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스포트라이트’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6.04.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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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록을 공개한다니…. 편집자의 책임은 어디 있죠?”

“이런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게 기자인가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나온 대사입니다. 미국 보스턴 지역 천주교 사제들의 성추행 사실을 담은 기록물을 두고 담당 판사와 기자가 나눈 이 대화에 등장한 ‘책임’이라는 단어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겨졌습니다.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 지역 신문인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의 기자들이 사제들의 성추행과 그것을 은폐해온 교회의 실상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스포트라이트> 얘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비단 직업적인 친밀감에서만은 아닙니다.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뛰는 사람들의 헌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새겨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장벽에 맞서 도전한 그들의 열정과 노동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 사제들의 더러운 행동은 이후에도 거리낌 없이 계속되었을지 모릅니다. 최근 개봉했던 한국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에 담긴 메시지도 비슷합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염전 노예’ 사건을 다룬 이 영화에서도 진실을 찾으려는 카메라 기자와 그것을 감추려는 세력의 대립이 긴장감 있게 그려집니다. 촬영을 막으려는 염전 주인에게 폭행당하면서도 카메라를 거두지 못하는 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 사람들 편에 안 서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기자로 살아온 지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시사저널에 몸담은 지는 올해로 27년째입니다. 이 두 영화를 떠올리면서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진심을 다해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었던가를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혹여 개인적인 무능 혹은 나태함으로 인해 반드시 밝혀져야 할 진실을 눈앞에서 놓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도 됩니다.

이제 시사저널이라는 이 직업의 공간과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이별의 시간 앞에서 가장 먼저 다가드는 것은 숙연한 회한입니다. 그동안 후배들에게는 “재미와 감동, 메시지 세 가지 가운데 단 하나도 독자에게 주지 못하는 글은 길거리 전단지만도 못한 쓰레기”라고 줄곧 말해온 사람으로서 스스로는 과연 그런 글을 써왔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앞섭니다. 하지만 능력 있는 기자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흔히 말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 같은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들은 흔히 ‘기사를 막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막는다’란 말 속에는 자기 기사를 펑크 내지 않고 잘 작성해 임무를 완수한다는 뜻 외에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을 잘 방어해 거두어내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뉴스를 맨몸으로 받아내는 일, 그것이 바로 기자들의 숙명입니다. 그 숙명 앞에서 오늘도 스스로 겸허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과 또 그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는 많은 분께 힘찬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그들이 앞으로 여러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리 시대의 ‘스포트라이트’를 계속 굽힘 없이 비춰주기를 희망해봅니다. 자긍과 번민, 회한으로 붉게 물든 기자생활의 황혼을 맞아 떠오르는 생각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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