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차관, 피해자 만난 다음 날 퇴임… 우린 그렇게 정부에 농락당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6.21 13:36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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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토해내는 가슴속 응어리 맺힌 한과 절규

 

6월5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본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증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장의 사진. 조산으로 갓 태어난 아기가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그 아기의 얼굴 쪽으로 가습기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다. 아이 뒤편에는 ‘가습기메이트’(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품) 병이 놓여 있다. 13년이 흐른 현재 초등학생이 된 그 아기(오우경·13)는 6월15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앞에 그 사진을 들고 나왔다. 13살짜리 아이와 검찰청, 그리고 사진 한 장.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은 어떻게 비롯된 것일까. 오우경군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6명이 그날 오후 시사저널을 찾았다. 1시간30분을 조금 넘길 때까지 피해자들의 방담이 이어졌다. 일부는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어냈다.

 

“아이가 숨 쉬기 어려워할수록 나는 그 가습기를 더 세게 아이 코에 틀어댔다” 

 

시사저널(시사) 무엇보다 건강이 걱정되는데, 현재 증세는 어떤가?

 

오군의 어머니(오군) 아이가 조산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첫돌 전부터 부산대병원 중환자실 신세를 졌다. 그래도 큰 위험은 없어서 퇴원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아이에게 호흡곤란이 와서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렸다. 힘들게 퇴원은 했지만, 이후 아이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생활했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동안 부산대병원은 더는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해서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로 아이를 옮겼다. 그러나 아이의 호흡곤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산소증·뇌손상·심장수술을 받았고 결국 호흡기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생각을 곱씹어보면 병원 중환자실의 공통점은 가습기였다. 두 병원 모두에는 여러 대의 가습기가 있었는데 우리 아이는 특히 가습기에 호스를 연결해 증기를 쐤다. (사진들을 내밀며) 여기 그 당시 사진들이 있다. 살균된다는 광고에 애경 가습기 살균제를 사다가 가습기 물에 타서 사용했다. 아이가 숨 쉬기 어려워할수록 나는 그 가습기를 더 세게 아이 코에 틀어댔다. 

 

김미란씨(여·41) 1989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어느 날 새벽녘에 숨이 막혀 잠을 깼다. 코와 목을 막고 있던 것을 뱉었더니 누런 가래 덩어리가 나왔다. 살균제를 사용하기 전에는 가습기를 틀어놔도 이런 일은 없었다. 이후 비염에 시달렸고, 남편과 아이도 잔기침에 림프절 문제까지 생겼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고 동네 의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가습기만 틀면 가스레인지 불꽃이 확 일어나는 것을 보고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인가 생각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던 친정아버지에게도 가습기 살균제가 이상하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정부가 인증한 제품인데 믿고 써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2010년 7월 원인불명의 폐 질환을 진단받았다. 몇 차례 병원을 바꿔 검사해도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폐섬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곽아무개씨(여·59) 2000년 초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주로 건조한 겨울철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은 여름에는 조금 증상이 좋아지나 싶더니 가습기를 사용한 겨울에는 영락없이 증세가 도졌다. 우리 아이는 비염이 너무 심해 코 수술까지 받았다. 나는 천식이 생겼고 폐석회화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지금도 잔기침을 계속한다(곽씨는 대화 중에도 연신 기침을 토해냈다).

 

 

 

 

“내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한이 이 가슴에 맺혀 있다” 

 

류아무개씨(72) 2004년 겨울 너무 건조해서 가습기를 사용했다. 당시 TV에서 옥시 가습기 살균제 광고를 보고 가습기에도 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제품을 샀다. 매일 가습기 물을 갈면서 옥시 제품을 넣었다. 2005년 초 숨을 쉬지 못하는 증상이 생겼다. 누우면 호흡곤란이 와서 지금도 누워서 잠을 못 잔다. 당시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의료원 등 내로라하는 병원을 쫓아다녔지만 원인불명의 폐 질환이라는 진단만 받았다. 폐에 문제가 있긴 한데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숨 쉬기가 힘들어서 등산도 못하고 직장까지 그만두고 집에서만 지냈다. 그러다가 2012년 언론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1차 피해자 신고를 했다. 

