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 교수, 최초의 게임 사전을 집대성하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7.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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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전》 제작한 이인화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인터뷰

 

게임사전을 책임집필한 이인화 교수

 

 

6월28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SK텔레콤관에서는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을 행사가 열렸다. 게임서비스업체 엔씨소프트가 운영하는 비영리재단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이화여대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가 제작한 《게임사전》의 제작발표회였다.

《게임사전》은 국내 최대 게임 웹진인 ‘인벤’의 게임별 사용자 커뮤니티, 게임 정보, 게임 뉴스 항목의 텍스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완성했다. 최근 5년(2010년 4월~2015년 3월)간 공통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용어를 추출해 말뭉치 용량 7.4기가바이트(GB)를 분석했다. 제목은 ‘사전’이지만 사실상 게임학 이론서에 가깝다.

이 책의 제작 총괄을 맡은 사람은 소설가이자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 이인화 교수다. 7월의 첫 날,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이인화 교수를 만났다. 덥수룩한 앞머리와 소년 같은 웃음이 트레이드마크인 이 교수는 전날 학생들과 함께 제주도 카카오톡 본사로 답사를 다녀왔다며 밝은 표정으로 자랑했다. 그는 초판이 완판됐다는 소식과 함께 “함께 책을 만든 석박사 과정생들에게 생각보다 인세가 제법 돌아갈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1304페이지 분량의 이 두꺼운 책이, 그리고 6만8000원이라는 비싼 책이 완판됐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겸손하고 소박한 그였지만 인터뷰가 끝난 뒤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 거기에 돈 되는 것까지 한 곳에 수렴한 능력자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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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전》이 초판 1000부가 출간되자마자 완판됐다고 들었다. ‘잘 팔릴까’ 걱정이 많았을 텐데 축하드린다. 이 책의 기획은 누가 먼저 제안한 건가.

완판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시장 반응이 뜨거울 줄은 저도,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이하 재단)도, 심지어 출판사도 몰랐다. 제작발표회 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2쇄에 들어갔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가 몸담고 있는 이화여대의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에서 지난 2004년부터 12년간 해외에서 출판되는 주요 게임학 이론서들을 읽고 세미나를 해왔다. (이인화 교수의 연구실에는 국내외에서 나온 게임 이론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학문으로서 ‘게임’은 지난 몇 년 간 ‘지식의 빅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루가 멀다하고 중요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내에는 게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집단이 없었는데, 우리 학회는 그렇게 공부해 얻은 지식들을 그냥 썩히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번 책으로 집대성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재단 쪽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다. 재단의 이재성 전무가 게임 이론서를 제작하면 제작비를 후원하겠다고 했다.

제작비는 마련됐고, 문제는 출판사였다. 몇 군데에 기획안을 보냈지만 다들 난색을 표했다. 이 책이 하드커버인데다 워낙 두꺼워서 책이 갈라지지 않게 제본을 하려면 많은 노하우와 공이 들어간다. 하지만 결국 수익성이 문제였다. 그러던 중 예전에 제 소설을 내줬던 해냄출판사에서 출판 승인이 났다. 사실 처음에는 출판사도 ‘모험을 해보자’는 심정이었을 거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린다.

제작기간에만 총 1년 반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원래 책이 지난해 말에 나왔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작업이 오래 걸렸다. 게임이란 게 독특하다. 사전에서는 단어를 정의하는 표제어가 가장 중요하다. 문장은 명사로 끝나는 게 원칙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학문적 논의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린 《게임사전》의 첫 단어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가마수트라(Gamasutra)’란 사이트 명칭인데, 이게 플랫폼이기도 하면서 서비스이기도 하고,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게임 용어들이 다 그렇다. 플랫폼․서비스․기기․커뮤니티의 속성들이 혼재한다. 결국 우리의 작업은 해당 용어가 어느 쪽 정의에 더 가까운가를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언어의 사전적 정의가 왜 중요한가. 왜 꼭 사전이란 틀 속에 용어를 담아내야 했는가.

지금도 인터넷 상에 각종 게임 용어에 대한 정의가 많다. 대체로 자의적인 해석이다. 때문에 게임에 대해 논의를 하려고 해도 일단 용어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이뤄지기 힘들다. 정의 자체에 논리적 결함이 없고 사회적인 승인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정의정보(definition information)’가 필요한 것이다.

