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명분이라도 잡아야 후일을 도모한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3.29 09:21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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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던 김무성, 대통령·친박계에 항거 / ‘옥새 투쟁’은 총선 이후 대비 노림수
© 일러스트 찬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제대로 ‘칼’을 빼 들었다. 그는 지난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 친박(親박근혜)계의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됐다. 비박(非박근혜)계를 대표하는 그가 집권 여당의 권력을 거머쥐자, ‘불편한’ 청와대와 각을 세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년 8개월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간간이 친박계, 그리고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과 대적하는 모양새가 빚어져도 그는 이내 머리를 조아렸다.

그랬던 김 대표가 4·13 총선을 목전에 두고 ‘유승민 찍어내기’ 등 공천 파동과 관련해 침묵을 깼다. 이른바 ‘옥새(玉璽) 투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 대한 항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의 반격은 단순히 공천 파동 국면에서 나온 돌발 변수는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13 총선 후 벌어질 당내 대격돌을 대비한 ‘명분 잡기용’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무성, 친박계 뒤통수 제대로 치며 반격

유승민 의원이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결행한 3월23일 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 한 감자탕집에서 친박계인 서청원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 박종희 제2 사무부총장 등과 ‘감자탕 회동’을 했다. 이는 박 부총장이 자신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회동 장면을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당시 회동 사진에서 김 대표와 친박계 인사들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웃고 있었다.

이날 심야 회동에 앞서 비공개 최고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당시 회의에서 김 대표는 공천 파동을 언급하며 수차례 “(당 대표를) 못해먹겠다”며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김 대표와 공천 국면에서 대립해온 원 원내대표는 이에 질세라 “당 대표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중간에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고 맞받아쳤다. 고성이 오간 당시 회의 때와 달리 감자탕 회동은 화기애애했다. 박부총장은 “심야 최고회의에서 격론과 고성이 오갔지만 격의 없이 화해하고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자리였다”고 SNS에 남겼다.

하지만 화기애애했던 회동의 기운이 채가시기도 전에 김 대표는 반격의 카드를 던졌다. 감자탕 회동 다음 날인 3월24일 오후 김 대표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 을(이재만 공천) 선거구를 무공천 지역으로 남겨두겠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들을 대거 공천한 대구 동구 갑(정종섭), 달성군(추경호), 서울 은평구 을(유재길), 송파구 을(유영하) 등 선거구 4곳을 무공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최고위원회 의장이자 당 대표로서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추인하지 않겠다는 선포였다.

김 대표가 막판 승부수를 던지면서 새누리당 공천 파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유승민 지키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친박계를 향한 도발을 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김 대표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일순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홀연히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떠났다. 김 대표를 따라 부산을 찾은 원 원내대표가 김 대표의 결정 번복을 요구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3월25일 김 대표가 상경하면서 새누리당 공천 파동은 다시 반전을 맞았다. 이날 오후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구 동구 을과 서울 은평구 을, 송파구 을 3곳을 무공천하기로 확정했고, 재공모 절차를 거친 대구 수성구 을(이인선 공천)을 포함한 나머지 지역구 3곳은 공관위 결정을 추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내 일각에서는 공천 미추인 지역구 6곳에 대해 ‘3 대 3’의 황금 분할을 이뤘다는 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김 대표와 친박계가 일정 정도 조율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대표가 애초 전면 무공천 입장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서긴 했지만, 공천 파동의 핵심인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에 대한 무공천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승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누리당이 대구 동구 을 무공천을 확정지으면서 유 의 원은 더불어민주당 이승천 지역위원장과 양자 대결을 벌이게 됐다. 친박계 내부 사정에 밝은 여권인사는 “김 대표가 실리와 명분을 제대로 살린 한 수를 둔 것”이라면서 “그동안 시간을 끌면서 공천 국면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온 친박계가 김 대표의 반전 카드에 제대로 한 방 맞은 꼴이 됐다”고 해석했다.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의 전면전이 만 하루 만에 정리되면서 갈등은 수습 국면을 맞은 듯 보인다. 하지만 김 대표의 옥새 투쟁을 지켜본 친박계와 청와대는 여전히 격앙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의 무공천 선언이 있은 직후 청와대 내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항명” “사실상 전쟁을 선포한 것” “정치를 치사하게 한다”는 등 김 대표를 비난하는 원색적인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운데)와 비박계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류성걸·임태희·이재오·유승민·권은희·조해진 후보(왼쪽부터).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뉴시스