 

내 어머니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유명을 달리했다. 방이 건조해서 잠자리 머리맡에 가습기를 틀어드렸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숨 쉬기를 어려워하는 모습에 자식으로서 안타까워서 가습기를 어머니 머리 쪽으로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나 증세는 더 심해져서 입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 내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한이 이 가슴에 맺혀 있다.

 

이아무개씨(여·40) 아이가 5살 때 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래서 2009~10년 가습기를 사용하면서 애경 제품을 넣었다. 당시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무심한 엄마로 비쳤고, 살균제 사용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아이의 감기 증세는 더욱 심해져 결국 폐렴으로 이어졌다. 호흡기가 선천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했을 뿐, 가습기 살균제가 그 원인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나도 2010년 급성 천식에 걸렸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 급성 천식이라고 했다. 이후 심장 부정맥, 피부 질환이 생겼고 이따금 실신하기도 했다. 점차 아이와 내 증세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

고 가다가 숨이 가빠지면 급히 내려서 쓰레기통을 부여잡고 토하기도 한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 그런 증상들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곽씨 나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서 이상 증세가 나타났고 그 제품이 아직도 집에 있다. 물론 이런 증상이 반드시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 개인이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검찰수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씨 옥시 제품을 사용한 사람은 폐 질환이 반복돼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애경 제품을 사용한 사람은 천식 등 상기도 질환이 반복된 기록이 있다. 병원과 약국에 관련 정보가 있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는 실제로 살균제가 원인이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록을 보면 피해자인지 아닌지 가려낼 수 있다고 본다. 

 

곽씨 2000년 초반부터 중반까지 가습기 살균제가 많이 팔린 시기에 비염·기침 등 폐 문제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증상은 원인이 불분명하고 치료약을 먹어도 듣지 않는다.

 

시사 서울중앙지검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모인 이유는 무엇인가?

 

곽씨 옥시로 꼬리 자르기를 하지 말고 SK케미칼도 수사하라는 요청이었다.

 

김씨 옥시 제품이나 애경 제품이나 모두 SK케미칼의 원료를 사용했다. 특히 CMIT·MIT(SK케미칼이 만든 살균성분)로 사람이 죽었다. 질병관리본부 실험에서도 이 성분의 세포 독성이 가장 강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검찰은 SK케미칼을 조사하지 않았다. 이는 봐주기식 수사다. 정부와 SK케미칼 사이에 특정 관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곽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검찰에 공정한 수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도 보냈다.

 

김씨 피해자가 있는데도 검찰은 그 피해와 가습기 살균제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6월15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살인기업 SK케미칼, 애경, 이마트 수사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관련 기업들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살균제 성분을 만든 업체인데 이 업체에 대한 아무런 조사도 없다”

 

곽씨 정부는 쥐 실험을 통해 인과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생체실험을 당한 사람들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인과관계가 어디 있겠나. 나원이가 1급 피해 판정을 받은 것은 인과관계가 아니란 말인가(박나원양(5)은 SK케미칼의 가습기 살균제품을 사용해 심각한 폐 손상을 입고 목에 구멍을 뚫어 호흡해왔다). 국내 대기업이라서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이씨 옥시 제품 즉 PHMG 성분만 조사하지 말고 가습기 살균제 성분 4가지 모두를 똑같이 조사하고 수사해달라고 진정서를 검찰에 냈다. 또 검찰청에 가서 해당 검사를 만나려고 3시간을 기다렸으나 단 1분도 만나주지 않았다. 앞으로도 만날 계획이 없다는 말을 전화로 전해 들었을 뿐이다. PHMG나 CMIT·MIT 모두 가습기 살균제이고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CMIT·MIT를 배제한 이유를 알 수 없다. SK케미칼은 PHMG와 CMIT·MIT를 만든 업체인데 이 업체에 대한 아무런 조사도 없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업체인데도 말이다. 최초로 살균제 성분을 개발했고 이를 이용한 가습기 살균제품도 출시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시사 SK케미칼이나 애경 측의 설명을 들어봤나.

