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시대’ 종지부 찍은 김정은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7 13:44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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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의미…정상국가 체제 모색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6월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에서 국무위원장에 추대됐다.


 

 

북한이 5월 제7차 조선노동당 대회 개최에 이어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를 개최해 당과 국가의 권력구조를 개편하고 김정은을 새로운 권력기구의 수반으로 추대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체제는 당 우위의 국가체제, 즉 당-국가체제를 운영한다. 따라서 이번 최고인민회의 개최는 제7차 당대회에서 결정한 주요 정책노선을 국가의 행정경제 사업으로 구체화해 추인하는 절차를 밟은 것이다. 당대회에서 새로운 직함인 조선노동당 위원장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국가기구의 최고 수위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재추대 여부가 관심사였다.

 

 

국방위→국무위, 내각책임제 강화 차원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하고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김정은은 4년 반 동안의 수습기간을 끝냄과 동시에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를 열었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의 본격 개막을 위해 핵무력을 고도화하는 실험을 연이어 실시하고 권력구조 개편을 마무리했다. 당과 국가의 핵심권력기관의 명칭을 바꾸고 김정은을 당의 최고 수위인 당위원장으로 추대한 데 이어 국가의 수반인 국무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북한은 당의 핵심권력기관인 비서국을 정무국으로 개편하고 김정은을 조선노동당위원장에 추대한 데 이어, 국가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하고 김정은을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올렸다.

 

김정은은 아버지 시대에 구축한 선군정치에 기반을 둔 국방위원회 중심의 직할통치체제를 마감하고 당-국가체제를 복원했다.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바꾼 것은 군사 우선의 과도기적 위기관리체제를 끝내고 정상국가 체제로의 회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제국주의연합세력에 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 덕분에 ‘동방의 핵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사상·군사강국을 이뤘으니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내각책임제를 강조하면서 내각의 경제조직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당 대 당 관계는 주로 중국·베트남·쿠바 등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과 유지될 뿐 이제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국가 대 국가 차원의 상대를 늘려나가야 한다. 따라서 국방위원회라는 군사기구의 수반으로 다른 나라를 상대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 반영돼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하고 정상국가로 변신을 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1972년 주석제 헌법에 있던 중앙인민위원회를 복원해 김정은이 위원장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새로운 기구를 만들지 않고 기존의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했다. 이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강조한 내각책임제 강화 차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방위원회 위에 새로운 기구를 만들 경우 옥상옥으로 내각의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로운 기구를 내지 않고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한 것으로 보인다. 1972년 북한 사회주의헌법(주석제 헌법)은 주석-중앙인민위원회-정무원(지금의 내각)으로 이어지는 3단계 국가권력구조였고, 국방위원회는 중앙인민위원회 아래 있는 외곽 기구였다. 김일성 주석 사후 3년상을 치른 다음 1998년 헌법을 채택하면서 주석과 중앙인민위원회가 폐지되고 국방위원회-내각의 2단계 국가권력구조를 만들었다. 이번 헌법 개정에서 국방위원회 위에 새로운 기구를 만들지 않고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한 것은 내각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들은 당과 국가 주요 기관의 책임자급들로 채워졌다. 황병서(군총정치국장·당 정치국 상무위원), 최룡해(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박봉주(내각 총리) 등이 부위원장에 올라 당·정·군을 아우르는 모양새를 갖췄다. 국무위원에는 김기남(선전·선동), 이만건(군수공업부장), 김영철(통일전선) 등 당 정무국 위원과 박영식(인민무력부장), 김원홍(국가안전보위부장), 최부일(인민보안부장) 등 군부 최고위 인사들을 포함시켰다. 북한이 우리의 국무회의와 유사한 국무위원회를 조직하고 각 직능별 책임자급을 위원으로 구성함으로써 서방의 국가체제와 유사한 국가권력구조로 정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평통 국가기구 편입, 남북관계 개선 노리나

 

당의 비서국을 정무국으로 개편한 데 이어 국가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한 것은 당과 국가의 최고직책의 명칭을 바꾸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공식 승계 과정에서 아버지를 영원한 수령,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한 것이 전통이 돼, 김정은도 김정일이 가졌던 당 총비서, 국가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직함을 사용하지 않고 제1비서, 제1위원장이라는 어색한 직함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여러 비서들 중 첫 번째라는 의미의 제1비서란 직함은 집단지도체제 성격이 강해 유일체제에 맞지 않다고 볼 수 있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직책은 아버지가 가졌던 국방위원회 위원장보다 높은 지위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북한 최고권력자의 호칭 문제를 해결하고 당과 국가의 최고직책 약칭을 ‘위원장’으로 통일할 수 있는 묘수를 이번 권력기구 개편에서 찾은 것 같다.

 

문제는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기구의 명칭을 바꾸고 수위에 김정은 위원장을 추대했다고 해서 정상국가로 대우받을 수 있느냐 여부다. 북한은 외부세계가 핵보유국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형화·경량화·다종화된 핵무기를 보유한 정상국가로 대우받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외부세계는 북한을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국가기구 개편에서 주목할 또 다른 부분은 당의 외곽기구였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국가기구로 옮겨온 것이다. 조평통은 대남·통일사업을 전담하면서 남북회담의 북측 대표기관으로 장관급회담과 차관급회담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통일전선부와 함께 대남정책을 주도해온 대남기구다. 남북장관급회담을 추진할 때면 늘 회담 대표의 ‘격’ 문제로 마찰을 벌여온 전례가 많았는데, 이번에 조평통을 국가기구로 편입시킴으로써 회담 대표의 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조평통을 국가기관으로 편입시킨 것과 관련해 앞으로 남북관계를 통일전선전술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보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 간 국력 격차가 심화되고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조평통을 국가기구로 편입시켜 남북 현안을 국가기구의 제도적 틀에서 다루려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북한이 우리의 통일부나 통일준비위원회와 유사한 조평통을 국가기구로 편입한 것은 남북관계 발전을 제도화하고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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