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전 세계가 추모하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6.09 08: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하마드 알리, 신화가 된 천재 복서

 

프로복싱 전 헤비급 세계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가 6월4일(한국 시간) 입원하고 있던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74세였다. 최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대중 앞에 나타나지 못한 지도 꽤 된 터였다. 중태에 빠졌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알리와 가까운 지인이 "매우 심각한 상태며 장례 준비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지 불과 몇 시간 뒤 링 안팎에서 계속 투쟁해오던 74년의 인생은 그렇게 조용히 막을 내렸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알리의 말대로 육중한 헤비급과는 동떨어진 화려한 풋워크와 날카로운 잽을 주무기로 삼아 활약했던 그였다. 알리가 활약했던 시기는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던 때였다. 인종차별에 대한 그의 투쟁은 복싱의 성과와 합쳐져 알리를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사회적인 의미가 더해진 탓에 알리와의 갑작스런 이별을 맞은 전 세계가 추모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그는 12살에 복싱을 시작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 미국 대표선수로 출전해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귀국한 뒤 흑인이라는 이유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거절당하자 금메달을 강에 던져 버린 건 유명한 일화다. 알리는 바로 프로로 전향했다. 그리고 1964년 '링위의 살인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졌던 소니 리스턴과의 경기에서 현란한 풋워크로 치고 빠지며 리스턴을 괴롭혔다. 7회 TKO 승을 거뒀고 22살의 젊은 나이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을 획득했다. 화려한 발놀림과 예리하고 날카로운 카운터. 헤비급의 거인들은 알리의 스피드에 무력했다. 알리는 과거 '한방 싸움'이던 헤비급 권투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많은 팬을 매료시켰다. 

이 무렵 알리는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원래 이름이던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가 아닌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한 것도 이때다. 그는 이후 9차례 방어전에 성공했지만 1967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미군 입대를 거부한 까닭에 프로 라이센스를 박탈당했고 세계 타이틀도 잃었다. 순식간에 챔피언에서 평범한 흑인이 된 알리는 이때부터 흑인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0년 라이센스를 재취득하면서 알리는 3년7개월 만에 링에 복귀했다. 그리고 1974년 당시 무패의 최강으로 불리던 조지 포먼에 도전장을 냈다. 전성기를 지난 32세라는 나이, 그래서 압도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알리는 포먼을 8회 KO승으로 꺾고 왕좌 복귀에 성공했다. 개최지인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샤'의 명칭을 빌려 '킨샤사의 기적'이라고 불린 경기다. 알리의 통산 전적은 56승(37KO)5패였다. 

1981년 은퇴한 뒤 파킨슨 병을 얻어 32년간 긴 투병 생활을 한 그였다.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성화대에 점화해 감동을 선물하기도 했다. 아시아와도 나름 인연이 있다. 1976년 일본을 찾아와 프로레슬러인 안토니오 이노키와 이종격투기 경기를 열어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05년 11월9일 조지 부시 당시 미국대통령은 미국 시민의 최고 영예라고 불리는 '대통령 자유 훈장'을 알리에게 수여했다. "신이 왕자를 데려갔다. 안녕 최고의 선수." 기행으로 유명해진 전 헤비급 세계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조차 슬프게 만든 알리와의 이별이었다. 

강펀치의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상대로 치고 빠지는 22살의 알리. 이 경기를 이기며 챔피언 벨트를 획득했다.
아처무어와의 대결전 대기실 칠판에 4라운드에 KO시키겠다고 써놓고 호언장담한 알리. 경기는 4라운드에 정말 끝났다.

아처무어와의 대결전 대기실 칠판에 4라운드에 KO시키겠다고 써놓고 호언장담한 알리. 경기는 4라운드에 정말 끝났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나이 알리,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뮤지션 비틀즈. 1964년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나이 알리,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뮤지션 비틀즈. 1964년 만났다.

1967년 티비토크쇼에서 농구 스타 윌트 체임벌린에게 결투 신청을 받았다. 성사될 뻔 했지만 대전료 문제로 결국 취소됐다.

1967년 티비토크쇼에서 농구 스타 윌트 체임벌린에게 결투 신청을 받았다. 성사될 뻔 했지만 대전료 문제로 결국 취소됐다.

알리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도 대전한다. 이종격투기의 원조일지도 모르겠다.

알리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도 대전한다. 이종격투기의 원조일지도 모르겠다.

조지 포먼과의 세계타이틀전. 다운을 빼앗은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과의 세계타이틀전. 다운을 빼앗은 무하마드 알리.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다. 나 다음으로". 알리는 조 프레이저와 3번의 혈투를 펼쳤다. 결과는 2승1패. 알리가 한 번 더 이겼다.

알리는 유머러스했다. 거만하고 자신감 넘쳤지만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어른이고 싶었다.

알리는 유머러스했다. 거만하고 자신감 넘쳤지만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어른이고 싶었다.

미국 흑인 무슬림 집회에 참석한 알리의 모습

미국 흑인 무슬림 집회에 참석한 알리의 모습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