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제동 건 삼성의 D램
  • 엄민우 시사비즈 기자 (mw@sisabiz.com)
  • 승인 2016.04.14 18:50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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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세계 최초 10나노급 D램 양산…대량생산엔 아직 ‘숨고르기’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총괄사장은 4월6일 삼성 수요사장단회의 자리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전날 10나노급 D램 양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수요사장단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10나노급 초반대 D램 개발도 무난하다”고 답하고 자리를 떴다. 10나노급 D램 양산 체제 진입에 성공했다고 밝힌 지 단 하루 만에 두 세대를 건너뛴 기술 개발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기술로 불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세계 반도체업계가 삼성전자 반도체의 기술적 성과를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D램 양산 체제를 갖췄다. D램 부문에서 10나노급은 ‘마(魔)의 장벽’으로 불릴 정도로 달성하기 힘든 기술로 여겨졌다. ‘10나노’ 기술은 데이터가 흐르는 선의 굵기를 10나노미터(nm)로 줄였다. 1nm는 10억분의 1m이다. 이 선의 굵기를 얇게 만들수록 전력소모가 적고 효율이 좋다. 같은 면적의 웨이퍼(반도체 재료가 되는 원형 판)에 더 많은 회로를 담을 수 있어 찍어낼 수 있는 반도체도 늘어나므로 원가 경쟁력이 올라간다.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D램 양산에 성공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 ⓒ 삼성전자 제공


“중국 스마트폰 수요 늘면 D램 양산도 가능”

공급 과잉 탓에 D램 값이 뚝 떨어진 지금, 업계가 수익성을 개선할 방법은 미세 공정화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까지 10나노 D램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 초부터 양산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며 “지금처럼 D램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선 결국 미세화 공정 기술력을 키워 원가 떨어뜨리기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비해 기술이 뒤떨어진 미국의 마이크론은 불황 직격탄을 맞아 지난 1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개발진은 10나노급 D램을 개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D램 개발실 각 파트가 퍼즐로 나뉘어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했다. 스마트폰·TV 등 완성품과 달리 반도체 개발 과정은 내부 직원들도 모두 알 수 없을 정도로 극비로 관리된다. 대략적 개발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공정 프로세스를 만들고 검증한 후 제품을 설계했다. 제품 개발 후 설계된 제품의 수율(불량이 없는 비율, 불량률의 반대)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이뤄졌고, 생산된 제품은 품질 검증을 받았다. 각 과정에서 모두 ‘노가다’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관계자는 “10나노급 D램은 초고속으로 동작하는 트랜지스터 위에 고용량 캐퍼서터(반도체에서 전하를 일시 저장하는 부품)를 나노 단위 간격으로 배열해 완벽하게 동작하는 셀(반도체에서 데이터 저장 공간)을 80억개 이상 만들어야 해 개발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10나노급 D램 양산 체제 구축은 시장 후발 주자들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D램 시장에 뛰어들려고 호시탐탐 노렸던 중국 기업들에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중국 업체들에 장벽을 쳤다는 전략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10나노급 D램 양산 체제를 갖췄지만, 곧바로 대량으로 제품을 쏟아내진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요가 걸림돌이다. 부품으로서 존재하는 반도체의 실적 그래프는 스마트폰·노트북 등 세트 산업과 함께 움직인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제품을 양산해도 이를 탑재할 기기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최고의 타이어를 만들어도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어 있으면 팔 수 없는 것과 같다.

당분간 반도체 수요가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시장조사 기관 IHS에 따르면, 올해 D램 시장에서 전체적으로 14% 매출 감소가 예상되고, 2017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분기부터 시장에 D램 공급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은 컨퍼런스콜에서 “시장에 풀리길 기다리는 D램 재고량이 쌓여 있다”고 발표했다. 이 물량이 2분기 이후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게 될 경우 D램 가격이 더 떨어지게 된다.

이 탓에 삼성전자도 당분간은 양산을 크게 늘리기보다는 시장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센터장은 “삼성전자는 10나노급 D램의 양산을 당장 늘리기보단 하반기 시장 상황에 따라 램프업(생산량 확대) 타이밍을 결정할 것”이라며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많이 만들어 봐야 결국 공급량이 늘어 가격만 더 내려가는 부정적 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스마트폰 보조금을 늘리고 있어 수요 확대를 기대할 여지가 없지 않다”며 “중국 내 스마트폰 수요가 늘어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초기 수율 문제를 잡는 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D램의 경우 수율이 98% 이상 나와야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아직 양산 초기라서 우선 수율을 늘리는 데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3위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중국으로 넘어가나
세계 D램 시장은 대한민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이 3등분하고 있다.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2015년 4분기 모바일 D램 매출 점유율은 삼성전자 58.2%, SK하이닉스 26.1%, 마이크론 14.3% 순이다. D램 시장은 마치 제로섬 게임과 같아서 한 업체가 점유율을 늘리면 다른 두 업체의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 셋 중 가장 기술력이 뒤처진 마이크론이 올 1분기 영업이익 적자를 내며 고전하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올라갔다며 흥분하지만 정작 업계에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며 경계한다.

반도체업계에선 “마이크론이 잘돼야 삼성·SK가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마이크론이 계속 부진할 경우 뒤에서 호시탐탐 인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국의 품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액정표시장치(LCD)와 달리 기술 개발이 힘든 D램의 경우 단기간에 시장 선도 업체를 따라잡기란 힘들다. 이 때문에 중국은 마이크론 인수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미국이 산업 보호 측면에서 마이크론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어하고 있지만, 실적이 너무 안 좋아져 국가가 아닌 주주들에게 공이 넘어가버리면 중국에 팔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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