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복용하지 않는 정직한 선수가 오히려 ‘바보’
  • 김남우 | MLB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5.12 17:53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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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 디 고든의 금지약물 복용 사례가 보여주는 징계의 허점

4월28일(현지 시각) 마이애미 말린스는 다저스 원정 4연전을 모두 싹쓸이하면서 다저스 원정 최다 연승 기록을 세웠다. 마이애미 팬들에게 우승 후보인 LA 다저스와의 경기를 싹쓸이했다는 기쁜 소식도 잠시, 경기가 종료된 지 30분이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올스타·실버슬러거·골든글러브를 모두 수상한 마이애미의 주전 2루수 디 고든이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소식이었다. 디 고든은 LA 다저스 시절에 류현진의 팀 동료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선수다. 지난해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된 뒤 최고의 2루수로 활약을 펼치자 고든을 트레이드한 프리드먼 다저스 사장에 대한 비난 또한 높았다. 디 고든의 금지약물 복용 적발은 올해 들어서 5번째이며, 4월에만 벌써 3번째 적발자가 됐다.

 

공격과 수비, 모든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던 디 고든(오른쪽)은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되면서 지난해의 호성적도 의심을 받고 있는 신세다. ⓒ AP 연합

 


약물 복용 뒤 호성적으로 몸값 ‘5000만 달러’

 

스테로이드 시대로 불리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약물을 복용해 근육이 비대해진 선수들이 즐비했다. 그들이 약물을 복용한 이유는 홈런을 늘리거나, 더 빠른 공을 던지거나, 아니면 30대 후반이 된 뒤에도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약물을 복용하고 그렇게 근육을 키우는 선수는 드물다. 그 당시처럼 근육을 키웠다가는 약물을 복용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다.

 

고든의 경우를 보자. 고든이 약물을 언제부터 복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마이애미로 이적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고든의 장타력은 약물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늘지 않았다. 고든에게 생긴 변화는 다저스 시절 보여주던 후반기 체력저하를 극복했다는 점이다. 고든은 지난해 큰 기복 없이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디 고든이 적발되기 불과 일주일 전에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크리스 콜라벨로가 고든과 같은 80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콜라벨로는 한때 국내 프로야구 서울 연고의 한 구단에서 용병으로 뛸 뻔한 선수였지만, 지난해 0.321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고든이나 콜라벨로는 모두 2015년에 기량이 좋아진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이 계속 등장한다면 팬들은 기량이 급상승한 선수에 대해 모두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체형을 가리지 않고.

 

혹자는 디 고든의 약물 복용으로 마이애미 구단이 입은 피해를 얘기하면서 구단의 계약 조항에 금지약물 복용 적발 시 계약을 해지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는 징계 수준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금지약물에 관한 규정이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징계 수준은 조금씩 올라갔다. 2005년에는 10경기 출장정지에 머물렀으나, 이후 징계 수준은 50경기에서 80경기로 늘어났다. 뉴욕 메츠의 마무리 투수였던 헨리 메히야는 3차례나 적발되면서 영구제명을 당했다. 그런데도 적발 선수에 대한 징계 수준은 여전히 낮다는 의견이 많다.

 

메이저리그에 약물 복용이 유행하게 된 계기는 선수 본인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사무국의 묵인이 큰 원인으로 꼽힌다. 1994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의 파업 이후 떨어진 관중 동원력을 회복시켜준 게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이며, 당시에 약물을 복용하던 선수들은 약물 복용 사실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라커룸에 버젓이 약물을 비치해둘 정도였으니 사무국과 구단에서 이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다 함께 물을 엎질러버린 셈인데, 이제 와서 사무국과 선수노조에서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으려 하고 있다. 조금씩 규정을 강화하고 있고 도핑 검사 또한 과거보다 타이트하게 실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선수들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디 고든은 이번 징계로 인해 80경기에 대한 연봉을 받지 못한다. 약 163만 달러(약 19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다. 그런데 디 고든은 최근 5년간 5000만 달러(약 580억원)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과연 지난 시즌 타격왕과 도루왕을 차지한 디 고든이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았어도 이 같은 성적이 가능했을까. 지금 고든이 받는 연봉은 사실 약물의 힘이라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약 19억원을 못 받게 됐지만 그가 앞으로 받게 될, 보장된 금액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크리스 콜라벨로(토론토 블루제이스), 헨리 메히야(뉴욕 메츠), 조시 라빈(LA 다저스, 사진 위부터) 등은 올 시즌 약물로 이미 징계를 받은 바 있다. ⓒ AP 연합

 


출장 정지만으로는 징계 효과 회의적

 

국내 사례만 보더라도 구단들이 금지약물 복용 선수에게 얼마나 관대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금지약물을 복용해 30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던 최진행에게 내린 한화 구단의 자체 징계는 벌금 외에는 없었다. 구단도 약물 복용 사실을 사전에 통보 받았지만 징계가 발표되기 전까지 경기에 출장시켰다. 만약 최진행의 성적이 형편없었다면 이렇게 출전을 시켰을지는 의문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외야수 멜키 카브레라는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되기 한 해 전 시즌부터 뛰어난 성적을 남겼고, 이후 두 차례의 FA를 거치면서 4년간 4300만 달러를 받았다. 내년에는 1500만 달러의 계약이 남아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넬슨 크루즈는 징계에서 돌아온 다음 시즌에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 2년 연속으로 4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크루즈 또한 징계 이후 보장받은 금액이 6500만 달러라는 거액이다. 강정호 때문에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포수 프란시스코 서벨리도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됐던 선수다. 양키스 시절 그저 그랬던 서벨리가 지금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약물 전력이 있는 선수들이 받는 연봉을 생각해보면,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선수가 바보일지도 모른다. 결국 약물 복용 문제는 명예와 건강을 해하는 하이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반면 큰 보상이 돌아오는 하이리턴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징계 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바로 제명하는 방안인데, 이는 MLB 선수노조에서 반대할 것이다. 도핑 검사에서 억울하게 걸리는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장 정지 기간을 늘리는 것만이 가장 최선일까. 당장 할 수 있는 방안은 어쩌면 그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물을 복용하는 선수들의 숫자가 줄어들지는 회의적이다.

 

과거 약물 복용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왔던 사무국과 구단들. 단순하게 선수들의 권익만을 생각하며 약물 복용 규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선수노조. 이젠 단순히 징계 수위를 높이는 데 그치는 것보다 제도적으로 약물에 대한 선수들의 인식 변화에 더 큰 투자를 해야 할 때가 됐다. 올림픽이 약물 퇴치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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