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송파 이별살인범’ 인면수심의 미소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6 14:35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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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우발적 범행’ 주장하며 4명의 변호사 선임, 피해 여성 가족들 “사과 한마디 없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여자친구를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한아무개씨가 4월20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야외 주차장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대낮에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이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흉기에 마구 찔렸다. 범인은 이 여성의 전 남자친구였다. 사건이 일어난 지 2개월이 지났고 현재 범인은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피해 여성의 부모가 “억울하다”며 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의 도움을 호소하고 범인을 강력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

 

4월19일 화요일은 화창한 봄 날씨였다. 가락동의 한 아파트에 살던 김정은씨(여·32)는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 순간 화들짝 놀라며 ‘악~’ 하는 비명 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졌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 한아무개씨(32)가 출근 시간에 맞춰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씨는 흉기를 들고 김씨를 죽이려고 했다. 

 

김씨는 순간적으로 한씨를 피해 맨발로 아파트 야외 주차장 쪽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넘어지자 한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흉기로 김씨의 목·심장·옆구리 등 6곳을 찔렀다. 한씨는 범행 후 흉기를 아파트 쓰레기통에 버리고 준비한 오토바이를 타고 황급히 도망갔다. 김씨는 급히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상처가 깊어 끝내 숨졌다. 

 

아파트 현관 입구의 폐쇄회로(CCTV)에는 비명을 지르며 건물을 빠져나가는 김씨를 칼을 들고 쫓아가 주차장에서 찌르는 한씨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범행 현장에서는 한씨가 남기고 간 회칼·과도·로프·염산 등이 발견됐다. 범행을 철저히 준비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 주변 CCTV 분석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한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관할 송파경찰서는 한씨를 검거하기 위해 강력 6개 팀을 투입해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 통신수사와 도주로 분석에 나섰다. 

 

한씨는 범행 후 처음에는 송파구 문정동으로 도주했다. 피해자인 김씨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다음에 도주한 곳이 범행 현장에서 약 15km 떨어진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한 비닐하우스다. 경찰은 추적 끝에 이곳에 은신해 있던 한씨를 범행 하루 만인 20일 오후 12시43분쯤 긴급 체포했다.

 

이곳은 김씨가 한씨를 만나기 전에 10년 정도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의 집 근처였다. 이에 대해 김씨의 아버지는 “범인이 딸을 죽이고 엄마와 전 남자친구에게까지 해코지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든다. 사건 이후 경찰에 이것을 밝혀달라고 했는데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서로 압송된 한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자친구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흉기는 자살하려고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씨는 여자친구를 살해하면서 부러진 칼날에 왼손을 심하게 다쳐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한씨는 체포될 때부터 갖고 있던 흉기(과도)를 수술 후 감은 붕대 속에 숨겼다. 

 

경찰은 한씨를 체포하면서 몸수색을 벌여 커터칼 하나를 찾아냈지만, 그가 갖고 있던 또 다른 흉기인 과도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씨는 유치장에 입감하기 전 몸수색 당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는데, 붕대 속에 감춘 흉기를 들키지 않기 위한 꼼수로 여겨진다. 그는 유치장에 입감된 다른 이들에게 흉기를 보여주며 자랑했고, 유치인 중 한 사람이 면회를 가면서 유치장 관리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경찰은 유치장 모포 속에 숨겨둔 길이 23㎝(칼날 길이 12.6㎝)짜리 과도를 발견했다. 

 

 

병적인 집착, 무서운 스토킹·협박

 

한씨는 왜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가 잔인하게 죽인 것일까. 두 사람의 ‘악연’은 지난해 6월께 지인의 소개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불타는 사랑을 했다. 거의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하며 김씨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여자친구를 위하는 애틋함처럼 보였다. 아침에는 김씨를 회사까지 출근시켜주고 퇴근 후에는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잠시였다. 한씨는 점점 김씨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면 간다고 이야기해야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고하지 않으면 화를 냈다. 어쩌다 말을 못하면 “왜 나한테 말 안 해” 하면서 병적인 집착을 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점점 다툼이 잦아졌고 결국 올해 2월께 김씨가 결별을 선언했다. 한씨는 헤어지자는 말에 “함께 죽자” “죽여버리겠다”며 위협하는 등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부터 잔혹한 스토킹이 시작된다. 

 

 

故 김정은씨의 생전 모습

 

한씨는 헤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에게 손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에는 부부가 상대편을 부르는 ‘여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낯부끄러운 말이다. 한씨는 김씨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씨의 집착은 스토커로 이어졌고 한 집안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끊임없는 협박과 감시가 시작됐다. 거의 매일 김씨의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멀리서 지켜봤다. 심지어는 아파트 맞은편 교회에 올라가 집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쉴 새 없이 문자와 협박전화를 했다. “예전 여자친구도 헤어질 때 죽이려다 실패해서 다리만 부러뜨렸는데 너는 실패하지 않겠다”며 협박의 수위도 점점 높여갔다. 

