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곧은 소리] 구조조정은 단기에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마무리해야
  •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0 16:18
  • 호수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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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터널 속으로 따라 들어가지 않으려면

 

5월24일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국회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관계 부처 차관들과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 관련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구조조정’ 문제가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정치·사회 모든 분야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한국 경제가 최근 2%대의 저조한 성장률에 그치면서 일본식 장기 저성장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 일본이 1990년대 후반 이후 고전했던바, 그 원인이 구조조정 타이밍의 실패로 분석되면서, 오늘날 우리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과정에서 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식 장기불황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향후 우리 경제 및 세계 경제 환경을 조망하고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할 뿐만 아니라 산업과 기업의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데도 참고가 될 것이다. 

 

日, 구조조정 장기화의 폐해로 어려움 겪어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불황(1991~2011) 초기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초기에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초기 대응의 이러한 실수가 그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과 전략적인 오류를 유발하는 악순환을 계속 되풀이했다. 구조조정 지연으로 부실한 기업과 산업이 확대되고, 은행 부실 문제가 심각해졌다. 일본 경제가 위기적인 상황으로 빠진 1990년대 후반 이후에야 각 산업에서 대형 합병, 경쟁사 간 사업통합이 이루어졌다. 철강산업에서는 대형 5개사 체제가 3개사 체제로 재편됐으며, 조선업에서는 중소 조선사를 잇달아 매수한 ‘이마바리’가 최대 조선사로 부상했다. 

 

일본 기업들은 사업통합을 통해 구조조정을 강화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2중 구조를 만들었다. 비용 감소를 통한 수익 회복에 주력했으나 쉽지만은 않았다. 일본 기업은 신규채용을 억제했기 때문에 정규직의 감원을 최소화해도 이들이 순차적으로 정년 후에 퇴사한 결과, 10년 정도 지나면서 기업 1인당 매출액이 상승하는 효과를 나타내긴 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고용 감축, 임금 억제에 주력했음에도 매출의 감소, 신규사업의 개척 부진에 직면하게 되면서 수익률의 회복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기업이 고용 조정을 장시간에 걸쳐 완만하게 실시한 결과,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구조조정 기간이 길어지고 소비부진, 경제성장의 부진을 초래했다. 즉 일본 기업이 아무리 경비를 감축해도 수익을 늘리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또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계적으로 도입해 분기별 수익에 초점을 맞춘 단기성과를 강조하게 됨으로써 일본 기업의 장점이었던 장기적 시각에서의 기술과 제품개발 투자의 장점이 후퇴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장기불황 초기에 산업의 구조조정에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산업재생법을 통해 점차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을 촉진해 산업의 재생을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해나갔다. 구조조정 촉진과 함께 신성장산업 육성책이 중요했으나 일본 정부가 성장전략을 본격화한 것은 장기불황 돌입 후 15년 정도가 지난 2000년대 중반이었다. 늦었지만 일본은 규제완화와 함께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린산업·IT·신소재·헬스케어 등 유망 성장분야의 생태계 구축에 계속 주력했다. 그리고 이제 그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일본의 구조조정 경험을 평가할 경우, 신속한 대응이 미진했던 것이 심각한 오류였으며, ‘Bottom up식’(상향식)의 의사 결정이 강한 일본의 특성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또한 구조조정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에 신성장 분야에 주력하지 못했던 것이 경제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한 경제 전체의 활력 제고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혁신해가는 자세 필요

 

이러한 일본의 경험으로 볼 때 우리가 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통상적인 경기순환과 달리 경제 및 산업 환경의 구조나 트렌드가 변화할 때에는 과감하게 거기에 맞춰 변화하는 게 필요하다. 참고 견디고 원가 절감에 매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소 고통이 따르더라도 트렌드에 맞게 근본적으로 구조를 혁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구조조정을 장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하는 것은 일시적인 고통은 적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보면 경제 전체적으로나 기업의 성장활력 제고 차원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구조조정은 단기에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트렌드의 변화에 맞게 경제 및 사회 시스템 중에서 버려야 할 관행은 버려야 한다. 반면 성공 방정식과 지켜야 할 핵심 경쟁력을 구별해서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넷째, 기업 및 사업 간 통합을 수반하는 산업 구조조정에서는 일본 메모리 반도체 구조조정의 실패 사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설비사양 및 기술 체계의 차이나 시너지를 고려하면서 주도 기업이 초기에 리더십을 확보해 전략 방향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기업 간 통합 등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에서는 금융 및 재무적인 관점과 함께 기술적인 관점에서 구조조정을 주도할 수 있는 조언 기능이 대단히 중요하다. 

 

다섯째, 기업 차원이나 국가적 차원에서도 축소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성장전략의 병행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성장전략은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지속적으로 진화시키면서 IT·신에너지·바이오·신소재 등의 유망 분야에서 과학기술, 첨단부품 소재, 조립가공 등을 망라한 산업 및 기술 생태계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선택된 유망 분야에 중장기적으로 투자하면서 성과를 창출하는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여섯째, 창조 촉진적인 시스템으로의 혁신이 중요하다. 앞으로 우리 산업이 선진국과 경쟁하면서 새로운 제품, 사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전례가 없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 규제 위주의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규제완화를 통해 법률에 없는 새로운 사업이나 제품을 시도하면서 문제점을 추후 보완하는 시스템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혹독하게 겪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구조조정은 기존 조직이나 관행을 파괴하는 측면이 강한 데다, 인력 문제도 수반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기업의 버는 힘을 끊임없이 강화하지 않으면 국가경제가 장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고 근로자도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버는 힘’의 원천이 되는 이노베이션은 슘페터가 일찍이 지적한 것처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필요로 한다. 파괴 없이, 버리지 않고서는 이노베이션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 개인, 정부로서는 글로벌시장의 냉혹한 파괴 압력이 다가오기 이전에 미리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혁신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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