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잠룡들 눈을 뜨다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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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출마 시사’에 김무성·남경필·원희룡 등 여권 주자들도 워밍업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엿새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5월30일 유엔본부로 돌아갔다. ‘충청 대망론’에 급격하게 불을 붙인 반 총장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남겼다. 여권에선 대선 잠룡을 깨우고 야권에선 대권주자들의 대선시계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 총장의 정치적 행보에 가장 덕을 본 세력은 20대 총선 참패로 폐족(廢族) 처지가 된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이다. 레임덕에 직면한 박근혜 대통령도 수혜를 입었다. 친박은 자파 내부의 대선후보가 없는 불임 집단이었다.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대선후보군을 확보한 비박(비박근혜)을 그저 부러워하는 신세였다. 그런 친박이 정권 재창출의 카드로 뽑아든 것이 반 총장이었다.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을 각별히 대우하고 친박은 대권주자 옹립론을 펴며 노골적으로 구애를 해왔다.

 

애매한 화법으로 ‘반반(半半) 총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반 총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친박의 러브콜에 화답했다. 반 총장은 5월25일 제주도에서 열린 관훈클럽 비공개 간담회에서 올해 말 퇴임 이후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대선 출마 의사를 시사했다. 친박이 단박에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 후보를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친박과 비박의 처지는 곧바로 역전됐다. 오 전 시장과 김 전 지사는 총선에서 떨어져 대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졌고, 김 전 대표는 총선 패배의 멍에를 안아 대선 행보에 타격을 입었다. 비박 대선주자들이 침몰한 가운데 반 총장이 친박 대선주자로 우뚝 선 것이다.

 

친박은 쾌재를 불렀다. 20대 총선 공천 분란으로 대패의 원인을 제공했던 원흉으로 몰렸던 친박이 반 총장을 디딤돌 삼아 당권 장악에 나설 활로를 찾은 것이다. 친박 실세인 최경환·홍문종 의원 등이 대선 관리를 명분으로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출마할 예정이다. 비박은 당대표 선거에 내세울 마땅한 인물조차 없다. 친박은 당권을 장악해 비박의 공세를 무력화하고 박 대통령의 친정체제를 구축해 레임덕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유승민, 4개월 만에 ‘온라인 정치’ 재개

박 대통령은 반 총장을 방패막이로 여권의 대권주자들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 부동(不動)의 지지율 1위인 반 총장이 버티고 있는 한 아주 미미한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비박 대권주자들이 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위해 공세를 퍼붓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반 총장의 행보는 다른 여권 대권주자들에게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 비박 홍문표 사무총장 권한대행은 “반 총장이 오면서 새누리당 잠룡들이 전부 눈을 떴다”고 말했다. 총선 참패 후 실종됐던 대권 레이스가 재가동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눈치다. 

 

김무성 전 대표와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무소속 유승민 의원 등 여권 대권주자들이 재정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이들이 전대를 앞두고 기지개를 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 관계자는 “과거 이회창 총재 시절 1인 독주체제로 가다가 아들 병역 의혹이 터지면서 결국 한 방에 훅 갔다”면서 “당이 50대 후보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는 성균관대 특강에서 ‘시장경제 개혁’과 ‘공화주의 가치 실현’을 강조했다. 여권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유 의원이 ‘개혁적 보수’의 화두를 내걸고 대권 몸풀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복당을 신청해둔 유 의원은 강연 후 기자들과 만나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해 “저는 아니다. 복당해서 하고 싶은 일도 보수당 혁신과 변화에 모든 걸 바친다는 생각”이라며 몸을 낮췄다. 

 

유 의원은 6월1일 ‘온라인 정치’로 재개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몇 달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라고 썼다.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에 따른 탈당 사태 등에 대한 소회(所懷)를 밝힌 것이다.  지난 2월1일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했을 때 글을 남긴 이후 4개월 만이다.

 

유 의원은 보수의 변화를 이끌 적임자로 꼽힌다.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 의원을 지목해 “우리나라 정치혁신이나 정치질서 재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행위자”라고 평가했다. 유 의원은 지난해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문 등에서 ‘개혁보수’ ‘중도보수’의 가치를 내세운 바 있다.

 

김무성 측 “개헌을 대선공약으로 내걸 수도”

새누리당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은 “유 의원 복당은 현실 문제의 하나”라며 “혁신비대위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을 하루빨리 찾는 것도 우리 당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본다. 개인적으론 적극적으로 복당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종훈·민현주·조해진 전 의원을 비롯해 김세연·이혜훈 의원이 유 의원을 돕는 그룹이다.

 

남 지사는 최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경기도 평생·시민교육 온라인 프로그램 ‘지무크(G-MOOC)’ 단장으로 영입했다. 윤 전 장관을 정치적 멘토로 삼아 대권 플랜을 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윤 전 장관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와 그에 앞서 이회창 전 총재의 대권 플랜을 짰던 ‘전략가’로 통한다. 남 지사는 20대 국회의 화두인 협치(協治)를 경기 도정에 실현해 주목받고 있다. 경기도는 야당에 부지사 자리를 내주고 연정을 실시하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시민과의 협치를 시행하고 있다. 원 지사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제주도에서 하는 일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도정을 통해서 대한민국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대권 도전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원 지사는 제주 제2공항 유치, 카본(탄소) 프리 아일랜드, 한라산 난개발 억제 등 도정 성과를 중앙 행정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정치행보 재개 시점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김 전 대표가 평소의 지론인 개헌을 화두로 대권 행보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전 대표가 자신은 총리를 맡고 반 총장이 대통령을 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김 전 대표는  2014년 상하이 개헌발언을 통해 외교·국방과 내치를 분권하는 이원집정부제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고, 이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을 재차 밝혔다. 김 전 대표 측은 “반 총장이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고 김 전 대표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며 “개헌을 대선공약으로 내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권의 대선후보 레이스를 조기에 점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태경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반 총장이 반드시 새누리당 후보가 될지 불확실하고, 또 반 총장이 아웃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반기문 대망론의 여러 불확실성에 대비해 조기 대선후보 레이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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