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다르다’와 ‘틀리다’를 생각하며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6.04.21 18:52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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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언어의 연금술사’입니다. ‘국대급 드라마 작가’라는 호칭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분이 극본을 쓴 드라마를 우연히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대사 가운데서 믿지 못할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이건 저거하고 틀려’라는 식의 표현이 쓰인 것입니다.

그 순간 문득 시사저널에 맨 처음 썼던 칼럼이 떠올랐습니다. 2008년 2월 설합병호에 실린 그 칼럼의 제목이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을 혼동해서 쓰는 세태를 걱정해 쓴 글이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길거리에서도, 방송에서도 여전히 ‘다르다’를 ‘틀리다’로 잘못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됩니다. “색깔이 서로 틀리네” “내 생각은 너하고 틀려”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유명 인사나 스타급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물론 그깟 표현의 잘못이 무슨 대수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의사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르다’와 ‘틀리다’의 오용(誤用)은 단순한 표현의 잘못을 넘어서는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말은 생각의 그릇입니다. 생각이 말에 영향을 미치고, 말이 다시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우리 생활 속에서 견고합니다. 그런 점에서 ‘틀리다’라는 단어를 틀린 줄도 모른 채 일상적으로 오용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혹여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배타적 인식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숱한 잡음과 혼란을 남겼던 20대 총선이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개표 결과, 새누리당은 ‘영남우리당’,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민주당’, 국민의당은 ‘호남의당’이 되었습니다. 선거는 서로 다른 정견이나 정책을 가진 사람들끼리 경쟁을 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설령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더라도 그 사람의 정견이나 정책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은 틀린(맞지 않은) 것과 달리 교정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고 포용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요즘 화제가 되는 것 중에 ‘아재 개그’란 게 있습니다. 가벼운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웃기려고 하는데 반응은 영 신통치 않은 것이 아재 개그입니다. 웃음 유발 효과는 별로지만 딱딱한 이미지의 아저씨들이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가상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이겁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려 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낮춰 다가가는 것. 여소야대를 맞은 지금 정권에 필요한 것이 이 ‘아재 정치’입니다.

지난 8년간 여러모로 부족했던 저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를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밝은 삶 오래도록 일궈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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