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케미칼은 국민을 실험용 쥐로 보는가"
  • 노진섭․김경민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5.23 13:09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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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몸통 SK케미칼, 쥐 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 논란…회사 측이 피해자들에게 제공한 문건 입수

SK케미칼이 외국의 쥐 실험 결과를 우리 국민에게 적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살균 성분을 쥐 실험에 사용한 양보다 제품에 수천 배 많이 넣은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SK케미칼은 이 살균제가 쥐가 아닌 사람에게 안전하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SK케미칼이 국민을 ‘실험용 쥐’로 본 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내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은 대부분 SK케미칼에서 생산하고 공급했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이 1994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 때 살균 성분(CMIT·MIT)을 사용했다. 이 제품(가습기메이트)은 애경을 통해 판매됐다. 또 다른 살균 성분(PHMG)을 제조해 중간 도매상을 통해 옥시레킷벤키저에 공급했고, 옥시는 이 성분으로 가습기 살균 제품(옥시싹싹)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 가습기 살균 제품을 사용한 사람들이 죽거나 질병에 걸렸다.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지만, 검찰은 지난 5월10일 가습기 살균제 수사에 SK케미칼 관계자 2명을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이에 대해 관련 시민단체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판매회사인 옥시나 애경이 이번 사건에 책임이 있지만, 몸통은 살균 성분을 제조·판매한 SK케미칼”이라며 “질병관리본부와 검찰은 이 업체의 주장만 믿고 이번 사건의 수사 대상에서 제외해 오히려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에서 SK케미칼이 배제된 배경은 질병관리본부의 2012년 조사 결과에 기인한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PHMG·PGH와 폐 섬유화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CMIT·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 제품은 폐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해 9월 환경부는 CMIT·MIT를 유독물로 지정했다. 정부 부처마다 살균 성분을 보는 시각이 다른 것이다.

 


“‘치사량’을 ‘허용치’로 바꿔 국민들 현혹”

 

질병관리본부가 이러한 결론을 낸 것은 SK케미칼이 제공한 문건에 근거를 뒀다. SK케미칼은 이 문건을 피해자에게도 보여주며 살균제의 무해성을 주장해왔다. 시사저널은 SK케미칼이 피해자들에게 전달한 이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약 160쪽 분량의 문건은 CMIT·MIT의 독성을 확인할 수 있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자료로, 1998년 살충제 개발을 위한 독성실험 결과가 담겨 있다. 이 성분이 쥐·토끼·기니피그의 눈·피부·섭취·흡입에 미치는 유해성이 기록돼 있다.

 

이 자료를 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 제품(가습기메이트)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사람에게 해가 없다고 주장한 근거는 이 문건에 기록된 ‘inhalation LC50-rat. 0.33mg/L’라는 쥐 실험 기록이다. 이 수치는 ‘허용치’가 아니라 ‘치사량’을 의미하는데, SK케미칼은 이를 교묘히 바꿔 국민과 정부를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터당 0.33mg의 양을 흡입한 쥐 10마리 중 5마리가 죽었다는 의미다. 그 이하로 흡입해도 안전하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수치보다 중요한 점은 그 성분에 흡입독성이 있다는 사실이고, 이런 물질은 애초부터 사람이 흡입할 수 있는 제품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0.33mg/L의 양을 농도로 환산하면 0.000033%다. 이 농도에서도 실험용 쥐의 절반이 죽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SK케미칼의 가습기 메이트에 들어간 그 성분의 농도는 0.15%다. 이 정도를 쥐가 흡입하면 모두 죽는 치사량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SK케미칼은 농도 논리를 편다. 화학 원소 중에 염소(cl)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로 사용됐지만 그 농도를 얼마나 낮추느냐에 따라 농약, 욕실 청소제, 표백제, 수돗물 정화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제품의 살균 성분 농도가 0.015%지만, 가습기 물 2~3리터에 타면 0.000075%로 희석된다. CMIT·MIT는 가습기 물에 있는 나쁜 세균을 죽이고 자신도 분해되므로 공기 중으로 나오는 양은 리터당 0.0022㎍(마이크로그램)이고, 질병관리본부에서도 공기 중에서 포집한 성분양은 리터당 0.011㎍이었다”고 말했다. 

 

살균 성분이 가습기 물에 희석되고 자체적으로 분해되므로 공기 중에 나오는 양이 거의 없다는 게 SK케미칼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덕환 교수는 “그런데도 사람이 죽고 병에 걸리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노출 시간 등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추정일 뿐 아무런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5월9일 롯데마트 울산점 앞에서 울산환경운동연합, 울산시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옥시 제품 불매 선언과 SK케미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람에게 무해하다는 근거 제시해야”

 

