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아이콘’으로 전락한 시민구단
  •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5.05 18:25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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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도지사 성향에 좌지우지 구조개혁 없는 부실한 시민구단이 가져온 K리그의 위기

프로축구 K리그는 현재 1부 리그(클래식)와 2부 리그(챌린지)까지 총 23개 구단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중 12개 팀이 지역자치단체(지자체)의 시민주 공모를 통해 탄생한 시민구단, 혹은 시민구단과 군경팀(상무·경찰청)의 결합 형태다. K리그 전체의 52%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20년간 K리그는 8개 구단 체제에서 23개 구단 체제로 양적 팽창에 성공했는데, 그 주역이 시민구단이다. 새로 탄생한 15개 구단 중 시민구단이 11개다.

시민, 즉 팬이 주주가 돼 구단을 만드는 것은 한국 프로스포츠에 없던 형태였다. 미국식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좇아 1980년대부터 출범한 프로스포츠는 구단 운영에 필요한 거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기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한국 풍토에서 시민구단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특히 축구에서는 유럽과 일본이 시민구단, 혹은 협동조합의 형태로 이미 성공 사례를 써온 터였다.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도르트문트 등이 팬들인 주주들이 운영에 관여하는 시민구단이다.

3월16일 홍준표 경남지사가 도청 도정회의실에서 열린 경남FC 선수단 출정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영 논리보다 정치 논리로 운영되는 구단

K리그에 시민구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시기는 2002 한·일 월드컵 직후다. 월드컵을 위해 만든 각 지역의 대형 경기장들을 활용해야 하지만 새로운 기업구단이 탄생할 여지가 작았다. 축구계는 시민구단의 가능성을 강조했고, 한·일 월드컵 당시 거리에 모인 수백만의 사람들을 보며 ‘대중의 관심’에 목마른 정치인들의 호감을 끌어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유럽·일본의 시민구단과 한국의 시민구단 사이에 결정적인 간격이 존재한다. K리그의 경우, 시민들의 자발적인 열망과 외침보다는 정치적 필요가 탄생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시민구단의 모습은 어떨까. 걸음마를 떼고 자립에 성공할 만한 충분한 시간과 지원이 있었지만 오히려 지자체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다. 시민구단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갖춰야 하지만, 현재 시민구단 중 그런 팀은 전무하다. 여전히 재정의 대부분을 지자체의 지원, 그리고 지자체장의 입김에 힘입은 기업들의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사이 프로축구 인기는 점점 떨어지며 구단주인 지자체장들은 야구 등의 대체재에 더 주목하고 있다. 구단 창단을 주도했던 지자체장들은 선거 결과에 따라 자리를 떠난 지 오래다. 매년 수십억원의 지원이 있지만, 하반기 들어 임금체불·자본잠식 등의 사태가 빈번해지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시의회·도의회의 질타가 이어진다.

최근 인천유나이티드(인천)를 둘러싼 잡음은 시민구단 병폐의 종합선물세트로 불린다. 인천은 대구FC에 이어 2004년 두 번째 시민구단으로 K리그에 합류했다. 2005년 깜짝 돌풍으로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은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으로 소개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2008년에는 흑자 경영에 성공했고, 당시 안종복 단장이 프로스포츠 최초로 증권시장 상장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안상수 시장이 물러나면서 안 단장 중심의 구단 운영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2010년 여름 허정무 감독이 부임하자 당시 송영길 시장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허 감독은 김남일·설기현·이천수 등 2002 월드컵 주역 스타플레이어와 외국인 선수를 대거 끌어왔지만 그들의 고액연봉은 팀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인천과 경남, 시민구단 병폐 대표적 사례

기대했던 성적을 내지 못한 허 감독은 고액연봉자들만 팀에 남겨놓고 2012년 초 사임한다. 이때 남겨진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팀의 부채가 됐다. 선수들을 처분했지만 영입할 당시의 계약금, 그리고 시민구단의 기준을 초과한 수당 등을 갚지 못했다. 결국 인천의 전 외국인 선수와 국내 선수들은 최근 임금 체불을 놓고 줄소송을 시작했다. 여기에 전지훈련 중 공금 횡령과 유용, 베트남 국가대표 선수인 르엉 쑤언 쯔엉 영입 과정에서의 의혹 등이 이어졌다. 구단 내부에서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파벌이 갈라져서 언론을 통한 폭로전을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미 인천은 지난 2년 연속 임금 체불로 문제가 됐고, 150억원가량의 적자가 누적된 상태다.

