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낙점할 때까지 기다린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4.28 17:33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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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후 공기업 낙하산 인사 실태…“전문성보단 정권과의 인연이 최우선”

지난 몇 개월 국민의 시선이 4·13 총선에 쏠려 있는 사이, 정부 산하 공기업 및 공공기관 임원으로 전문성 없는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이 대거 임명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몇 개월간 공석인 공기업 임원 후보에도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정치권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낙하산 인사들이 임명된 공기업 중 상당수는 이명박 정권에서 방만 경영 등으로 문제가 된 에너지 공기업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관치금융 논란이 끊이지 않는 금융권에서도 선거를 전후해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대거 이뤄졌다.

대표적인 곳이 한국전력공사와 산하 공기업이다. 산하 공기업 중 세 곳은 총선을 보름 정도 앞두고 상임감사를 임명했는데 대부분 정치권 인사다. 3월30일 임명된 한국중부발전 김선우 상임감사는 ‘박정희 대통령 애국정신 선양회’라는 단체의 대외협력위원장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지냈던 인사다. 중부발전에서는 김 감사의 이력을 신재생 분야 기업경영컨설팅 회사인 한빛 대표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 미래희망 중앙부위원장, 대한민국 예비역장교연합회 대전·충남·세종지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에너지 분야와는 무관한 경력이 대부분이다.

한국동서발전은 김오영 상임감사를 3월28일 임명했다. 김 감사는 경남대에서 행정학 학사를 취득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마산시의회 부의장, 경상남도의회 의장을 거쳤고 2015년까지도 새누리당 경남도당 대변인을 맡았다. 3월17일 취임한 한국서부발전 박대성 신임 상임감사는 새누리당 충남도당 사무처장, 새누리당 국토교통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문위원 출신이다. 역시 에너지 공기업과 관련된 경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모회사인 한국전력 역시 3개월간 공석이었던 상임감사와 비상임 감사위원 자리를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20일 채웠다. 이 자리에는 이성한 전 경찰청장과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내정됐다. 이 전 청장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와 동국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경찰에 입문한 후 청와대 치안비서관과 부산지방경찰청장을 거쳐 경찰청장(18대)을 역임했다. 이 전 청장은 박근혜 정부 초반 민주노총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주도했으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바 있다. 조 전 의원은 고려대 경제학과와 미국 위스콘신 대학 경제학과 석·박사를 마치고, 정계에 입문한 후 18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20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곧바로 비상임 감사위원에 선임됐다.

수조 원대 부실 경영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광물자원공사에는 3월16일 김현장 신임 감사가 취임했다. 김 감사는 조선대학교 금속공학과를 나와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직능상임위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거쳤다. 2012년 대선 당시 한광옥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박근혜 정부 1기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국민대통합 위원을 맡았다.


광물공사, 3연속 정치권 낙하산 감사

특히 광물공사는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공기업이 얼마나 어려워질 수 있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광물공사는 현재 멕시코 볼레오 동(銅)광산 사업에 수조 원의 투자금을 쏟아 부었다가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2년 고정식 전 사장 취임 후 사업이 본격화됐을 때, 사업을 감시해야 할 감사는 모두 정치권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전직 감사 모두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선거 출마 지역구를 관리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신임 감사 역시 정치권과 연관이 있는 인물을 내려보냈다. 광물공사는 현재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겠다며 자구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감시해야 할 감사 자리에 회사 사정에 어두운 사람이 임명된 셈이다. 광물공사는 주요 사항에 대한 의결권이 있는 비상임이사 5명 중 4명도 정치권과 연관이 있는 인사로 꾸려져 있다. 한 전직 공기업 임원은 “공기업 부실을 정부 스스로가 자초하고 있다”며 “제정신이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예금보험공사는 총선 전날인 4월12일 강석인씨와 김영백씨를 각각 비상임이사에 임명했다. 강씨는 정치권 출신은 아니지만 재경부 출신으로 산업은행 감사와 한국신용정보 사장을 거쳤다. 일종의 ‘관(官)피아’라고 볼 수 있다. 수십 년간 계속된 관피아 논란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크게 불거졌다. 이후 관가에서는 ‘관피아’ 논란이 일지 않도록 몸조심했으나, 기존 관행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강씨가 임기를 시작한 날은 세월호 2주기 3일 전이었다. 김씨는 2002년에 대한석탄공사 감사를 역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예보 관계자는 “14년 전에 석탄공사 감사를 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금융권에 낙하산으로 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대구로 본사를 옮긴 신용보증기금은 선거 2주 전인 3월29일 총 4명의 비상임이사를 임명했는데, 대부분 낙하산 인사로 평가된다. 김영환씨는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박동수씨는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이며, 서보욱씨는 대구가톨릭대 교수 출신이다. 대구 지역 일부 국회의원과 고교 동문으로 알려져 있다. 임무성씨는 지난해까지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을 지냈다.