《게임사전》의 발간은 이제까지 온라인상에 부유하던 게임 용어들을 ‘종이’라는 쉽게 변하지 않는 매체에 가둬둔다는 의미가 있다. 살아 움직이는 언어를 검은 잉크 안에 봉인해 물리적으로 변경시킬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소 폭력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개념들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면 토론이 이뤄질 수 없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게임이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이유다. 결국 게임 용어의 ‘정립’은 게임이 학문이 되기 위한 첫 단계인 셈이다. 



《게임사전》의 전반부는 게임에서 유래된 ‘일반 개념어’ 정의로 채워져 있다. 책의 후반부는 대표 게임 소개다. 게임 ‘잘알못’으로서 용감하고 무식하게 질문하겠다. 우리가 왜 게임에 대해 이렇게까지 알아야 하는가.

사용 언어의 차이가 사실은 ‘세대 분리’를 유발하는 중요 요인이다. 지식으로 공유해야 한다. 저는 ‘겜돌이(게임하는 사람을 낮춰부르는 말)도 언중(言衆)’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란 상당히 위계적이다. 언어는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굉장히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대통령이나 장관, 석학이 한 말과 피시방에서 죽치고 있는 10대의 말은 위계가 다르다. 이 위계가 너무 차이가 나버리면 사회 양극화가 발생한다. 안 그래도 세대 갈등이 심한 세상인데 언어에서까지 이래버리면 사회 전체적으로 세대 간 유대감과 공감을 확보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언어는 사회적 갈등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요즘 10대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90%가 게임어인데 기성세대가 이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다면? 이 둘은 실상 다른 나라 사람들인 것과 다름없다. 한 집 안에 외국인들이 사는 셈이다.

《게임사전》을 읽어야 할 사람은 기성세대다. 문화콘텐츠 사업 중 가장 많은 일자리가 있는 곳이 게임 산업이다. 게임회사를 다니면서도 정작 본인은 게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다. 경영지원팀이나 경비업체 등 비개발자 직군에 소속된 이들 가운데 “나는 게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문제가 있다. 미국의 픽사(Pixar)는 집단 창의와 비개발직군의 협업으로 기업혁신을 이뤄냈다. 우리나라 기업, 특히 IT 기업에도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

《게임사전》은 단순히 게임에서 사용되는 용어 풀이만 한 것이 아니다. 게임학, 게임문화, 게임산업에서 쓰이는 용어들을 그 대상으로 했다. 일반적으로 게임 용어는 비속어․은어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비속어․은어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해당 용어를 사용하는 ‘언중(言衆)’이 형성되면서 일반 지식 차원으로 올라온 게 있다.

언어현상이란 건 평등한 것이다. 어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의 수준이 저급해 일반어가 될 수 없고, 어떤 언어는 언중의 수준이 높아 언어가 될 수 있고, 그런 게 아니다. 일단 언중이 이뤄진 언어는 모두 평등하다. 그런 점에서 게임어는 일상 언어의 영역에 완전히 들어와 있다. 

 


우리나라의 게임학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봐야 할까.

북미는 게임학 담론이나 게임 평론이 활성화돼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게임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문화 자체가 없다. 게임의 산업적․문화적 외형은 굉장히 큰데 학문적 외형은 너무 초라하다. 주요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게임학을 가르치는 예는 거의 없다. 가끔 단발성, 프로젝트성으로 가르치긴 하지만 학술적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임사전을 만들 때 가장 주의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제목이었다. 사실 어떻게 제목을 뽑더라도 욕먹을 것을 감수했다. 게임 유저들의 특징이 다들 자신이 하는 게임의 열혈 팬이란 거다. 아니, ‘극렬’이란 표현이 더 맞겠다. 누구나 자신이 했던 게임이 가장 좋은 게임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표 게임선에 그 게임이 안 들어가면 화를 낸다. 게임에 대한 이론서를 만들면서 가장 부담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교수님 스스로 게임 폐인이라고 들었다. 요즘에 ‘오버워치’ 하느라 밤잠이 부족하다고…

하하 맞다. 제가 겜돌이다. 사실 온라인 게임을 늦게 시작했다. 첫 게임이 2003년 ‘리니지 2’인데, 마흔 다 돼서 시작했다. 이대에 디지털미디어학부를 만든 뒤 게임산업을 잘 알려면 내가 좀 알아야겠다 싶었다. 그때 마침 나온 게임이 ‘리니지 2’였다. 누군가가 3D 그래픽이 온라인으로 돌아가는 게임이 나왔다고 그래서 ‘그럴 리가 있나’ 싶어 처음 시작했다. 첫인상은,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당연해졌지만 당시로선 온라인으로 3D를 돌린다는 게 혁신적이었다. 제가 엔씨소프트란 회사에 호감을 갖게 된 계기다.

