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놀이터·편의시설 없는 빌라에 사는 이유
  • 노경은 기자 (rke@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15:51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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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기’로 사업승인 법망 피해 빌라 난개발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빌라 단지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이 서울에서 벗어나 수도권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있다. 서울 전셋값 정도로 빌라 매입이 가능하면서 출퇴근이 용이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서울 인근 땅 소유자들이 4층 미만 빌라를 짓고 분양에 나서고 있다. 서울 접근성이 좋은 집을 찾는 수요를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상당수 빌리가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아 입주민들 피해가 늘고 있다. 건축주들이 건축법 허점을 노려 편법개발한 탓이다.

◇주택법 개정되면서 건축주 편법 만연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은 서울 중심지와 접근성도 좋고 신축빌라도 많아 유입인구가 늘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이병헌, 엄태웅 등 스타들이 언론에 자기 집을 공개하면서 지역 인지도가 높아진 영향도 있다. 그래서인지 걷다보면 5분에 한번 꼴로 신축빌라 공사현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난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현재 분양중인 A빌라는 총 200세대 가량으로 구성됐다. 빌라치고는 초대형단지로, 동 수만 해도 10개 정도 된다. 현행법대로라면 이 빌라는 30세대 이상인 공동주택이므로 빌라 건축에 앞서 사업계획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30세대 미만 공동주택에 한해 사업계획 승인 없이도 건축이 가능하도록 주택법을 개정했다. 이는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의 후속조치 차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부 건축주들은 이 법을 교묘히 이용하기 시작했다. 건축주 한 명이 A빌라를 지었지만 명의를 대여해 한 동씩 다른 사람 이름으로 건축 신고했다. 덕분에 사업계획승인 절차는 생략된 채 200세대 초대형 빌라 단지는 지난해 말 준공됐다.

통상 단지 진입 도로폭이나 놀이터, 경로당과 같은 생활편의시설, 전기 배관 등 설비는 사업계획승인 절차를 통해 계획·검토한 뒤 설치한다. 그런데 200세대 빌라단지가 30세대 미만으로 쪼개져 건축허가를 받으면서 생활편의시설 설치 계획은 애초부터 배제된 것이다.

한 입주민은 “단지 진입 도로폭은 좁고 경사진데다 구불구불해 올라오기가 힘들다”며 “200세대 빌라인데도 놀이터는 없어 아이가 뛰어놀다 사고나지 않을까 아슬아슬하다”고 말했다. 또 인근 활면 이면도로는 정비되지 않아 서울 도심 못지않게 정체가 심하다. 광주시 뿐 아니라 우후죽순으로 빌라가 생기는 지역의 공통된 문제로 꼽힌다.

◇쪼개기 빌라가 가격방어 안되는 이유?…분양가 신고 제외대상인 탓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은 분양 승인을 받으려면 신고해야 한다. 신고할 때 광고 계획, 분양가 등 분양 관련서류를 갖춰야 한다. 지자체는 서류를 검토한 뒤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30세대 미만으로 쪼개기 건축허가가 난 빌라는 가격신고 절차에서도 빠진다ㅏ. 결국 건축주가 부르는 게 값이 된다. 이탓에 분양 예정자는 분양가가 싼 지 비싼 지 알 길이 없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30세대 미만의 경우 가격을 검토하지 않고 건축주나 시장에 맡긴다”고 밝혔다.

시세와 비교해보면 된다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이 일대 한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말 주택경기가 좋았을 땐 인근 빌라 건축주들이 담함해 분양가를 10% 올려받았다”고 말했다. 신고없이 준공이 난 빌라인지라 분양가를 올려받아도 제재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사업계획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수익은 늘고 건축 기간을 줄어들므로 편법 행위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빌라를 두고 건축주 여럿이 허가를 받으려 할 때 지자체 주택과가 면밀히 검토하고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관행처럼 승인을 내주면서 결국 입주민의 생활수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이같은 빌라 난개발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토부가 전일 발표한 지난해 건축허가만 봐도 빌라에 해당되는 다세대주택은 전년도 대비 49.8%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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