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만열 교수의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1 10:28
  • 호수 139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속도’만 치중하다 ‘방향’이란 중요한 가치 잃어”

 

  이만열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324쪽
  1만6000원

 


 

“나도 속도만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일원이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를 살펴보면 기계적인 속도보다 인성·정신세계를 중시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분명히 한국 전통문화는 방향·가치·신념을 중시했다. 방향은 도덕적 윤리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시험점수·월급·집값 등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 강조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바로 도덕적인 가치, 미학적인 가치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잘 아는 외국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미국인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진단한 책을 펴냈다. 쓴소리 같은 제목을 단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의 저자 이만열 교수(본명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눈에 비친 한국은 경제성장에 치중해 지난 수십 년간 ‘속도’를 내는 데만 박차를 가한 결과, ‘방향’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한국서 제일 먼저 받은 선물은 마음의 감동”

 

이만열 교수는 1964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출생해 1997년 하버드대학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우연히 방문한 한국에서 한국 여성과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뤘다. 한국에서 15년 동안 살면서 인문학 교수로서 동아시아와 한국 문화에 관한 글을 100여 편 발표하는 등 활발한 집필과 강연 활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사이 이만열이라는 한국 이름을 얻었다.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1991년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때였다. 서울에 도착해 한 백화점 지하에 있는 식당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 직원들이 세심한 것 하나까지 신경을 쓰며 진심으로 나를 대했다. 나는 그들의 그런 모습에 놀라 잠시 머뭇거렸다. 일본에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도 손님이 오면 아주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일본 사람들의 친절은 의무감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느낀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일본에서 느낀 상호작용의 차이는 바로 마음이 오가느냐의 여부였다. 내가 한국에서 제일 먼저 받은 선물은 이러한 마음의 감동이었다.”

 

이 교수는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서 많은 장점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한국의 위기를 몸소 체험하면서 한국만의 문제점과도 맞닥뜨릴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이 기적 같은 압축 성장을 이뤄냈지만, 상대적으로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는 퇴보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이 잃어버린 ‘목적지와 방향’을 찾을 방법으로 인문학 교육의 부활을 제시한다. 세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인문학이야말로 급변하는 미래시대에 가장 필요한 학문이며, 깊이 있는 토론과 독서, 상상력을 넓혀주는 글쓰기가 대안이라는 것이다. 

 

“인문학 교육은 개개인이 사회나 세상을 복잡한 형상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더 나아가 어떠한 가치나 권위가 문화·사상·경제·기술 등 복잡하게 얽힌 구조로부터 형성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예컨대, 기술 전문가는 차세대 스마트폰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사회학·인류학 등에 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는 학생은 이와 같은 기술이 사회 기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 이민자 가정 출신인 이만열 교수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특별한 교육법도 소개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인문학적 소양을 다지고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유대인식 교육법과 동서양 고전 읽기를 통해 단단한 정신을 만들 수 있었다. 교육의 핵심은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깨닫고 실천으로 옮기는 저력을 쌓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부합하기 위해 필요한 학교는 사막과 같은 비인간적인 교육이 아닌 인간다운 교육을 해주는 곳이다. 인간의 본질과 철학·문학·예술 등 학생들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커리큘럼에 투자해야 한다. 결국 교육이라는 것은 돈벌이가 목적이 아닌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다. 대학이 진정한 교육을 추구한다면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세계 곳곳서 한국인 만나기가 20억 중국인보다 더 쉽다”

 

교육은 장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훌륭한 교육 시스템이란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돈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교육에서 토론을 장려하지 않는 분위기를 지적하며 토론 문화를 정착시킬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먼저 교실의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교수는 가운데서 강연하고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팀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하고 결론을 발표하는 게 중요하다. 학생들은 서로 협력해서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을 평가하지 말고 협력하는 것을 평가해야 한다. 미래의 교육은 바로 협력의 교육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한국 문화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소개하며 세계 속 한국의 위상과 역량을 재조명하기도 한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과장을 보탠다면 20억 인구의 중국인보다 더 찾기가 쉽다.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이 생생한 경험들이 한국 사회에 축적되고 있다. 이것이 김치처럼 발효되면 나중에는 엄청난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