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당 최소 200만원...부르는 게 값인 미국 대입원서 대필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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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돈을 받고 문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대필 업체가 호황을 맞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는 쉽게 대필작가를 구하는 글들을 볼 수 있다. 일자리를 찾는 대필작가도 의외로 적지 않다. 방송작가나 예비 소설가 등 문학계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부터, 전․현직 언론인, 대학원생, 시간강사, 심지어 전업 대필작가까지 다양한 이들이 대필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대신 써주는 분야는 다양하다. 대입원서부터 로스쿨 원서, 보고서, 자서전, 심지어 반성문까지도 이들의 몫이다.

특히 미국 대학 진학이나 특수 직업을 목적으로 하는 원서 작성을 의뢰할 경우 대필작가의 전문성도 요구되기 때문에 믿을만한 작가가 부족하다. 이럴 경우 부르는 게 값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필로 더 나은 서류가 필요한 사람들도 음성적으로 접근하고 대신 써주고 서류의 격을 올려주는 작가도 음성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다보니 자격이 안 되는, 혹은 경력을 속인 대필 작가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도 나오고 있지만 피해구제는 꿈도 꿀 수 없다.


“돈 없는 명문대생 고소득 알바로”

외국대학 입시문서 전문 대필작가인 김아무개씨는 대학원생이다. 3년차 대필작가인데 그의 이력은 한 마디로 빵빵하다. 국립대 학부 출신, 뛰어난 영어실력, 여기에 전공분야 전문성까지 갖췄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 ‘경제력’이다.

서울 유명 대학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그에게 글쓰기는 ‘고비용 알바’로 적격이다. 외국의 명문대 혹은 명문고에 자식을 보내려는 중․고등학생의 학부모가 그의 주 고객이다. 그가 써주는 입학용 에세이는 건당 200만원부터 시작한다. 국내외 에세이 콘테스트에 내는 글일 경우에는 가격이 더 뛴다. 건당 300만원부터 시작하는데 입상을 할 경우 성공보수 100만 원이 추가된다.

정해진 가격은 없다. 김씨는 “이 시장에 표준가격이란 건 없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의뢰를 부탁하는 학부모들과 만나 가격을 적당히 결정하고 고객이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로울 경우 그에 상응해 추가비용을 청구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당연히 자녀들의 문서 대필 사실을 외부에 대놓고 말할 수 없다. 미국 대학을 준비하는 고2 자녀를 둔 한 학부모의 말이다. “대필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봐 이 부분에 대해선 친한 친구끼리도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대필 가격도 다른 사람들은 얼마 받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작가가 부르는 대로 응해줄 수밖에 없다.”

김씨는 “이런 종류의 알바가 명문대 출신 일부 학생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로 돌기도 한다. 소위 스펙은 좋고 돈 없는 가난한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서로 알바를 주선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지도학생 중 알바가 필요한 학생을 주변에 소개해주는 경우도 있다.

대필해주는 분야는 다양하다. 대입용 에세이부터 시작해 각종 대회용 논문, 대학 수업에 발표할 때 사용할 프레젠테이션도 이들의 영역이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꾸준히 스펙을 만들어주고 입학문서까지 작성해주는 풀코스도 있다.

김씨는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대입용 스펙을 만들어주고 자소서까지 써주는 사설 학원들이 있는데 여기도 부르는 게 값이다. 고2 겨울방학인 학생을 미국의 적당한 대학에 입학시켜주는 스펙을 만들어주는데 보통 700~1000만원 정도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성공보수는 물론 별도다.

김씨의 친구들은 “돈 쉽게 벌어서 좋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결코 쉽지 않다고 항변했다. 경제적 대가를 받고 하는 일이다보니 자존심을 짓밟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번은 자기소개서를 써주는 학생에게 ‘거지 취급’을 당하면서 이렇게 바꿔 달라 저렇게 바꿔 달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친구였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아이가 돈을 써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 이 일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협박에 사기에...클레임 걸 곳도 없어요”

“맘에 안 들어도 클레임을 걸 수가 없어요. 떳떳한 일이 아닌지라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고…”


지난해 자녀의 명문대 입시를 위해 큰 맘 먹고 대필 작가를 고용했다는 한 ‘강남 엄마’. 미국 명문대 경영대 출신이라는 입시 컨설턴트를 만나 입학상담을 받았다. 컨설턴트는 “대입 자소서와 글쓰기 대회 1회 입상을 보장해줄테니 총 3개월 간 800만원을 달라”고 했다. 여기에 성공보수 300만원이 걸려있다.

문제는 3개월쯤 지나자 발생했다. 글쓰기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고 원했던 대학도 들어가지 못했다. 일종의 ‘보험’으로 삼았던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서 합격 통보가 왔지만 들인 돈에 비하면 좋아하기도 애매한 성과였다. 하지만 컨설턴트가 “아이의 역량에 비하면 이 정도라도 다행이다. 어쨌든 미국 대학에 합격했으니 성공보수의 일부를 달라”고 나왔다. 만약 보수를 주지 않으면 해당 대학에 입학 과정에서 자신들이 개입했단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조로 나왔다.

결국 이 ‘강남 엄마’는 성공보수 가운데 100만원을 지불하고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 컨설턴트의 이력을 조사해보니 미국 명문대 출신이라는 홍보와는 다르게 이름 없는 커뮤니티 칼리지 출신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아이의 미래가 볼모로 잡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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