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결정, 민주주의의 오류에 빠졌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7.0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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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말하는 브렉시트와 민주주의

 

 

 

“민주주의라는 공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가 왔다.”


지난 6월24일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전문가 칼럼 전문 기고매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웹사이트에 칼럼이 하나 올라왔다.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미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기고한 ‘영국 민주주의의 실패(Britain's Democratic Failure)’란 제목의 글이었다. 이 글에서 로고프 교수는 “당초에 국가적 결정을 단순 과반수에 맡긴다는 게 잘못이었다”라며 “국민투표에 의한 영국의 EU 탈퇴는 ‘민주주의의 실패’였다”고 혹평했다.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다. 그의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영국 민주주의의 실패’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 가운데 가장 바보 같았던 것은 한 국가가 유럽연합에서 찢어져 나오는데 있어 애초부터 말도 안 되게 낮은 장벽을 뒀다는 점이었다. 23년간의 둥지를 떠나는 데 필요한 것은 다수의 표뿐이었다. 투표 참여자가 유권자의 70%라고 했을 때 브렉시트를 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은 겨우 유권자의 36% 뿐인 셈이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공화국식 ‘러시안 룰렛 게임’일 뿐이다.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판단이 그에 응당한 견제와 균형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다.

브렉시트 재투표 얘기가 나오는데 이건 마땅한 대책이 아니다. 영국 의회의 다수가 브렉시트를 지지했어야 했나. 그것도 아니다.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 국민들이 자신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알았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사실 이 투표가 세계 무역 시스템에 그리고 영국 국내의 정치적 안정성 측면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금 분명한 것은 그 결과가 썩 좋은 그림은 아닐 것이란 점이다. 

서구의 시민들은 우리가 평화로운 시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알아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과 역시 빠르게 변하는 우선순위는 전쟁의 발발 없이도, 지극히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거쳐서도 충분히 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52%의 득표를 통해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려도 괜찮은가?

내구성 측면에서 봤을 때,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것보다 웬만한 국가들에서 부부가 이혼을 하는 게 더 어렵고 까다로울 것 같다. 물론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이토록 쉬운 게임의 룰을 만든 것은 아니다. 2014년 스코틀랜드의 독립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선례가 있고 이에 앞서 1995년 퀘벡의 전례가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러시안룰렛 게임에서 실제로 총탄이 발사돼 치명상을 입힌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장전돼있던 단 한 알의 총알이, 이번 브렉시트에서 드디어 걸린 셈이다. 그리고 이젠 게임의 룰을 다시 생각해야할 때가 왔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 의해서든, 오직 ‘다수의 룰’에 따라 결정했다고 해서 이것이 ‘민주주의적인 결정’이라고 하는 건 ‘민주주의’란 용어를 왜곡하는 것이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균형과 견제하는 시스템을 함께 발전시켜왔다. 소수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막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잘못된 정보에 의한 성급한 결정을 피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그 결정이 거대하고 파급력이 큰 것일수록 결정을 내리기까지 거쳐야 하는 장벽은 높다.

헌법 개정 등 법률 제정이 예산안 통과보다 까다로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한 나라가 지역블록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투표가 음주 연령을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보다 쉬워선 안 된다.

브렉시트 안 가결 이후 유럽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의 탈퇴 러시에 직면했다. 지금 시급한 문제는 이 같은 탈퇴를 결정지을 만한 더 나은 방법이 없겠느냐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정치학자들은 만나 물어봤지만 안타깝게도 답은 하나, 단기적 방안은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적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겨우 51%를 넘기는 수준이 아닌 ‘압도적 다수’를 요구한다. ‘압도적 다수’에 있어서 딱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통상적인 원칙은 이 다수가 명백히 안정된 수로서 과반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앞날을 결정지을 근본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다. 이런 결정을 감정적 판단에 치우쳐 얇디얇은 소수 의견에 기반을 두고 이뤄져선 안 된다.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 이후 당장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침체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초래될 경제적․정치적 혼란이 브렉시트에 한 표를 행사한 이들에게는 구매자의 후회(물건을 사고 난 뒤 잘못 산 것 같아 후회하는 것)’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투표의 후폭풍은 예측 불가하다.

고대부터 철학자들은 과반수 룰의 힘에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소수 의견을 보호하는 것,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관계집단에 더 많은 의사권을 보장해주는 것 등이 등장한 이유다.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 입법기관에서 투표는 환호성 소리와 박수갈채로 정해졌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환호 소리의 강약을 조절했다. 관료들은 군중들의 환호 소리를 듣고 판단해 그 결과를 선포했다. 불완전한 체제지만 어쩌면 최근 영국서 일어난 일보다는 더 합리적인 시스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순수한 민주주의 방식을 보여줬던 아테네에서는 남성이라면 계층과 상관없이 동등한 투표권을 가졌다. 아테네인들은 이런 방식의 투표를 통해 몇 차례 큰 전쟁을 치룬 뒤에야 나랏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보다 독립적인 집단에 힘을 실어줄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떠했나. 거듭 말하지만 이처럼 중대한 결정이 정해지기까지 거쳐야할 장벽은 더 높아야 했다. 예를 들어 투표를 몇 차례에 나눠 하거나 더 많은 득표수를 요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적어도 이번처럼 단 한 번의 일시적인 투표로 모든 게 결정돼선 안됐다.

영국 국민투표는 유럽 전체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세계가 이에 어떻게 대처하고 영국 정부가 스스로 재건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앞으로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이번에 목도했듯이 단순한 ‘과반수 룰’이라는 민주주의의 표준 규약은 혼돈의 공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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