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리더, 아버지는 팔로워가 되면 어떨까”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31 18:47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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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의 위기 진단한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의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사회는 우리에게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지옥’을 잘 참아내고 대학만 가면 광명의 길이 열린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깨어졌다. 대학생들은 다시 ‘입사지옥’으로 향한다. (중략) 평생 열심히 일하면 여유로운 노년을 맞는다는 약속을 믿었다. 그러나 이른 퇴직과 자영업 실패를 거쳐서 병과 가난에 찌든 노년이 기다린다면 어떤 심정이 들까? (중략) 깨어진 약속을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는 20년 뒤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일까?”

 

1인당 국민소득이 빠르게 늘어나는 동안 자살률도 함께 올라간 이상한 나라. 열심히 노력하면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사라진 세상은 왜, 어떻게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었을까? 저성장 시대의 새로운 경제문법을 찾는 희망제작소 이원재 소장이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아버지 시대의 ‘성장’ ‘소득’ 담론이 불어넣던 희망과 약속이 어떻게 깨어져왔는가를 밝히며 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우리가 새롭게 성찰해야 할 질문들을 제기한다.

 

ⓒ 어크로스 제공

 


“서로 나눌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 이뤄야”

 

“한국이 벌어들이는 국민소득이 연간 100만원이라면, 1990년대 중반 이 나라는 일반적인 직장인(하위 90%)이 46만원을, 자산 소유자가 20만원을, 자영업자가 17만원을, 고소득 직장인(상위 10%)이 16만원을 가져가는 사회였다. 그 20년 뒤 이 나라는 일반적인 직장인이 38만원을, 자산 소유자가 32만원을, 자영업자가 8만원을, 고소득 직장인이 20만원을 가져가는 사회가 됐다.”

 

이원재 소장이 전제하는 한국의 현실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암담하다. 1960년 100달러를 밑돌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015년 3만 달러에 육박해 55년 만에 300배 늘어났다. 그런데 55년 전과 비교해 우리의 삶은 과연 300배 더 나아졌을까? 오히려 그 반대임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끊임없이 관찰된다. 이 소장은 노동소득 분배율, GDP(국내총생산) 성장률과 가계소득 증가율의 격차 같은 지표들을 면밀히 살피며 월급 통장에 담긴 불평등을,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 계획에 드리우는 절망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또한 세습받지 않고서는 자산을 형성할 길이 가로막히는 세습자본주의가 시작되고, 기득권을 획득한 노인들이 다음 세대를 의사결정 테이블에서 배제하는 노인 지배 체제가 견고해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야만적인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를 통해, 모두가 믿고 따랐던 아버지 세대의 성장 담론과 ‘각자도생’의 전략에 관해, 그동안의 선택과 합의들에 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볼 것을 요청한다. “2000년대 이전과는 달리 이제 생산성이 일자리를 자동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물론 첨단 기술이 계속 나와 생산성을 높이도록 장려하는 사회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높아진 생산성의 과실을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나눌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20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깨어진 약속 넘어, ‘새로운 약속’ 위한 해법


이원재 소장은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차이를 알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지상과제였던 ‘양적 성장’은 아들 세대에는 훨씬 덜 중요해진다. 일자리 자체에 관한 기준도 달라졌다. 삶을 상승시켜줄 일자리를 찾아 모험을 걸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청년들은 삶을 안전하게 만들어줄 일자리를 잡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로  몰려든다. 저성장 시대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이 소장은 이렇게 달라진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를 위한 적정 일자리는 고민조차 할 수 없게 된다고 역설한다.

 

“OECD 조사 결과가 있다. 10대에서 50대까지 세대를 나눠서 OECD 30여 개 국가 국민들한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라고. 한국의 경우 50대 이상은 압도적인 최하위고, 10대·20대는 다른 선진국과 거의 비슷했다. 이 결과를 보면 주관적인 조건은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다음 세대가 빨리 리더십을 갖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 소장은 아버지 세대의 ‘깨어진 약속’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약속을 쓰는 일’을 제시한다. 우리가 옮겨가야 할 사회와 새롭게 마련해야 할 선택지에 관한 기획을 담대하게 펼쳐놓는다. 청년들이 리더가 되어 사회를 이끌고 노년층이 팔로워십을 발휘하며 이들을 뒷받침하는 리더십의 교체가 일어난다면 어떨까? 자산을 함께 쓰는 이들이 평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협력을 동력으로 삼는 ‘협동조합’의 원리가 사회 전체로 확대된다면 어떨까? 1%의 자산가들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99%가 먼저 책임을 실천하고 나선다면, 세상은 더 크게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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