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현대중공업] "감독관 뜨면 작업 안해"...구조조정 소문에 안전의식 ‘뚝’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6.04.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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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기 통해 감독관 피하라고 지시...협력사도 안전감독 참여해야”
27일 울산 동구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노동자는 구조조정 소식에 현장 안전의식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 사진=박성의 기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작업장에 간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안전이 다 뭐냐.”

27일 울산 동구에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전 8시 작업장으로 향하는 현대중공업 노동자 강모씨(37)는 구조조정 소식에 현장 분위기가 초토화됐다고 했다.

정씨는 최근 연이어 발생한 현대중공업 사망사고는 단순 안전재해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구조조정 쓰나미’가 예고되며 직영과 협력업체 직원 사기가 모두 떨어진 탓에 안전의식이 바닥을 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씨는 “사측이 한 푼이라도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직영보다는 협력업체를 투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협력업체와 직영 직원 간 업무공유가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지다 보니 아찔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들어 산재 사망자만 5명이 발생했다. 한 달 걸러 한명이 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 ‘3000명 감원설’이 돌며 현장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4월 들어서만 3명이 죽었다. 

이에 정부가 직접 칼을 빼들었다. 고용부는 현대중공업에 근로감독관 1명을 21일부터 파견해 무기한 상주시키고 있다. 부산고용노동청도 25일부터 2주 간 27명의 전문 인력을 현대중공업에 투입해 대규모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있다.

26일 오후 4시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하고 있다. / 사진=박성의 기자

현장 노동자들은 이 같은 조처가 ‘언 발에 오줌누기’라며 힐난한다. 사측이 안전의식 강화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하고 있지만, 정작 현대중공업 현장 직원들은 “고용부 근로감독관 눈에만 안 걸리면 된다”며 방만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입사 2년차 직원인 최모씨(27)는 “사측 직원들이 무전기를 통해 감독관 동선을 계속 알려준다. 그러면 그 동선에서 진행 중인 작업이 일시 중단된다”며 “이게 무슨 감독이며 개선이냐.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생각은 없고 일단 걸리지 말자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토로했다.

현대중공업은 20일 작업장의 위험요인을 재점검한다며 전사 안전 대토론회를 실시했다. 노동자들은 이 같은 갑작스러운 현장 노동자 피로감만 부추겼다며 불만을 토했다.

이 날 토론에 참석했던 정모씨(24)는 “토론도 문화가 정착돼야 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갑자기 불러놓고 현장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피로감만 늘어난다”며 “머릿 속에는 구조조정 생각만 가득한데 안전에 집중이 되겠냐”고 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사측이 현장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작업 시스템을 개편하고, 협력사 직원이 현장감독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력사 직원이 감독관과 동행하는 것을 노동부가 막는다면, 노조 직원 역시 근로감독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정병천 현대중공업 노조부위원장은 “올해 사망사고자 5명 중 3명이 하청이다. 근로감독이 나오면 하청에서 한번쯤 나와 제언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이 같은 요구를 무시한다면 노동부와 사측이 안전개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다. 노조원이 근로감독에서 철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28일 상반기 임원인사를 단행하며 기존 경영지원본부 소속의 안전환경부문을 안전경영실로 개편하고 책임자를 사장급으로 격상시켰다. 신임 안전경영실장에는 김환구 부사장을 승진 발령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최근 잇따른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안전담당을 사장급으로 격상시켰다”며 “신임 김환구 사장은 회사 전체의 안전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안전 업무를 최우선으로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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