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당 종업원 탈출 사건’ 법정에 서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06.20 11:06
  • 호수 139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21일 서울중앙지법서 인신구제청구에 대한 심문기일 열려

4·13 총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4월7일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에 있는 ‘조선식당 류경(柳京)’에 근무하던 남자 지도원(지배인) 한 명과 여자 종업원 12명 등 13명이 한국에 들어왔다. 이른바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투성이다. 왜 한국에 왔는지, 어떻게 한꺼번에 집단탈출했는지, 이들의 입국 과정에 중국이나 한국 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 의문은 여럿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법정에 서게 됐다. 6월21일 오후 2시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한 인신구제청구에 대한 심문기일이 열린다. 사건 당시 입국한 북한식당 남자 지도원 한 명을 제외한 여자 종업원 12명에 대한 인신구제청구를 신청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산하 통일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이 포함된 TF팀을 구성하고 이들을 변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민변은 변론을 위해 북한에 있는 여종업원들의 부모로부터 위임장을 받았다. 이 위임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과 연락이 닿는 인사를 통해 전달받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식당 종업원들은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알게 되면서 집단탈북을 계획했고, 이를 실행했다. 통일부는 4월8일 “같은 식당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이 한꺼번에 탈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 측이 ‘납치’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여종업원 가족들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과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에게 대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한때는 “여종업원 중 1명이 단식 중 숨졌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이후 민변이 북에 있는 가족들의 위임장을 받아 변론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시사저널은 여종업원들의 부모 22명이 민변을 통해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인신구제청구서’를 입수했다. 이 청구서를 통해 이번 사건의 쟁점을 들여다봤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6월3일 경기 시흥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이 북한 해외식당 여종업원 12명에 대한 접견·면회 신청을 거부한 것은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 “자진 귀순” vs “강제 납치”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이자 본질적인 사안이다. 종업원들의 집단탈북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유인 납치설’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북한 역시 이번 사건을 ‘납치’로 규정하고 줄곧 송환을 요구해왔다. 한 탈북자 관련 활동가는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식당을 탈출한 지 이틀 만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이 정도 많은 인원이 탈북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드물다”고 말했다. 


이는 본지도 제기했던 의혹이다.(시사저널 2016년 5월3일자 1385호 ‘북한 식당 집단탈북 과정에 주중 총영사관 국정원 직원 개입’ 기사 참조)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인사는 “한국에 입국한 13명 가운데 남자 지도원과 여자 종업원 한 명은 각별한 관계로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들의 도피 행각인데, 그 과정에서 여종업원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으로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또 다른 소식통은 “중국 당국은 북한식당 직원들이 한국으로 탈출한 사실을 처음엔 몰랐다. 그들이 (동남아의) 다른 나라 (북한) 식당으로 근무지가 바뀌어서 출국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변 측이 이 사건에 접근하게 된 계기도 ‘납치설’이 상당히 신빙성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 사건 대응 TF팀장을 맡고 있는 장경욱 변호사는 “여러 종합적인 판단을 해봤을 때 이들 중에는 ‘납치’된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여종업원 사망·단식투쟁 소문의 진상

 

한때 북한 관련 매체를 통해 여종업원 12명 가운데 한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매체는 5월10일 ‘중국 류경식당 북한 여성 종업원 12명 중 한 명인 서경아양이 ‘우리 모두를 공화국으로 보내달라’고 단식투쟁하던 중 사망한 사실이 공동취재진의 추적에 의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여종업원 사망 소식이 퇴직한 국정원 아무개 간부의 입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민변이나 시민단체 측에선 이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장 변호사는 “사망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는 내부에서 (국정원 측과) 싸우고 있을 수 있다”며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이번 집단탈북에는 의구심이 많이 남아 있다. 만약 기획탈북이라면, 아직 북한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몇몇 종업원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 그들이 남한체제를 거부하고 송환을 요구하며 버티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사회단체들은 5월13일 오전 11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진상규명과 조속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긴급모임’을 열고, 현 사태 수습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포함한 남북당국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했다. 이어 민변은 경기 시흥에 있는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를 방문해 여종업원들의 접견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정원과 통일부는 변호인 접견을 불허하고 있다. 민변 천낙붕 변호사는 “여종업원들을 만날 수만 있으면 이들의 건강상태와 현 상황 등을 파악할 수 있을 텐데, 만나지도 못하게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6월15일에도 합신센터를 찾아 여종업원들의 접견을 요청했다. 그런데 담당자라는 사람이 나와서 ‘여종업원들이 접견을 거부하고 있다’는 얘기만 하고 만나지 못하게 했다. 현재 사망설이나 단식투쟁설 등이 나오고 있는데, 간첩이 아닌 귀순자라면 변호인을 만나지 못하게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다만 민변 측은 법원이 합신센터에 보낸 심문기일통지서 접수증을 통해 이들이 5월31일까진 센터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서울중앙지법은 5월31일 합신센터에 심문기일통지서를 전달했다. 여종업원 12명 각자의 실명으로 보내진 접수증엔 이들이 직접 적은 서명이 있었다. 민변 측은 “집배원이 합신센터 면회실에서 여종업원들을 직접 만나 여권 사진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 변호인 접견 대상이 아니다?

민변 변호인단은 여종업원들이 변호인의 조력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합신센터의 근거가 되는 ‘북한이탈주민보호법’에 인권보호장치가 결여돼 있으며, 난민법 제12조를 근거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 측은 변호인단의 접견을 허용하지 않았다. 국정원 측은 민변에 보낸 회신문을 통해 “탈북민 관련시설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 북한 테러 등 신변위협에 대한 보호시설이지 구금시설이 아니다”며 “북한식당 종업원 12명은 자유의사에 따라 보호를 요청한 북한이탈주민으로, 난민이나 형사피의자 등 변호인 접견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