 

한씨의 스토킹과 협박 때문에 김씨 부모의 걱정과 근심도 커져만 갔다. 딸이 무섭다고 하자 아버지는 한 달 정도 출퇴근을 함께 했다. 지하철을 탈 때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엄마에게 전화해 내리는 시간과 출구를 알려주고 만나서 집에 왔다. 

 

사건 당일 김씨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아침 운동을 갔다. 얼마 동안 한씨가 집 앞에 나타나지 않자 스토킹이 잠잠해졌다고 순간 방심했다. 한씨는 이것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김씨를 살해한 것이다. 김씨 어머니는 사건 전날 딸과 마지막 대화를 했다. 미용실로 찾아온 딸이 머리를 손질하고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던 것이다. 그 모습은 미용실 안 CCTV에 그대로 찍혀 있다. 어머니는 그날 딸과 함께 퇴근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한씨는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병적인 집착을 보인 것일까. 한씨의 성장과정에서 단서를 엿볼 수 있다. 한씨는 13살 때인 1997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미국 시민권까지 취득했지만 제대로 적응을 못했다. 결국 3년 만에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남동생은 미국에서 살았고 한씨는 10년을 홀로 살았다. 아주 예민할 때인 사춘기 시절을 외톨이처럼 보낸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이 김씨에게 병적 집착을 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씨는 자신의 직업도 속였다. 처음에는 유명 은행에 다닌다고 했으나 이것은 거짓말이었고 그의 실제 직업은 의류업 종사자였다. 그는 이곳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인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와 사귈 때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한씨는 김씨에게 돈(340만원)을 빌리기도 했는데 이를 빌미로 협박까지 일삼았다. 결국 한씨의 병적인 집착은 헤어진 여자친구를 죽이는 것으로 이어졌다. 

 

 

피해자 가족 “사형 선고하라” 호소

 

김씨가 살해당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피해자 가족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1남1녀 중 장녀였던 김씨는 부모에게는 든든한 딸이었다. 대학 졸업 후 어려웠던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할 만큼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부모님에게는 인정 많고 속이 깊은 딸이었다. 그런 딸이 전 남자친구에게 죽임을 당했다. 부모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고 사는 게 지옥이 됐다. 

 

지금도 딸이 살해당한 주차장을 아침·저녁으로 마주쳐야 한다. 어머니는 이곳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며 주차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리 딸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 딸 얼마나 아팠을까”라며 손으로 바닥을 쓸어 본다. 

 

그런데 범인의 행동은 김씨 부모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 한씨는 지금까지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고 형량을 낮추려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한씨는 법무법인을 통해 변호사 4명을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한씨는 5월18일 재판에 넘겨졌고 6월23일에는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한씨의 변호인은 살해 사실만 인정하고 스토킹이나 협박은 부인했다. 또 계획적인 살인이 아닌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또 한씨가 지병을 앓았다며 정신감정을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현재 유족들은 범인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는 한씨를 강력하게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받기 시작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살인마가 경찰조사에서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진술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미어진다. 아빠로서 딸에게 ‘마지막 선물’ 하나는 꼭 해주고 싶다”며 “잔인한 살인마를 이 땅에서 완전히 격리시켜 다시는 발붙이고 살 수 없도록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돼야 한다는 취지의 탄원서 한 장씩 부탁 드린다”고 호소했다.

 

 

故 김정은씨 아버지 김용학씨

“범인은 우리 가족 모두를 죽였다”

 

사건 이후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부모 입장에서 딸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살인 사건을 텔레비전에서만 봤는데 실제 내가 당하니까 이래서 가정이 파탄 나는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은 가족 모두가 똘똘 뭉쳐서 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열심히 싸우자고 했다.  

 

범인이 정말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나?


그 부분은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분노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러다 국선변호인 선임을 취소하고 법무법인을 통해 변호사를 4명이나 선임했을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 4명을 선임했다는 것은 언제 알았나?


1차 공판이 원래는 6월16일로 잡혔었다. 재판에 가기 전에 법원 사이트에서 사건번호로 조회에 봤더니 연기 신청이 돼 있었다. 그때 법무법인을 통해 변호사를 선임한 것을 알았다. 

 

범인의 부모나 가족들이 찾아오거나 만난 적은 있었나?


없었다. 찾아온 적도 연락 온 적도 없었다. 

 

탄원서는 얼마나 받았나?


처음에는 딸을 잃은 슬픔 때문에 정신없이 지냈는데,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딸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범인의 형량이라도 제대로 받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탄원서를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받은 게 몇 만 명은 될 것이다.

 

지금 심정은?


딸을 잃으면서 가족의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다. 딸이 병원에 다니면서 월급이 많아서 가계에도 도움이 컸다. 그런데 사건 이후 집사람이 하는 미용실은 가게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할 판이다. 집도 월세인데 수입이 없다 보니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다. 범인은 우리 가족 모두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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