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야구의 갈라파고스 된 ‘김성근 야구’
  • 배지헌 | 엠스플뉴스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4.25 16:26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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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투·혹사·코치 사임…1970년대 일본 학생야구의 한계 보여
부진한 성적, 투수 혹사와 벌투 논란. 2016년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한화를 제외한 9개 구단의 야구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 연합뉴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 이글스는 일반적인 ‘프로야구’ 팀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장면을 종종 보여주곤 한다. 감독이 경기 도중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가 하면, 2군행을 통보받은 일본인 코치는 짐을 싸서 고국으로 돌아간다. 팀 내 최고 타자가 장시간 특타 이후 돌연 2군행을 통보받는 경우도 나온다. 감독을 인터뷰하려면 홍보팀 관계자가 아닌, 구단 조직도에도 없는 감독 전담 ‘홍보이사’를 통해야 하는 것도 김성근표 이글스의 특징이다.

그래도 이런 장면은 4월14일 펼쳐진 비극에 비하면 희극적인 축에 속한다. 이날 두산과의 경기에서 한화 선발 김용주는 1이닝도 던지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어 올라온 송창식은 4.1이닝을 던지며 90개의 많은 공을 던졌다. 송창식은 이날 4개의 홈런을 맞으며 12실점(10자책) 했다. 이미 전날인 4월13일 경기에 불펜투수로 등판해 15개의 공을 던지고, 4월10일에는 선발로 나와서 69구를 던진 상태였다. 송창식은 과거 ‘버거씨병’으로 선수생명이 끝날 뻔한 아픔이 있는 선수다. 투구수 80개를 넘긴 시점에서 직구 구속은 시속 130㎞를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눈을 질끈 감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공을 던지는 송창식의 모습은 보기에 처절했다.

경기 후 송창식의 90구 피칭은 ‘벌투(罰投)’ 논란으로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벌투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SK 감독 시절인 2008년에는 불펜투수 조영민이 6이닝 9실점하는 동안 120구를 던지게 방치했다. 몸에 맞는 공 이후 상대 타자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는 게 이유다. 2011년에는 SK 에이스 김광현에게 8이닝 동안 147구를 던지게 한 후 곧장 2군으로 내려보냈다. 한화로 옮긴 2015년에는 시범경기에서 유창식이 6이닝 동안 8실점하며 117구를 던지게 했다. 논란이 생길 때마다 김성근 감독은 “조영민으로 막아 투수를 아끼려 했다” “(김광현이) 스스로 던지는 법을 모른다” “시범경기라도 던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벌투, 프로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송창식 논란은 조금 달랐다. 한화의 시즌 초반 성적 부진, 이날의 17-2라는 대패, 송창식의 병력(病歷)이 겹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사실 벌투는 세계 야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식 용어다. 벌투는 문자 그대로 이미 투구수가 많거나 대량 실점해 마운드에 놔둘 이유가 없는 투수를 계속 던지게 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에서 신문 기사에 벌투란 말이 등장한 건 2000년 대 이후부터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감독들이 선수를 길들이는 용도로 자주 활용되긴 했다. 1991년 LG 백인천 감독이 에이스 김태원을 12실점 완투하게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발투수는 긴 이닝을 적은 실점으로 막겠다는 목표, 불펜투수는 팀 리드를 지키려는 목표, 원포인트 릴리프는 한 타자를 확실하게 잡는다는 목표를 갖는다. 그러나 벌투를 하는 투수에겐 그런 목표가 없다. 자기가 왜 마운드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무의미하게 공을 던진다. 자신의 선수생명과 기록은 온전히 감독 손에 좌우된다.

“프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투수 출신 한 해설위원의 말이다. “프로야구는 직업으로 야구를 하는 성인들이 뛰는 무대다. 경기장에서 벌을 주고 공개 망신을 준다는 개념은 있어서는 안 된다.” 김성근 감독은 서른 살, 마흔 살 선수도 ‘아이들’이라 부른다. “프로라면 돈 내고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들도 생각해야 한다. 관중들은 수준 높은 승부를 보러 오지, 누가 벌 받고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보려고 오는 건 아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지는 특타는 어떨까. 대다수 프로 선수는 기술적인 습득을 스프링캠프 기간에 마무리한다. 시즌 중에는 경기를 치르기 위한 컨디션 관리, 체력 관리에 중점을 둔다. 이따금 일부 팀이 경기 전 타격 연습을 생략해도 경기력에 지장을 받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한화는 경기 후에 단체로 특타를 한다. 경기 전에도 조를 짜서 특타를 진행한다. 특타가 아닌 일상타가 된 상황이다. 공포의 외인구단 실사판을 연상하게 하는 지옥 훈련은 어떨까. 프로구단의 멘털 트레이너를 겸하는 한 대학교수는 “과도한 훈련은 장기적으로 백해무익하다”고 지적한다. “기술이 어느 정도 축적된 프로 선수들은 더 많이 연습한다고 기술이 향상되지 않는다. 연습은 기술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과도한 훈련은 선수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1970년대 이전 일본 야구에 갇히다

김성근 감독은 투수의 어깨는 던지면 던질수록 강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스포츠의학계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의학계에서는 많은 이닝을 던지는 일, 피로한 상태에서 공을 던지는 것, 많은 공을 던지고 충분한 휴식을 갖지 않는 것, 연투를 하는 것 등을 절대 금기시한다. 2015년 한화 투수코치를 지낸 니시모토는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일본 시절만 해도 철저한 투수 관리로 정평이 난 지도자다. 올해도 고바야시 투수코치가 감독의 투수 운용에 반발해 일찌감치 짐을 쌌다. 고바야시 코치는 투수진의 연투와 혹사에 대해 정면으로 이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인 코칭스태프와의 마찰은 김성근 감독이 ‘일본식 야구를 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점을 고려하면 의외인 면이 있다. 김성근 감독이 일본에서 야구를 배워온 건 1970년대 이전의 일이다. 그 이후 일본 야구는 새로운 이론과 과학을 수용하며 눈부시게 발전했다. 과거와 달리 투수 보호에 철저하고, 선발투수 중심의 야구를 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현대화하기 이전의 일본 학생야구에 한국식 승리지상주의가 결합한 형태를 띤다.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정신력과 투지를 앞세운다. 팀원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다.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의 독립적인 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인 감독 1인 권력을 추구한다. 현대 야구와 시대의 흐름에서 홀로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섬, 이것이 지금 김성근 감독 야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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