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한 대권 잠룡 대선가도에 ‘빨간불’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4.21 18:54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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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오세훈·안대희·김문수 낙선에 큰 타격 김무성도 총선 패배 책임론

수십 명이 모인 비좁은 공간이 ‘음소거’된 듯 적막했다. 4월13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 선거사무소에 20대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가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오 후보(42.4%)가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정세균(51%) 후보에게 8.6%포인트나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여유 있게 이길 것 같다”며 잔뜩 기대했던 오 후보 지지자 김 아무개씨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장내는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오 후보를 도왔던 자원봉사자 몇몇은 “저번 선거 때 출구조사 다 틀렸던데…”라며 개표 결과에 희망을 거는 표정이었던 반면, 한 원로 정치인은 출구조사를 보자마자 “아이고, 정치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해서…”라며 오 후보 등에 대한 원망 섞인 역정을 내기도 했다. 개표가 시작되자 정 후보는 오 후보에게 더 큰 격차로 앞서갔다. 이를 지켜보는 당직자와 지지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날 저녁 8시쯤 지지자들과 함께 개표 방송을 시청하러 선거사무소에 오기로 했던 오 후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패색이 짙어진 오후 11시쯤 오 후보는 선거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지자·당직자를 마주한 오 후보는 이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시장직을 중도에 사퇴한 데 대한 노여움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며 “선거운동 기간 중 대선 후보 지지율이 급등한 것도 많은 오해와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다”는 짧은 낙선 소감을 내놓은 다음 곧바로 선거사무소를 떠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4월14일 국회에서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박은숙


與, 반기문 영입 실패 시 대권 주자 ‘인물난’

대권 도전을 시사하면서 종로에 출사표를 던졌던 그다. 종로는 윤보선·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이 출마했을 만큼 대권을 향한 디딤돌 역할을 했다. 오 후보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험지 출마’ 요청에도 종로 출마를 고수했고, 그에게 친박(親박근혜)계가 지지 메시지를 보내 “대권으로 가는 방향을 잘 잡았다”는 분석도 많았다. 하지만 정 후보에게 12.9%포인트 차로 크게 패하며 그의 대권가도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개표 결과, 정 후보가 득표율 52.6%로 오 후보(39.7%)를 크게 이겼다.

‘정치 1번지’에서 오 후보의 참패는 이번 총선에서 벌어진 여권 내 대권 잠룡 추락의 서막에 불과했다. 곳곳에서 패전 소식이 날아들었다. 친박계 대권 잠룡으로 꼽힌 대법관 출신 안대희 새누리당 후보도 패전을 면하지 못했다. 그는 51.9%의 지지를 얻은 노웅래 더민주 후보를 상대해 33.2%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당초 부산 해운대 출마를 검토하던 안 후보였다. 당의 ‘험지 출마’ 요구를 수용해 마포 갑에 출마한 것이 아쉬울 법했다. 그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대구 수성 갑의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는 타격이 더 컸다. 62.3%를 얻은 김부겸 더민주 후보에게 24.6%포인트 차로 대패했다. 이는 그의 정치 인생에서 지역 선거 후보로 출마해 겪은 첫 패배다. 김 후보는 그간 지역구 국회의원에 세 번, 도지사에 두 번 출마해 모두 이겼다. 대구 수성 갑은 여권 텃밭이었다는 점에서 김 후보의 첫 패배는 그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패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구·경북(TK)에 기반을 다지며 부산·경남(PK)이 주요 기반인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겠다는 그의 ‘큰 그림’도 접어야 할 판이다.

김무성 대표는 여권 대권 잠룡 중 유일하게 낙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는 지역구 승리에 결코 도취될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선 여권의 대권 주자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새누리당은 더민주에 원내 1당을 내주며 완패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만들어졌다. 당내 계파 갈등으로 전권을 행사하기 힘들었다 해도 당 대표로 선거를 이끈 것은 김 대표다. 여당의 이번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이 가장 무겁다. 김 대표는 4월14일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며 불명예스럽게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내년 대선은 2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새로운 대권 후보가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 한 친박계 인사는 “총선에서 실패했더라도 대권 주자 후보군은 바뀌지 않고 4~5명이 경쟁하면서 대권 분위기를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여권 내에서도 회의적 시각이 있다. 한 여당 관계자는 “오세훈 후보의 경우 총선 패배로 2017년 대선 출마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여당 대권 주자 중 조기 이탈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새누리당 김문수(왼쪽 사진·대구 수성 갑 ⓒ 연합뉴스)·안대희(가운데 사진·서울 마포 갑 ⓒ 뉴시스)· 오세훈(서울 종로 ⓒ 뉴시스) 후보는 20대 총선에서 낙선하며 고배를 마셨다. 이에 따라 여당의 대권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총선 패배’ 꼬리표 달고 재보선으로 부활할 수도

다만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 여당의 대권 주자로 뛰어주는 경우는 예외다. 시사저널과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2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반 총장은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릴 정도로 지지세가 강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그가 국내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반기문 총장에게 새누리당이 꽃가마를 보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총선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오랜 공직생활로 안정을 중시하는 반 총장이 과연 난파선을 수리해가면서까지 대권가도에 나설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기존 여권 주자들이 반등할 기회는 남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여당 당직자는 “낙선한 김문수·안대희·오세훈 등이 재·보궐 선거에서 재기할 수도 있다”면서 “원래 1번을 뽑던 유권자에게 전당대회나 국정 운영을 통해 새누리당의 변화된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이들의 마음이 돌아서서 대선에선 새누리당에 표를 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여당 대권 주자는 총선 패배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 총장 영입이 없다면 19대 대선에 출마할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저마다 20대 총선이 남긴 패전의 꼬리표를 달고 선거에 나서야 하는 탓이다. 그 꼬리표는 셋 중 하나다. 패배한 총선을 이끈 당 대표였거나, 여당 텃밭 지역구에서 졌거나, 수도권 유권자에게 외면 받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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