살균 성분은 공업용(세척제)·의약외품(소독제)·농업용(살충제) 등으로 쓴다. 섭취나 흡입을 해서는 안 되는 성분이기 때문에 공산품, 즉 생활용품에 사용하면 안 된다. 세계적으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독성 연구 결과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SK케미칼도 이런 점을 알고 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화학물질은 모두 독성이 있다. 그렇다고 화학제품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가. 화학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용도에 맞는 안전성 기준이 있는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독성 연구가 없으므로 가습기 살균 제품은 용도에 맞는 안전성 기준이 없다. 따라서 가습기 살균제는 만들면 안 되는 제품이고 외국에서도 이런 제품을 개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SK케미칼이 내세운 근거는 동물실험 결과다. 정부도 이를 인정해 조사 대상에서 SK케미칼을 제외했다. 이덕환 교수는 “SK케미칼이 주장하고 정부가 인정한 것은 쥐 실험 결과의 수치다. 그 숫자 놀음에 국민이 현혹되면 안된다. 그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했다는 것은 국민을 쥐로 본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쥐에게 이 정도 양을 썼을 때 문제가 있으니 그 이하의 양을 사용하면 된다는 주장은 궤변이다. SK케미칼이 내놓아야 할 것은 쥐가 아니라 사람에게 무해하다는 과학적 근거다. 사람이 사망하고 피해를 봤는데 해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정부도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고, 쥐 실험에서 동일 증상이 나타나면 사람의 피해를 인정해주겠다고 한다. 사람의 문제를 쥐에게서 답을 얻겠다는 이상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SK케미칼은 2011년 자사의 가습기 살균 제품에 향 성분도 추가하면서 피톤치드나 라벤더 향이 있어서 흡입 시 삼림욕 효과나 아로마테라피 효과가 있다고 홍보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해도 안전할 것 같다고 인식이 굳어진 배경이다. SK케미칼이 과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문건에는 ‘이것을 흡입할 경우 인체를 공격 중인 각종 병원균이 사멸되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삼림욕 효과를 일으킨다’고 기술돼 있다. 장하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향을 첨가했다는 것은 화학물질을 제조할 당시 흡입할 가능성을 알고 이를 전제로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SK케미칼이 판매사에 공급하는 화학물질이 인체 흡입 용도로 사용될 것이란 점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SK케미칼이 1994년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배경은 1980년대 해외 원전 개발 사업에서 비롯됐다. 이 사업을 위해 화학전문가를 대거 영입했다. 1990년대 초 이 사업을 접으면서 화학전문가들은 곰팡이 제거제(팡이제로)를 만들었고, 이후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했다. 그 전부터 가습기에 이틀만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처음보다 10배가 넘는 세균이 번식해 오히려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소비자단체의 지적이 있었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은 약 18억원을 들여 만든 가습기 살균 제품이 가습기 물에 생길 수 있는 콜레라·포도상구균 등 수인성 병균을 100% 박멸하고 인체에 해가 없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교수는 “동물실험에서 안전하다고 사람에게도 안전하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며 “더욱이 동물실험에서 흡입독성이 나타난 화학물질이라면 사람이 흡입할 수 있는 제품에 사용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살균 성분은 PHMG·PGH다. SK케미칼이 생산한 이들 성분은 옥시가 만든 가습기 살균 제품에 사용됐다. 두 성분은 질병관리본부가 폐 섬유화를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한 유해물질이다. 옥시는 1995년 독일에서 가습기 세정제 원료로 쓰이는 화학물질인 ‘프리벤톨 RI-80’을 수입해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이라는 이름의 가습기 살균 제품을 개발했다. 이 제품에 부유물이 생기는 문제가 발견되자 옥시는 2000년 원료를 PHMG로 교체했다.


4월22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전문가들이 정부의 역학조사에 대한 옥시레킷벤키저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카펫 보존제가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둔갑

 

SK케미칼은 1994년 PHMG를 카펫 보존제 용도로 만들어 정부에 유해성 심사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펫은 세탁이 쉽지 않아 아예 섬유 자체에 이 성분으로 항균처리를 한다. 카펫에 물을 흘리고 대충 닦아내도 썩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이유다. 이후 이 성분의 용도가 바뀌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에 원료가 공급된 것이다. 정부는 이 원료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당시 PHMG는 ‘유독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SK케미칼은 이 제품을 도매상에 팔았고, 도매상은 옥시에 공급했다. SK케미칼은 PHMG를 납품하면서 ‘자료 없음’ 또는 ‘연구된 바 없음’이라고 표기된 MSDS를 첨부했다. 

 

그러나 SK케미칼이 2003년 PHMG를 호주에 수출할 때에는 현지 정부에 흡입 독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왔다. 흡입 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성분을 팔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케미칼 관계자는 “외국에 판매할 때는 운송비 절감 차원에서 액체가 아닌 분말 형태로 만드는데 분말은 자칫 흡입할 수 있으니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경고를 넣은 것이 마치 액체 살균 성분이 흡입 시 위험하다는 것으로 와전된 것”이라며 “국내 유통사로 PHMG를 공급할 때 이 성분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품에 쓰이는 것을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SK케미칼은 그 이전부터 살균 성분을 넣은 가습기 살균 제품을 만들었다. 이미 미국과 EU에서 나온 살충제 자료를 통해 흡입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를 변경해 사용했다. 게다가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던 SK케미칼이 PHMG를 판매하면서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가 변경돼 사용될 줄 몰랐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검찰은 현재 PHMG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옥시 관계자가 구속됐고 유통사들도 조사를 받고 있다. SK케미칼은 이 성분에 대해서는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응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떳떳하다면 무응답으로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몸통으로 꼽히는 SK케미칼은 현재까지 국민에게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SK케미칼은 어떤 업체인가

 


1969년 설립된 선경합섬이 현재의 SK케미칼이다. 흡음재·단열재·부동액·의약품·생물학제제·화장품 등 석유화학계 기초화학물질 제조가 전문이었다. 1970년대 섬유산업수출 호황에 힘입어 선경합섬은 선경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떠올랐다. 선경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했고, 1982년 유공으로 개칭했다. 

 

1987년 벨기에 사이텍(Cytec)과의 합작사인 SK사이텍을 설립하고, 회사 내에 의약 사업본부를 설치했다. 1987년 12월 삼신제약을 인수하고, 1988년 선보제약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제약 사업에 진출했다. 1990년 선보제약은 선경제약으로, 1997년 다시 SK제약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선경합섬은 1988년에 선경인더스트리로, 1998년 다시 SK케미칼로 사명을 변경했다. 현재 화학·에너지 사업과 헬스 케어 사업이 주력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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