 

이씨 두 회사 모두를 접촉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인지, 그런 사실이 정말인지, 왜 그런 제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한마디 대답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두 업체 모두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인지를 먼저 확인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애경 관계자를 만나려고 했더니 그렇게 못한다는 연락이 왔다. 자신들은 제품을 판매한 2차 책임자인데 제품을 만든 SK케미칼이 움직이지 않으니 자신들도 어떤 행동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애경을 보고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닌가. 제과점에서 빵을 먹고 배탈이 났는데, 제과점은 밀가루 업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애경은 끝내 만남을 거부했다.

 

SK케미칼은 수돗물 속 염소가 안전한 것처럼 가습기 살균제도 안전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래서 물었다. SK케미칼의 가습기 살균제품을 넣은 물을 마셔도 된다는 말인데, 그럼 피해자들은 왜 생겼냐고. 그다음부터 내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또 한번은 SK케미칼이 안전 근거로 삼은 미국 환경보호청(EPA) 자료를 내가 요구한 적이 있다. 그러자 홍보팀장이 만나서 자료를 주면서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만나는 게 부적절하다며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했다. 그리고 이메일을 통해 그 자료를 받아 전문가와 살펴보니 어디에도 그 살균제가 안전하다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사 존 리 전 옥시 사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 어떤 생각이 드는가.

 

곽씨 그게 정부의 시나리오다. 이번 사건을 대통령 임기 말까지 끌면서 흐지부지할 것 같다. 대통령은 이 사건을 지난 정부의 일로 치부하는데 정부란 연속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씨 이대로 마무리되면 안 된다.

 

곽씨 기업은 돈이 된다면 마약도 팔지 않나. 그걸 막는 게 정부다. 그렇지 못한 정부라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해당 부처에 대해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피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추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를 철저히 조사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오군 가습기 살균제로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후 나는 구강 세정제, 공기청정기는 물론 주방 세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런데 어떻게 믿고 그런 제품을 사용하겠나.

 

류씨 이 나라는 이상하다. 사람이 죽어 나가도 모른 척하는 이상한 나라다. 


“검찰총장 앞으로 시사저널과 KBS 《추적60분》 보도를 첨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시사 환경부 차관과의 만남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씨 6월7일 오후 서울 이룸센터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정연만 환경부 차관을 만났다. 정 차관은 정부 정책 상황을 설명했고 우리는 우리 의견을 전달했다. 이는 연합뉴스 사진을 통해 보도됐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정 차관은 퇴임했다. 정 차관을 앞세워 정부가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쇼다. 우리는 그렇게 농락당했다.

 

곽씨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1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허가를 내준 책임이 있는데도 검찰은 정부 관계자를 소환한 적이 없다. 그래서 검찰총장 앞으로 시사저널과 KBS 《추적60분》 보도를 첨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씨 내가 방송과 신문에 4~5시간씩 할애하며 SK케미칼과 정부의 문제점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인터뷰했다. 녹취자료도 제공했다. 그러나 모두 편집돼 회사 이름은 사라졌다. SK케미칼의 압력 때문인지, 인터뷰를 담당했던 기자들이 미안해했다. 최근 시사저널은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했고, 전문가들도 시사저널 기자를 추천해서 우리의 얘기를 가감 없이 들어주리라 믿고 이렇게 찾아왔다.

 

김씨 피해자 수가 언론 지면에 숫자로만 나타나니까 정부는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광화문이나 청와대에 죽은 사람들의 관을 놓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야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는지 알게 될 것 같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는 464명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준비해 온 사진과 문건들


 

“광화문이나 청와대에 죽은 사람들의 관을 놓고 싶은 심정이다”

 

방담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이씨는 어미로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을 이렇게 남겼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피해자들이 돈 때문에 이 문제에 매달리는 것같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잔인할 정도다. 우리 아이는 콧속에 섬유화가 시작됐고 눈으로 가면 실명하고 뇌로 진행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12살짜리 아이가 숨 좀 쉬게 해달라는데 어미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목이 메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병원에서 수술 얘기를 꺼내면 아이는 평생 얼굴이 엉망인 채로 살아도 되니까 수술받지 않으면 안 되냐며 운다. 내가 아이를 고통 속에 빠뜨린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 아이는 이 증상이 자신에게 어떤 위협인 줄을 모르는 게 더 가슴 아프다. 이런 일은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이런 생각에 나는 죽을 생각도 했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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