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선 PK에 더 큰 지진 올 수 있다”
  •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
  • 승인 2016.05.18 13:58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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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으로 드러난 PK 표심 분석

PK(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지난 4·13 총선 결과는 ‘블랙 스완(Black Swan)’인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설명하면서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으로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을 일컫기 위해 채택한 말이 PK지역 총선 결과를 놓고서도 인용되고 있다.

 

실제로 역대 총선의 PK지역 정당 의석수 변화를 살펴보면 이번에 본질적인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만 놓고 볼 때 PK는 영남이라는 이름 아래 유지해온 보수의 철옹성으로서의 위상을 내려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의석 40석 중 새누리당은 27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석권을 기대하던 상황이었다. 새누리당으로선 이 지역 출신 대권주자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야당의 이 지역 연고가 있는 두 대권주자 문재인·안철수는 각각 불출마와 서울지역 출마를 선택했다. 야권의 선거를 진두지휘할 구심점이 없었다. 당선 안정권에 들어 있던 야당의 조경태 의원마저 받아들이면서 새누리당은 싹쓸이를 내심 원했다. 하지만 손에 쥔 건 구겨진 성적표였다.

 

이에 맞서 싸운 야당은 9석을 얻었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을, 정의당은 경남에서 1석을 획득했다. 울산에선 야권 성향의 무소속이 3석을 차지했다. TK(대구·경북)지역에서도 변화가 있었지만 PK지역이 더 주목을 받는 것은 정당과 정당 간의 구조적 차원의 대결 구도가 폭넓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상징적 인물 또는 여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인사가 나서서 경쟁구도를 만든 게 아니라 경쟁 정당이 새누리당과 맞서는 형국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4월13일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경남 창원성산 지역구에서 당선된 노회찬 정의당 당선자. © 연합뉴스

 


 

야성 강했던 PK, 90년 3당 합당으로 보수화

 

원래 야성(野性)이 강했던 이 지역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민주자유당에 참여하면서 보수적 색채가 강화됐다. 3당 합당 후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차기 대선주자가 유력했던 YS를 PK지역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다. 3당 합당 전에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부산에선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전체 의석 15석 중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이 14석을 차지했다. 경남에선 22석 중 민정당이 12석, 통일민주당이 9석, 무소속이 1석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PK는 보수정당 우세 지역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3당 합당 이후 나타난 흐름은 새누리당 계열의 보수정당이 늘 압승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심판 열풍이 분 17대에서 7석으로 비(非)새누리당 계열이 최고 성적을 보인 게 고작이다. 18대 총선에선 무소속 당선자가 많았는데 대부분이 친박 무소속 연대 소속이었다. 새누리당 계열 이외의 정당 의석 탄생 여부는 대체로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런데 이번 20대총선에서 두 자릿수로 야권이 올라서면서 사실상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TK 대통령들에게서 느끼는 정치적 소외감 

 

 

사실 변화의 조짐은 있어 왔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득표율 30%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선거에선 한계보단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으로 나선 야당의 김정길 후보는 44.5%를 득표해 여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2012년 대선에 나선 문재인 후보는 10년 전 노무현 후보가 얻은 득표율보다 10%P 더 높아진 39.9%를 얻어냈다. 비록 야당 소속은 아니었지만 야당 후보로 나섰던 김영춘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최종 후보에 나선 무소속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는 2014년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무려 49.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PK지역의 야당에 대한 수용성은 꾸준히 커져왔다. 느닷없는 변화는 아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영남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던 띠가 계속해서 느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남벨트로부터 PK지역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TK 출신 대통령이 2번 연속 배출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정치적 소외감이 PK를 영남벨트로부터 밀어내왔다. 정권의 인사에서 TK만 중용된다는 인식, 대선 과정에서 약속됐던 PK지역 공약이 이행되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대선 때 신공항 건설과 세계 5대 해양강국 진입, 동북아 선박 금융허브 육성, 국제영상콘텐츠밸리 조성 등 여러 공약이 제시됐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이번 총선 과정에선 TK 출신 여당 인사의 밀양 신공항 추진이 불거지면서 부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아성(牙城)으로 여겨진 PK의 흔들림이 이번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 결과는 거대한 본진(本震) 앞의 전진(前震)이고 더 센 지진이 올 수도 있다. 만약 새누리당이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의 무기력한 상황이 계속 될 경우 다음 대선과 맞물리면서 PK 민심의 유동성은 극대화될 수도 있다.

 

이 지역의 새누리당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심상치 않음은 총선의 정당득표율 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난 19대 총선과 비교해볼 때 새누리당에 대한 정당득표율은 부산, 울산, 경남 모두에서 10%P 정도 낮아졌다. 부산은 51.3%에서 41.2%로, 울산은 49.5%에서 36.7%로, 경남은 53.8%에서 44%로 감소했다. 지역구 후보를 당선시키지는 못했으나 국민의당의 정당득표율도 눈에 띈다. 부산에서 20.3%, 울산에서 21.1%, 경남에서 17.4%로 더민주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눈여겨볼 것은 야당들의 정당득표율을 합하면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을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용수철이 한두 번 당겨질 때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지만 반복되면 회복하지 못하고 당겨져 늘어난 상태로 머물게 된다. 새누리당은 이탈하려는 PK를 붙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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