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회사들, ‘못된 버릇’ 버릴 때까지 소송 멈추지 않겠다”
  • 박성의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2 17:31
  • 호수 138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종선 변호사, 폭스바겐·한국닛산·르노삼성 상대 소송…“기업, 정직해야 경쟁력 커진다”

법무법인 바른 소속 하종선 변호사(61)는 수입자동차 업체들에 ‘저승사자’로 불린다. 하 변호사는 차주 4432명을 대리해 폭스바겐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9월 디젤 차량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하 변호사는 1979년 21회 사법시험, 198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미국과 국내에서 변호사로 일해왔다. 1986~95년 현대자동차 법무실장으로 일하며 자동차 분야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키웠다.
 

하 변호사는 과거 기업의 입장에서 소송을 진행해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소비자의 입장으로 소송 전선을 넓혔다. 폭스바겐에서 불거진 ‘디젤 게이트’ 여파가 닛산과 르노삼성까지 번졌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폭스바겐의 ‘티구안’에서 배기가스 불법 조작을 확인한 뒤 국내 시판 중인 경유차 20개 차종을 대상으로 유사한 조작 여부를 조사해왔다.
 

환경부에 따르면, 닛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시카이’는 실외 도로주행 시험에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실내 인증기준(0.08g/㎞)의 20.8배에 달해 조사 대상 중 가장 많았다. 환경부는 캐시카이가 특정 조건에서 EGR(배출가스 재순환장치)이 작동을 멈추는 현상도 발견했다. 하 변호사는 국내 캐시카이 차주들과 함께 한국닛산과 일본 닛산자동차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건이 불거진 지 7일쯤 지나자 소송을 문의하는 차주가 60명을 넘어섰다.
 

르노삼성 QM3는 조사 결과, 17배에 이르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했지만 가까스로 환경부 철퇴를 면했다. 환경부는 “QM3는 배출가스가 실내인증 모드에서 평균 수준으로 배출됐기 때문에 임의 설정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리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하 변호사는 “QM3의 임의 조작을 확신할 수 없더라도 실(實)도로 환경에서 배출가스가 급증했기에 대기환경보존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르노삼성이 구매자에게 배출가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일종의 사기를 범했다고 주장했다.
 

하 변호사는 “자동차 회사들이 ‘못된 버릇’을 버릴 때까지 소송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동차 업체가 소송이라는 쓴 약을 들이켜고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기자는 5월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서 하 변호사를 만났다.
 

폭스바겐에 이어 닛산 소송까지 맡게 됐다. 자동차 집단소송을 집중적으로 맡는 이유가 있나.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현대차 법무실장을 지냈다. 미국에서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된 제조물 책임 소송 등을 변호했다.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대한 구조적·기술적 지식을 쌓게 됐다. 미국에서 기업을 변호했던 노하우를 살려 한국에서 자동차 관련 소송을 도맡게 됐다.


폭스바겐과 닛산 소송 배경 모두 배기가스 임의조작이다. 소송 진행 방향에 차이가 있나.


차이는 명확하다. 폭스바겐은 본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만 닛산은 부정하고 있다. 또 폭스바겐은 문제 차종이나 대수가 전 세계적으로 많다. 닛산은 미국 정부가 문제 삼지 않았다. 여러모로 닛산과의 재판이 까다롭다.


닛산은 엔진 보호를 위해 EGR 작동을 멈춘 것이라고 항변한다.


사전에 이 같은 사실을 정부와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같은 조처를 통해 도로에서 연비가 높아지고 배출가스는 늘어난다면 이는 임의조작이다. 배출가스가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작한 적은 없다고 항변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오염된 공기가 시민들에게 끼친 악영향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르노삼성 QM3는 환경부가 임의조작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소송을 불사하는 이유가 있나.


배출가스가 인증기준보다 17배나 많이 나왔다. 이 차에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나. 자체적으로 재검증할 것이다. 또 닛산과 마찬가지로 배출가스를 저렇게 많이 뿜어낸다는 사실 자체가 대기환경보존법 위반이다. 르노삼성은 애초 이 법을 지킬 의사도 없던 것 같다.


대기환경보존법 위반뿐 아니라 사기 혐의도 제기했는데.


소비자마다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이 다르다. 배출가스나 연비도 고려 대상이다. 기업이 이 같은 정보를 솔직히 알리지 않았다면 구매자 입장에선 속은 셈이다.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기업에 있다.


닛산과 르노삼성 외 다른 브랜드도 검증할 계획이 있나.


물론이다. 이 같은 편법을 쓰는 다른 브랜드가 있는지 검증할 것이다. 환경부 실험 결과, BMW는 배출가스를 굉장히 낮게 뿜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BMW도 자체 실험을 통해 다른 브랜드와 어떤 기술적 차이가 있는지 직접 확인할 것이다.


환경부 조처가 너무 안이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환경부는 ‘디젤 게이트’ 사태가 터지고 나서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자동차 업체 본사를 상대로 대기환경법을 근거해 형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국민을 위하는 태도가 아니다.


하 변호사는 평소 국내 사법제도 자체가 기업 친화적이라고 주장해왔는데.


한국은 재판의 ‘헬조선’이다. 기업을 상대로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고 정신적 위자료를 증액해야 한다. 미국식 재판의 증인심문제도(deposition)를 도입하고 패소 시 상대방 변호사 비용 부담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당당히 싸울 수 있다.


‘자동차 업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변호사로서 목표가 있다면.


기업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이 소송을 신뢰회복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기업 입장에서 신뢰는 곧 경쟁력이다. 잘못한 부문은 인정하고 반성하면 된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소비자 충성도는 올라간다. 앞으로 무인자동차 시대가 펼쳐지면 자동차 업체 간 경쟁은 더 과열될 것이다. 그 전까지 자동차 업체들이 소비자와 건전한 관계를 형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