이후 게임에 완전히 빠졌다. 게임 중독도 심했다. 그런데 사실 전 ‘중독’에 대해 사회적 통념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인간은 지적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쉽게 권태를 느끼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똑같은 콘텐츠를 주구장창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번은 중독이 됐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권태기가 오면서 그 상태를 극복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문제 삼아온 중독 담론은 대상자가 게임에 제일 심하게 빠진 그 시점만으로 문제를 삼는다. 때문에 극단적인 형태도 보이고 그게 사회문제로까지 여겨지는 것이다.

사실 중독이란 말은 몰입이란 말과 같다. 몰입은 모든 창의(創意), 창조(創造)의 원천이다. 누군가가 대상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그 관계를 정리해내려면 몰입해야 한다. 그 과정을 저도 겪었다. 



제자들과 함께 즐길 때도 있겠다.

요즘도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한다. (그는 “집에서 아버지가 게임이나 하고 앉아 있으면 애들이 날 어떻게 보겠냐”며 피시방 행을 고집한다고 했다). 지도 학생들도 다 게임을 한 두 개씩 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내 게임 아이디를 절대 비밀로 부친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예전엔 학생들이랑 같이 게임을 하고 싶어서 아이디를 알려주고 같이 ‘팀플’하고 그랬는데, 위기 상황에서 학생들이 저를 ‘힐링(healing)’해주고, 대신 죽고 그러더라. 교수와 제자라는 권력관계가 게임 세상 속에서 그렇게 드러나는 거다.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 다시는 아이디를 공개하지 않는다.

굳이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제 친구들은 전국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제주도에 가면 게인 채팅창에서 만난 제주도 친구와 ‘벙개’해서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보이스 채팅’을 통해 동료애를 확인할 수 있다. 하하

요즘 PC방에 가면 10대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보면 10대부터 50대까지 나란히 앉아서 게임하고 있다. 예전엔 게임하는 세대가 딱 나뉘어져 있었는데 게임은 이제 현대 사회의 문화가 됐다.


우리가 게임을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우리가 흔히 소설에서 명작(名作), 영화에서 명화(名畵)라는 표현을 쓰는데 사회는 게임에도 명작이 있단 걸 모른다. 영화에도 쓰레기 같은 영화가 있고 명작이 있듯이 게임에도 쓰레기와 명작이 있다. 그 두 개는 분리해서 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유저로서 우리가 주의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그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지금이야 소설이나 영화가 문화의 아이콘이 됐고, 안전하고 전통적 인본주의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세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의 반응은 달랐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모 선생은 “소설을 읽는 며느리들은 다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설을 저급한 문화로 보고 이에 대한 사회적 반감 역시 심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옛날 영화 가운데 ‘전함 포템킨’처럼 명화만 기억하고 있지만 당시에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도 많았다. 영화 산업은 엄청난 사회적 시비에 시달리면서 결국 지금의 주류 문화가 된 것이다.

게임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년 간 공공의 적으로서 게임은 갖은 구설수에 시달렸다. 이제 막 사회․문화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게임사전》에 대한 뜨거운 반응 역시 그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현존했던 어느 매체보다 몰입을 유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때는 지나치게 빠져들 수 있지만, 그 수위를 스스로 조절하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세대가 지금의 세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시대의 감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 물론 윤리감각이 전제돼야 하지만.


내 생애 최고의 게임을 꼽으라면?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잊을 수 없지 않나. 당연히 내 첫사랑 ‘리니지 2’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길드워’인 것 같다. 제가 게임 스토리 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이었다. 2005-2008년 북미 온라인 판매 1위였다.

게임 스토리는 중요하다. 물론 게임 개발에 있어서 여전히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시스템이다. 보통 시스템을 만들고 스토리를 입히는 식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제일 중요한 게 전투 콘텐츠(배틀)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월드), 그리고 그 안에서 해결해야할 일들(퀘스트)이 있다. 월드와 퀘스트 부분이 스토리의 영역이다.

한 개의 다중접속온라인 역할수행 게임(MMORPG, 복수의 플레이어가 온라인을 통해 동시 접속하여 함께 플레이하는 역할수행 게임) 안에는 최소 3400개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크고 작은 퀘스트들이 3400개가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메인 플롯이 있다. 이를테면 ‘대격변이 일어나 땅이 뒤집혔다’는 등 게임 속의 영역을 크게 구분 짓는 스토리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수십 명의 게임 스토리 작가들이 투입된다. 게임 장르에 따라 역사․SF․판타지 소설작가 등이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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