경남FC는 비리와 부패 덩어리로 얼룩졌다. 지난 2010년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조광래 유치원’ 돌풍으로 K리그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던 경남은 3년 사이에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2012년 안종복 전 인천 단장이 구단주인 홍준표 도지사의 권유로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안 사장은 코칭스태프에 대한 월권행위 등 일방통행을 거듭했다. 지난해에는 안 사장이 심판에게 유리한 판정을 부탁하는 대가로 뇌물을 제공한 ‘심판매수’가 발각돼 리그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다. 외국인 선수 계약 과정에서도 허위 계약서로 몸값을 부풀려 거액을 횡령한 사실도 밝혀졌다. 프로축구연맹은 심판매수 행위에 대해 7000만원의 제재금과 2016시즌 승점 10점 차감의 중징계를 내렸다.

지난해에는 안종복 사장의 후임인 박치근 사장이 득점 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해 외국인 공격수 기용을 배제해달라는 요청을 감독에게 하는가 하면, 경남교육감 소환 허위서명에 개입해 구속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 사장은 홍준표 도지사의 측근으로 알려져 프로축구단이 정치적 진흙탕의 장(場)으로 변질됐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들 구단 외에도 강원FC·광주FC 등 대다수 시민구단이 현재 자본잠식 상태이며, 수시로 임금 체불 위기에 시달린다. 이런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성남FC·수원FC·대구FC 등은 구단주인 시장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다. 돌려 말하면 이 팀들 역시 향후 구단주인 지자체장이 교체될 경우 언제든 다른 시민구단과 같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왜 시민구단은 위기에 빠졌을까? 비극은 경영 독립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1부 리그 클래식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연간 100억원, 2부 리그 챌린지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연간 50억원가량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 조례를 통한 지자체의 재정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은 구단 운영에 대한 간섭, 낙하산 인사 부임을 막을 명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구단의 고민은 경영과 운영보다는 주도권을 둘러싼 정치적 분쟁으로 흘러간다. 지자체장의 측근, 시체육회 인사, 구단 공채직원 등 이질적인 인물들이 한데 어울릴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이런 환경 속에서 좋은 감독과 좋은 경영인이 온다 해도 결국은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자신들이 지향하는 결과물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진흙탕 싸움에 너도나도 빠진다. 한 시민구단 관계자는 “프로스포츠의 본질은 팬에 있다. 시민구단 앞에 괜히 시민이 붙은 게 아니지 않나? 그러나 현실은 구단주인 정치인의 취향에 맞춘다. 시민구단이 아니라 시립구단, 시청구단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민구단의 성패는 곧 K리그의 성패다. 그리고 시민구단의 위기가 곧 K리그의 위기다. 더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현재의 시민구단 운영 형태에 경종을 울리고 과감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 있다.


리그 저해하는 팀 과감히 퇴출시켜야

시민구단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가장 큰 주체가 구단주인 지자체장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2014년 성남 일화로부터 구단을 인수받아 시민구단 성남FC로의 전환을 주도한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표적이다. 이 시장은 시민구단의 몇 안 되는 지속적 성공 사례를 리드하는 구단주다. 그는 “정치인인 구단주에게 정치적으로 구단을 운영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다만 생각을 바꾸게 만들어야 한다. 시민구단을 선거 승리의 전리품으로 착각하고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거나 불법 자금 운영의 창구로 활용하는 악의적인 활용을 막아야 한다. 오히려 구단이 깨끗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돼 팬들과 시민의 사랑을 받는다면 구단주의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않겠나? 시민구단 구단주들의 인식 개선을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민구단이 실패하거나 위기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장·감독 등이 견제 없는 권력으로 일방통행을 할 때다. 그 견제 도구를 만드는 것은 축구계의 몫이다. 재정 위기, 인사 전횡, 내부 비리 등에 대한 강력한 감시 체제와 규제 장치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구단이 최대한 빨리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프로축구연맹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시민구단은 프런트 인력이 적어 스폰서 유치, 마케팅 활동에 제약이 심하다.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의 경우, 리그에서 마케팅 전문회사를 설립해 스폰서 유치를 돕고 있다.

이러한 감시와 지원을 동시에 펼치고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경우엔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시민구단이 문제의 중심에 있지만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자칫 리그 운영에 파행을 가져올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은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2부 리그 팀을 14개까지 늘린 뒤 1부 리그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신생팀 창단이 당면 과제가 됐다. 그 신생팀은 대부분이 시민구단 형태다. 창단을 독려하지만 문제가 있는 기존 구단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희망을 품고 K리그에 뛰어든 시민구단은 현재 절망의 대명사로 변해가고 있다. 시민구단이 시민과 팬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자립과 재정적 자립이 필요하다. 시민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고, 팬들로부터 사랑받아서 지자체와 지자체장이 함부로 흔들 수 없게 해야 한다. 시민구단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인정받는 선순환 구조를 최대한 빨리 만드는 것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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