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를 보는 가늠자, 영국독립당(UKIP) -①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6.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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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윈스턴 처칠은 유럽의 통합을 호소했고 그의 논의는 발 빠르게 현실화됐다. 유럽석탄철강산업공동체(ECSC)와 유럽경제공동체(ECC)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통합해 유럽공동체(EC)가 됐으며 1994년 1월 EU가 탄생했다. 처칠의 염원은 이뤄졌지만 처칠의 소망을 처음으로 깨트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이었다. 자국의 경제적 이유로 유럽공동체에 기대기 위해 유럽의 단결을 호소했던 처칠의 후손들은 50년이 지나 ‘경제’를 이유로 유럽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대표적 경제 논리 중 하나가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극우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이 주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게 ‘인종차별주의 정당’이라고 비판받았던 영국독립당(UKIP)다. 영국독립당의 약진과 그들의 행보를 보면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게 된 경위와 배경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일반 시민이 이겼다”
브렉시트의 승리가 확정된 6월24일 아침(현지시간) 나이절 패라지 UKIP 대표는 국회 앞 광장에서 열변을 토했다. “내가 EU탈퇴 운동에 참가하고 25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1700 만 이상의 표가 모였다.” 패라지는 브렉시트를 “보통 사람의 승리다”라고 규정했다. 은행이나 기업, 정치권에 대한 승리라고도 말했다. 그의 입에서 문장 하나가 끝날 때마다 패라지의 지지자들은 영국 국기를 흔들었다. "지금도 시민과 기존 정치권 사이에는 간극이 크게 벌어져 있다. 정치인들은 ‘EU 이민자’가 유입되면서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이절 패라지 UKIP(영국독립당) 대표

이번 국민투표에서 크게 부각 된 것은 이민자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은 이민자에 꽤 관대한 나라라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족한 노동력을 만회해 준 사람들도 서인도 제도 등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었다. ‘태양이 지지 않던’ 대영제국이라 불리던 황금기, 세계에 군림했던 역사 탓에 인도계나 파키스탄계, 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이민 1세와 그들의 자손들이 영국에서 살고 있다.

이민에 익숙한 영국이 이민자 문제에 빠진 것은 비교적 최근 들어서다. 그것도 아프리카계, 아시아계가 아니다. 패라지의 발언에서 중요한 단어는 ‘EU 이민자’다. 2004년 EU에 가입한 구 동유럽 국가 등지에서 온 사람을 문제 삼는다. EU회원국끼리는 사람과 물건, 서비스의 자유로운 왕래가 원칙이다. 하지만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10개국이 신규 가입을 했을 때 다른 EU국가의 대부분은 유예 기간을 뒀다. 노동력의 유입을 바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영국은 이런 유예 기간을 두지 않고 바로 입국이 가능하도록 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선진국에는 그렇게 새로운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EU회원국의 이민자들은 영국에서 석 달만 일하면 영국인과 똑같은 사회보장제도를 적용받게 된다. 그러다보니 교육, 의료, 주택, 관공서 등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점점 부담이 걸렸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정부가 긴축 재정을 펼치자 공공 서비스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여기에 해당하는 일자리도 타격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낮은 임금에 일하는 동유럽의 이민자들이 영국의 임금 수준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한 사람들은 피부색과 눈동자의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다. 주로 숫자를 문제 삼는다. 영국 국민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건너와서다. 영국의 인구는 약 6000만 명. 2014년을 기준으로 약 300만명의 EU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약 200만명이 국경이 열린 2004년 이후 영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이민자가 늘고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정치인들은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이런 불만에 기존 정당은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과 물건, 서비스가 자유롭게 왕래하는 EU의 대원칙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점, 이민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그 자체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정치권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미묘한 감각이 런던에 팽배해 있던 건 이번 국민투표를 보면 사실인 듯하다.

정치권에서 그동안 UKIP는 희화화를 위한 소재였다. 하지만 앞선 미묘한 감각을 담아낸 접시는 영국을 좌우하던 보수당, 노동당이 아니라 이 UKIP였다. 농담처럼 취급되던 정당이 현실 여론을 담아내는 그릇이 돼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던 영국의 EU탈퇴는 현실이 됐다.

UKIP의 창당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EU의 창설을 결정한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년 체결, 1993년 발효)에 반대하는 ‘반(反) 연방주의자 동맹’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진 게 모태다. 동맹은 1993년 단체의 명칭을 UKIP로 고쳤다. UKIP는 유럽의회와 지방의회에는 의석을 가지고 있지만, 영국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실패를 거듭하다가 2015년에서야 비로소 1석을 얻어 진출했다. 별 거 아닌 1석이지만 세부지표를 뜯어보면 다르다. 영국의 선거제도는 비례대표가 없는 승자독식구조다. UKIP 의석은 1석에 불과하지만 영국독립당 후보들이 얻은 총 득표수는 12.6%에 달하는 388만 표였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런 UKIP를 두고 ‘인종차별주의자 정당’이라고 불렀다. “이민자의 수를 줄이자”는 구호를 인종차별주의로 해석했다. 다인종이 모여 사는 영국에서 ‘인종차별주의자’는 가장 강력한 비난 중 하나다. 캐머런 총리가 UKIP을 비난의 대상을 삼는 건 과거의 인연 때문이기도 하다. UKIP는 보수당의 극우 성향 인사들이 탈당해 만든 단체다. 패라지 대표 역시 원래는 보수당원이었다. 집 떠난 미운오리새끼들이 만든 정당이 어느덧 라이벌로 격상된 데 대한 불편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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