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묵의 테크로깅] ‘바람’보다 ‘데이터’ 불러오는 후보가 당선된다
  • 강장묵 |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 (.)
  • 승인 2016.04.21 19:34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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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게 될 미래의 선거

2032년 4월13일 제24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이제 갓 사회에 나온 ‘교빈’이는 투표장에 갈 시간마저 없는 취업준비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신이 사는 선거구에 ‘어떤 후보가 나왔는지, 정책은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히 파악할 길이 없다. ‘투표를 잘하는 것’도 시간과 공부가 필요한 탓이다. 고민 끝에 교빈이는 선관위에서 추천하는 여러 개의 ‘대리투표 인공지능’ 중 하나를 선택했다. ‘대리투표 인공지능’이란 선관위가 2032년부터 실시하기로 한 인공지능이다. 이 인공지능은 각 정당의 동의를 얻을 경우 정당 추천 방식으로 제공된다.

 

교빈이는 고심 끝에 대리투표 인공지능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마이 스타일 투표’를 골랐다. 이 인공지능은 지난 1년 동안 교빈이의 식습관·동선·주거환경·교육 등을 분석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투표를 돕는 인공지능이다. 2032년 선거부터는 인공지능이 보조적 기능을 넘어 직접 대리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 방식은 투표하러 갈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과 온전한 판단이 힘든 심신 노약자를 대상으로 한다. 인공지능은 심신 노약자가 평소 건강한 생활을 할 때의 말과 행동을 꼼꼼하게 분석해 대리투표를 할 수 있다. 미래 취업준비생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는 불편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 ‘마이 스타일 투표’는 집 안에서 음악과 영화를 조용하게 감상하는 그를 위해 ‘층간 소음 방지법’ 등과 같은 법제를 발의할 최적의 의원과 정당을 추천하거나 지지해줬다.

 

ⓒ 일러스트 정재환

 

이처럼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느 수준까지 우리를 대신해줄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일단 인공지능이 유권자를 대신해 투표를 해주는 경우가 있다. 법적으로 대리투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유권자로 간주하는 것은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유권자에게 최적화된 후보나 정당을 추천하는 방법도 있다. 최종 선택은 인간의 의지에 두는 방식이다.


투표장 가는 대신 인공지능 통해 대리투표

2032년 미래 유권자는 아마도 모바일과 직접 투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바일 투표를 위해 바이오 인증이 사용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담고 싶은 유권자는 직접 투표장으로 간다. 모바일 선거가 일반화돼도 오프라인 투표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소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방법의 직접 투표를 선관위는 존중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유권자 스스로가 투표용지에 후보를 선택해 기표하는 기회를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막상 투표용지를 받아든 70대 할머니는 투표 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흔들렸다. 정말 꼭 뽑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다. 이 경우 할머니에게는 휴리스틱(heuristics)한 방법으로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다. 휴리스틱한 방법이란 투표장에 도착했지만 굳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유권자인 이 할머니 같은 이에게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어림짐작의 기술’이다. 미래에도 특정 유권자는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 평소 소신과 생각이 일관되므로 투표장에서 일체의 고민 없이 후보와 정당을 결정할 것이다. 2032년에도 콘크리트 지지층은 존재하며 이들의 투표 방향은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된다.

 

반면, 미래에도 부동표(浮動票)가 존재할까.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연약할 뿐만 아니라 갈팡질팡하기 일쑤다. 대다수 유권자는 투표일까지 결정을 유보하거나 고민을 계속한다. 부동층은 각 정당이 설득하고 싶은 대상이다. 그렇다면 부동표를 잡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부 유권자는 흔들리는 갈대다. 따라서 변화무쌍한 부동층에게는 휴리스틱한 방법이 즐겨 사용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아직 인간의 변덕과 복잡다단한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변수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판단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값지고 정확한 빅데이터 의정 활동 보고서


따라서 미래의 부동 표심을 붙잡을 기술은 이 휴리스틱 기술이다. 이 기술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 기술이다. 예를 들어 유기농은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이런 어림짐작이 휴리스틱의 한 사례다. 선거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라고 권하더라도 그 특정 후보와 정당이 유권자와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취해야 한다. 부동표를 잡을 휴리스틱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당과 국회의원을 선택하게 해준다. 유권자는 100%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032년에도 후보자는 법정 홍보물을 가가호호 전달할까. 거리에서 명함을 돌리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굳이 그런 방법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유권자의 알 권리가 후보자의 프라이버시보다 우선될 수 있다. 유권자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4년 동안 어느 정도 공약을 지켰는지,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떤 의견을 피력했는지 빅데이터로 분석한 보고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한 장짜리 보고서는 지금의 8장짜리 법정 홍보물보다 값지고 정확하다. 여기에 현역 의원이 또 당선될 경우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도 보여준다. ‘유리 어항 사회’인 2032년에는 공적 인물에 대한 사회적 감시망이 촘촘해지기에 가능한 얘기다.

 

정치에도 기술 활용의 결단이 필요하다. 2032년에 당선된 의원은 투명성이 높은 O2O(online to offline) 정치 플랫폼과 연결되는 의원 배지를 착용할 수도 있다. 배지에는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RFID(전자 태그), NFC(근거리 무선통신), 아주 작은 CCTV, 블루투스 등이 작동한다. 물론 의정 활동과 지역구 활동 시간 외에는 다시 프라이빗 모드로 전환된다. 이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를 위해 실현한 업적들은 광고처럼 도로 위에 표시된다. 이 광고판은 지역구 의원의 정치 활동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숫자로 보여준다.

 

이처럼 2032년의 국회의원은 자신이 노력한 결과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평가받을 수 있다. 이 평가는 자연스럽게 공천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미지나 바람보다는 이런 정책의 결과와 실현 가능성이 데이터화되니 후보자는 바람을 불러오기보다 데이터를 불러오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지역정서나 자극적인 언사로 바람을 부르려는 후보자보다 오히려 데이터를 불러오는 후보가 살아서 국회에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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