전성시대의 ‘쇼 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가쓰히사는 올여름에는 일반 소비자를 배려한 대규모 가구점을, 오쓰카가구의 창업지인 사이타마(埼玉)현 가스카베(春日部)시에 오픈할 예정이다. 경영권을 놓고 딸과 골육상쟁을 펼치다가 패배했지만 채무상환소송에서 승리한 뒤 재기에 성공한 가쓰히사는 자신의 옛집이었던 ‘구미코의 오쓰카가구’를 상대로 3라운드 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오쓰카 구미코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위기에 빠졌다. 앞에서는 가구·인테리어 업계에서 리딩 컴퍼니로 군림하며 국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전국 체인 가구점 ‘니토리’가 구미코를 밀어내고 있고, 뒤에서는 아버지 가쓰히사가 숨통을 조여 오는 형국이다. 니토리는 2015년 기준 전국 점포수 383개, 매출 4581억 엔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구미코의 신생 오쓰카가구는 2015년 기준 전국 점포수 16개, 매출 580억 엔으로 니토리에 절대 열세다. 일본 가구계의 ‘걸리버’로 불리는 니토리를 추격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구미코의 신생 오쓰카가구가 니토리를 따라잡기 위해선 비즈니스 모델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혁신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단 구미코는 다쿠미 오쓰카 제1호점이 오픈한 4월22일부터 ‘대(大)감사 세일’로 이름 붙인 대규모 세일을 시작해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세일 남발’이 위험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버지 가쓰히사도 이미 ‘실지(失地) 회복’을 선언하며 파상공세를 가할 태세다. 한국 롯데가(家)의 ‘동족상잔’이나 현대가(家) ‘왕자의 난’보다 더 치열할 수 있는 가쓰히사-구미코 부녀간 골육상쟁의 제3라운드 승부는 과연 어떻게 막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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