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된 더치커피의 풍미…‘세균 커피’ 오명 벗어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4.0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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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테이너’ 구대회 대표 “겉모양·브랜드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국에서도 커피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대량 생산되는 인스턴트 믹스커피에서부터 커피머신을 통해 나오는 원두커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근래에는 장시간에 걸쳐 한 방울씩 추출하는 더치커피(Dutch Coffee)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맛이 부드럽고 향이 오래 유지돼 마니아층을 형성해가고 있다. 보관이 용이하도록 원액 상태로 병에 담아 파는 상품도 다양해졌다.

그런데 최근 시중에 유통되는 일부 더치커피에서 기준치보다 최고 1만 배 가깝게 많은 세균이 검출돼 논란이 일었다. 한국소비자원이 더치커피 30개 제품에 대한 위생도를 조사한 결과, 3개 제품이 일반 세균 기준치(1mL당 100 이하)를 위반한 것으로 나왔는데, 적게는 17배에서 많게는 9900배에 이르렀다. 이 중 1개 제품은 대장균군도 함께 검출돼 위생 상태가 불량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 시사저널 이종현


“김치처럼 숙성 과정 거쳐야 풍미 더해져”

‘커피테이너’(커피+엔터테이너) 구대회 대표는 “더치커피 시장이 커지면서 위생 문제가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형 증권사와 투자자문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던 중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 커피 전문가로 변신했다. 현재 서울 신수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구대회커피’를 운영하고 있다.

더치커피에서 위생 문제를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뭘까. 구 대표는 더치커피를 숙성 김치에 비유했다.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더치커피는 오랜 시간의 추출 과정을 거친다. 숙성 김치도 마찬가지다. 배추에 김칫소를 버무려 먹는 겉절이와 달리 배추를 소금에 절인 후 김칫소를 넣어 담근다. 둘 다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풍미가 더해지고 특유의 맛을 내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해마다 일부 숙성 김치 제품에서 세균과 대장균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나온다. 더치커피 역시 위생 문제에 철저해야 한다.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장기간 보관하며 마시지 않는다면 위생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 수도 있다. 추출 후 바로 마실 경우 오염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치커피의 진정한 매력은 ‘추출-병입-숙성’이라는 3단계를 거친 후에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먼저 더치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볶은 커피를 분쇄한 후 필터가 있는 커피탱크에 담아 커피가루를 다지는 탬핑(tamping)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작업자가 손 소독제와 위생장갑을 사용하지 않으면 손에 있는 세균이 커피가루를 오염시킬 수 있다. 또 추출 과정에서 작업자가 물탱크의 노즐을 수차례 조정하게 되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다. 결국 더치커피를 오염 없이 뽑으려면 위생장갑에 위생모, 토시에 앞치마 그리고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한다.

커피를 담는 용기를 비롯한 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것도 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추출 과정이 장시간 진행되기 때문에 커피탱크는 물론 추출된 용액을 외부로부터 차단할 필요가 있다. 구 대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더치커피 추출 기구를 틀에 넣고 개폐할 수 있는 문을 달아 오염원으로부터 커피를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출이 끝난 더치커피는 병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는 병입 과정을 거친다. 이때도 작업자는 반드시 위생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다소 불편하거나 또는 돈이 든다는 이유로 위생장갑조차 끼지 않은 채 맨손으로 병입을 하는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균 커피’ 논란이 일어난 배경이다. 조금 번거롭고 비용이 들더라도 위생적인 환경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추출과 병입을 위생적으로 마친 더치커피가 숙성 과정에서 오염되는 경우는 용기와 뚜껑에 문제가 있을 때다. 커피를 담을 용기와 뚜껑은 깨끗한 물로 세척한 후 자외선 살균 소독기로 1시간 이상 소독을 해야 만일에 있을 오염을 예방할 수 있다. 구 대표는 “이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경우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더치커피는 제조 과정에서 위생 문제를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용기를 소독하는 자외선 살균기(왼쪽)와 오염 방지를 위해 위생모·위생장갑·마스크 등을 착용한 제조자. ⓒ 시사저널 이종현


“생산자 신고제와 실명제 실시해야”

더치커피 제조업자는 1년에 두 번 생산한 제품에 대한 자가품질검사를 해야 한다. 검사 장비를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지 않은 경우 제품을 식품위생 검사기관에 보내 검사를 의뢰하게 된다. 이번에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검사처럼 세균 수가 1mL당 100 이하여야 하고 대장균군이 검출돼서는 안 된다. 최근에 적발된 더치커피 제조사들도 자가품질검사상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을 것이다. 구 대표는 “자가품질검사 때 보내는 샘플은 특별히 신경을 쓸 뿐만 아니라 일부는 고온으로 살균을 해서 보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관할 당국인 시·군·구청 담당자가 불시에 제품을 수거해야 정확한 검사가 가능한 이유다.

이에 앞서 더치커피에 대해서도 생산자 신고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더치커피를 만들려면 식품제조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생산자들의 신상 정보를 신고하자는 것이다. 생산자 실명제도 마찬가지다. 더치커피의 용기 라벨에 추출과 병입 등 제조 담당자의 실명을 기입하는 것이다. 구 대표는 “상호에 내 이름을 내건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더치커피를 만드는 작업장이 어떤 환경인지도 중요하다. 창고에서 대충 만들어놓고 포장만 그럴듯하게 해서 백화점에 대량 납품하는 제조사도 있는 실정이다. ‘구대회커피’는 작업장이 오픈돼 있다. 구 대표는 “그럴듯한 겉모양이나 브랜드에 현혹되지 말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제조되는 맛있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더치커피 제조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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