4월20일 한국전력공사 감사에 임명된 이성한 전 경찰청장 ⓒ 시사저널 임준선


공석 중 KB 감사에 청와대 인사 거론

주택금융공사 역시 신용보증기금과 같은 3월29일  사외이사 2명을 새로 선임했다. 2명 모두 현 여권과 관련된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다. 신용선씨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에서 선전국장과 교육원 부원장 등을 지냈고, 함께 선임된 서정환씨도 새누리당 경남도당에서 공천관리위원을 맡은 바 있다.

정치권 낙하산 문제는 공기업 및 금융권, 교육부 산하 국립대 등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앞으로도 계속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선거에 출마하면서 사표를 냈던 기관장들의 자리가 비어 있거나, 정권 차원에서 임명을 보류했던 자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기관장 임기가 끝나는 기관만 약 20곳에 달한다. 한국철도공사·한국표준과학연구원·한국지역난방공사·아리랑TV 등은 사장 자리가 공석이다. 한국철도공사 최연혜 전 사장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신용현 전 원장은 각각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코레일의 경우 벌써부터 ‘진박’ 낙선 인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전임 사장이 호화 출장 논란으로 사임한 아리랑TV의 경우 현재 사장을 공모 중인데, 최형두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최종 후보에 포함됐다. KB국민은행은 청와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이 감사로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태다. 이 자리는 2015년 1월 ‘KB 사태’의 책임을 지고 정병기 전 감사가 물러난 이후 공석이다. 국내 최대 은행의 감사 자리가 1년 4개월가량 공석으로 있었던 셈이다. 그동안 여러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된 바 있으나, 청와대에서 최종 낙점을 해주지 않아 자리가 비어 있었다고 내부에서는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자리에 최근까지 정무비서관을 했던 신 전 비사관이 거론되면서 정치권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큰 선거가 끝나거나 정권 말에 낙천 인사에 대한 보은 인사 또는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던 것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일어났던 일이다. 하지만 관가에서는 박근혜 정권에서 이런 현상이 유독 심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는 정권 초반부터 지적됐던 ‘청와대의 인사권 독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공기업 사장직에 도전했던 한 인사는 “최근 한 공기업 사장 공모에 무려 20명 가까운 인사가 지원했는데, 해당 부처에서 적임자가 없다고 재공모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20명이라면 전문가는 대부분 다 응모했다고 봐야 하는데 여기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은 못 찾은 게 아니라 안 찾았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부처에 선발 권한이 없다 보니 청와대에서 낙점한 인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중앙 부처 고위 공무원은 “세월호 참사가 터질 때까지만 해도 부처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여지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사고가 난 이후는 아예 청와대가 움켜쥐고 내리찍으니 우리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며 “선거를 앞두고는 아예 공모 절차 자체를 진행할 수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낙하산 인사의 또 다른 문제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광물공사의 사례처럼 전문성이 없는 임원은 회사가 엉뚱한 사업으로 골병이 들어가도 이를 적절히 견제하지 못한다. 비상임이사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면 거수기 역할 정도밖에 못하는 한계에 부딪친다. 그러면서도 최소 300만원 이상의 보수를 받기도 한다.

한 전직 공기업 임원은 “정부가 입버릇처럼 공기업 개혁을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낙하산을 내려보내 기업을 망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는 한 개혁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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