‘무쫄’ 비아냥거림 듣던 김무성의 변신

김 대표와 일정 정도 밀월 관계를 유지하던 친박계 내부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감춰뒀던 비수를 드러냈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3월초 자신을 찍어내야 한다는 친박계 윤상현 의원(탈당 무소속 출마)의 막말 파문이 터져 나왔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후 김 대표는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파행 사태와 관련해서도 “내가 그동안 침묵을 지켰는데 (지금도 무엇이든) 이야기를 해주면 나는 망하는데…”라면서 말을 아꼈다. 김 대표는 이즈음 열린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책 행사에서 “요즘 제 마음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이라고 말하며 복잡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내비쳤을 뿐이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친박계를 향해 몸을 낮춘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 10월16일 중국 방문 중 “정기국회 이후 개헌 논의가 봇물이 터질 텐데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박 대통령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고 하루 만에 사과했다. 그는 청와대와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의 갈등이 본격화한 2015년 6월초까지 박 대통령이 지적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강제성이 없어 위헌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태세를 보이자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위헌성이 분명한데 이를 결재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 체제 이후 친박계의 전횡과 이에 반발하는 비박계의 지원 요청 속에서도 ‘정중동’을 유지하던 김 대표가 강공(强攻)으로 태도 변화를 보인 데는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여권 내 유력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하던 김 대표의 위상 변화가 ‘이제는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유권자 10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 잠재 후보 지지율 조사(2월29일~3월1일)에서 김 대표는 지지율 6.4%를 기록해 4위를 기록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1.8%),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16.1%), 박원순 서울시장(7.1%)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김 대표의 지역구가 있는 부산·경남(PK)에서도 김 대표는 12.3%를 기록해 문 전 대표(22.6%)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밀리는 양상이다.

김 대표의 역할론을 기대했던 비박계 내부에서조차 김 대표의 침묵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대표는 한때 ‘무대(무성 대장)’라고 불리면서 비박계의 구심점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연이어 청와대와 친박계에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이 반복되자, 비박계 일각에서는 ‘무쫄(무성 쫄병)’ ‘무른 대표’라는 등의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였다.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김 대표는 일을 저지르면 채 30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말을 바꾼다”며 ‘30시간 법칙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 대표가 자신의 존재감을 공천 파동의 막판에서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김 대표가 4·13 총선 이후까지 고려해 ‘멀리 보는 한 수를 뒀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김 대표의 임기는 총선 이후 3개월 뒤에 열릴 7월 전당대회로 끝이 난다. 차기 여권 내 대권 레이스의 명암을 가를 수 있는 중차대한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미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 파동을 지켜본 비박계 내부에서는 4·13 총선은 당내 계파갈등의 한 축인 친박계의 승리로 귀결됐다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3월24일 부산 영도구 사무실에 도착한 후 손짓을 하며 영도다리를 걷고 있다. © 연합뉴스


공천 막판 던진 승부수 뒤에 숨겨진 셈법

실제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250여 개 지역구 후보 중 친박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양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주류의 위상을 가졌지만, 박 대통령이라는 배경이 작용한 영향일 뿐 수적으로 비박계가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지만 현재 권력의 힘은 여전히 무시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결국 4·13 총선 이후 친박계가 수적인 열세를 만회하는 순간 힘의 균형은 일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4·13 총선 이후 당내 역학구도의 변화는 김 대표로서도 적지 않게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그동안 총선 공천에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거듭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개혁공천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정치적 셈법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상향식 공천의 경우 비박계 현역 의원이 당내 경선을 통해 생환(生還)할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오픈프라이머리는 친박계인 이한구 공관위원장에 의해 좌절됐다. 상향식 공천제 취지를 따르기 위해 일반 국민 경선 참여 비율을 당헌·당규에 적시된 50%보다 더 높이자고 했던 김 대표의 주장도 ‘일부 지역에 한해서만’ 도입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김 대표가 이른바 김무성계의 공천을 통해 실리를 챙겼다는 분석도 있지만, 총선 이후 펼쳐질 당내 역학관계의 전면적인 변화는 김 대표로서도 무시하지 못할 상황변수다. 이에 따라 김 대표가 ‘유승민 찍어내기’를 막는 절묘한 한 수를 통해 친박계의 횡포에서 비박계를 지켜내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비박계를 결집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았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가 많다. 무공천 카드를 밀어붙여도 선거 책임론에서 일정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도 김 대표의 판단에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4·13 총선 결과가 어찌 됐든 이번 총선 공천은 친박계와 청와대의 ‘작품’이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이미 20대 국회에서 비박계가 친박계에 포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면서 “불리한 양상이 될 게 빤한데 여기서 또 물러서면 자신을 지켜줄 동력(비박계)마저 잃을 수 있다는 점을 김 대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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