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돌풍’은 ‘찻잔 속 태풍’인가
  • 김원식│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9 11:36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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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핵심인 흑인 유권자 외면으로 샌더스 인기 하락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 AP 연합

‘누구든 한 주(週)에 40시간을 일하는 사람이 가난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소득 불평등 타파 등 파격적인 공약을 앞세워 미국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이른바 ‘샌더스 돌풍’을 몰고 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74)의 선거 캠프 홈페이지에 있는 구호다. 쉽게 말해 저소득층의 복지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그의 핵심 공약이다. 그렇다면 미국 사회에서 저소득층을 대변하고 있는 흑인 사회의 압도적인 지지는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미국 대선의 시발점으로, ‘풍향계’로도 불리는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에서 만들어낸 ‘샌더스 돌풍’의 위력은 미국 10여 개 주에서 동시에 실시된 ‘슈퍼 화요일(3월1일)’ 경선을 계기로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가장 큰 원인은 민주당 흑인 유권자 중 최소 70% 이상이 샌더스보다는 그의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샌더스가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주를 포함해 4개 주에서 승리해 다시 돌풍의 불씨를 살릴 계기는 마련했지만 흑인 표가 등을 돌린 이상 힐러리를 누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평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마디로 샌더스는 선거 전략에서 흑인의 표심(票心)을 놓쳤다. 버락 오바마 집권 이후 2011년 발생한 이른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Wall Street)’ 시위에서 분출된 시민들의 욕구는 샌더스가 그의 공약에 다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샌더스의 주요 지지층이 백인 중심의 진보 인사들과 대학생 위주의 젊은 층이라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흑인 공략’ 전략 부재에서 온 패배

그러나 오바마 집권 시 또 하나의 사태가 발생했다. 흑인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경찰 등 공권력의 흑인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은 끊이지 않았고, 이내 흑인들은 ‘흑인의 삶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를 앞세우고 분노를 표출했다. 샌더스 역시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흑인들의 욕구를 제대로 담지는 못했다. 샌더스가 상원의원 시절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법안에 찬성했다는 사실도 클린턴 측에 의해 부각되면서 흑인들은 더욱 샌더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클린턴이 경찰 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를 만나고 그들의 유가족들을 캠페인에 내세우는 고도의 전략을 내세우자, 이에 당황한 샌더스가 급히 흑인 민권 지도자를 만나 구애를 요청하는 모습은 옹색해 보이기까지 했다. 53년 전 대학생 시절의 샌더스가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는 사진까지 공개됐지만 흑인의 표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클린턴이 소수인종이나 흑인들이 피해를 당한 현장을 찾아 자신의 관심 어린 모습을 TV 카메라에 비추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는 동안, 샌더스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연설 위주의 유세를 이어갔지만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었다.

실제로 이번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샌더스가 승리한 지역은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와 백인 유권자들의 비중이 큰 오클라호마·미네소타·콜로라도주였다. 이에 반해 흑인 유권자의 비중이나 영향력이 큰 앨라배마·텍사스·조지아·버지니아주에서는 압도적인 격차로 클린턴에 완패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3월2일 뉴욕에서 유세 연설을 하기 전에 지지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AP 연합

치명적인 실수가 돼버린 ‘오바마 공격’

‘샌더스 돌풍’이 흑인 사회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대형 태풍으로 발달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전략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주로 월가에 의해 좌우되는 금권정치를 언급하며 오바마에 의해 잘못 운영되고 있는 국정을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힐러리의 공약도 오바마 정책의 아류(亞流)에 불과하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임기 후반이 돼도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은 내려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민주당원의 지지율은 85%에 달하고 있다. 특히 흑인들의 경우 약 90% 이상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만족감을 표출하고 있다. 샌더스는 처음부터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오히려 오바마의 적자(嫡子)임을 내세우고 샌더스 돌풍을 흡수하기 위해 일부 공약을 좌(左)클릭한 힐러리가 이번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압승을 한 것은 정치 현실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의 89%가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하는 민주당원은 34%에 불과했다. 자기들이 뽑은 정권에 대한 비판이 그만큼 적은 것은 당연하다. 샌더스는 이 점을 간과하고 말았다. 오히려 상대당인 공화당에서는 같은 아웃사이더인 도널드 트럼프가 돌풍을 넘어 대세론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현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찬 공화당원을 트럼프가 파고들어 대세론을 장악한 것이다. 만약 샌더스가 공화당 출신이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회자되는 이유다.

결국 미국 대선 민주당 레이스는 초반에 불어온 강력한 샌더스 돌풍이 이미 경선 초반기에 그 속살을 드러낸 모습이다. 샌더스가 파격적인 공약으로 젊은 유권자층이나 백인 진보층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오바마 정권의 일등공신인 흑인 유권자층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서 ‘찻잔 속 태풍’으로 사라질 공산이 커졌다. 샌더스가 이후 경선에서 몇 개 주를 더 이길 수는 있으나,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대의원 수에서는 결국 클린턴에게 패하고 말 것이란 분석이 거의 확정적이다.

샌더스 역시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슈퍼 화요일’ 패배 이후 연설에서 “이번 선거는 단순히 대통령 한 명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며 “우리가 하는 선거는 그런 미국을 바꾸려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샌더스의 이 발언은 그가 ‘슈퍼 화요일’ 경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경선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주장한 공약들을 누군가가 이행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사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별로 급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트럼프라는 이단아가 상대 공화당을 휘저으면서 대세론을 굳혀가고 있으나, 본선에서는 샌더스에게도 패배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민주당 정권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그만큼 큰 상황이다. 오히려 민주당 유권자들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경우 샌더스 공약을 어디까지 반영할지에 더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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