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치료로 완치 가능 6개월 치료제 복용 기간 줄이는 연구 중”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8:25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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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 교수 “결핵 진단과 치료는 집 근처 보건소가 최고”

결핵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병이다. 현재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결핵균에 감염된 상태다. 진료 환경이 좋지 않은 국가에서 주로 발병하는 후진국형 질환인 결핵의 국내 발병률과 사망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다. 대한결핵협회에 따르면, 2013년 현재 국내 결핵 환자는 인구 10만명당 90명(세계보건기구는 100명 이상으로 판단)에 육박한다. 일본은 20명 선이고 미국도 5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한 해 4만5000명의 결핵 감염자가 발생하고 2000명 이상이 사망한다. 이는 지난해 메르스 사망자의 60배가 넘는 수치이고 한 해 폐렴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와 비슷한 규모다.

 

결핵은 약으로 완치할 수 있다. 그러나 수개월 동안 많은 양의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환자는 중도에 약 복용을 중단하기 일쑤다. 또 결핵균 감염자는 자신이 결핵에 걸린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 약으로 완치가 가능한데도 결핵을 쉽사리 퇴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재준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의사와 환자의 면담 시간을 늘리고, 환자의 치료제 복용 기간을 줄이는 등 제도적 개선이 결핵 퇴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단법이나 치료법은 상당 수준이므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임 교수는 국제결핵연구소·질병관리본부 등을 통해 결핵 퇴치를 연구하는 결핵 전문가다. 그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다른 OECD 국가들보다 한국에 유독 결핵 환자가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결핵은 전쟁을 치르면서 크게 확산한다. 국내 결핵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창궐했다. 당시 젊었던 사람이 결핵균에 감염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현재 노인이 된 그들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결핵균이 활성화된 것이다. 그 외에도 결핵의 원인으로는 당뇨, 장기 이식, 류머티즘 치료제 등이 있는데 이런 원인으로 면역력이 나빠진 상태에서 결핵균이 전파된다. 최근 10~20대 젊은 층에서 결핵이 집단 발병했다는 소식이 나오는데, 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옮은 결핵균이 원인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학교나 군부대 등에서 확산된다. 보통 결핵 환자 1명이 10명 이상에게 균을 전파한다.

 

전쟁 중에 많이 퍼진다면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일본에도 결핵이 많아야 하지 않은가.


그것은 관리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전쟁을 치른 일본에도 과거 결핵 환자가 많았다. 그러나 결핵 환자는 무조건 입원하도록 돼 있다. 전염력이 사라질 때까지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격리하는 것이다. 또 일본은 자국 땅에서 전쟁한 것이 아니라서 의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했기 때문에 의료체계가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다.

 

현재 결핵 환자를 입원 치료할 수는 없는가.


강제로 결핵 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할 방법이 없다. 결핵 감염자는 자신이 환자인지 모르거나 알아도 낙인이 찍힐까 봐 직장 동료에게도 감염 사실을 숨긴다. 결핵 환자는 최소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만 내가 만난 결핵 환자 중에는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 현역 운전기사도 있었다. 생계에 매달리는 한국인에게 결핵 치료를 위해 입원하라는 것은 한가한 소리다.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고 당장 생계가 막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결핵 퇴치가 쉽지 않다.

 

 


결핵균을 가진 노인들의 인구가 감소하면 국내 결핵 발생이 줄어들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생존하는 기간이 길고 노령 인구도 늘어난다. 그만큼 결핵균이 퍼질 시간이 길다. 결핵이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대량으로 퍼질 불씨를 우리 사회가 품고 있다고 본다.


결핵균은 어떤 경로로 전파되나.

 

환자와의 접촉으로 전파된다. 즉 환자가 말·노래·기침을 할 때 침방울이 튀는데 그 안에 균이 섞여 나온다. 그 균은 한동안 공기 중에 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 쉽다.


자신이 결핵균에 감염됐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

 

감기 증세가 오래가면 결핵을 의심해야 한다. 감기는 보통 1~2주면 낫는데 기침이나 재채기가 2주 이상 지속되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그 밖의 증상으로는 뚜렷한 이유 없이 살이 빠지거나 밤에 잘 때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심해지면 객혈(喀血·피가 섞인 가래나 침)이나 호흡곤란이 생긴다.

왼쪽은 건강한 사람의 폐 엑스선 사진이고 오른쪽은 결핵 환자의 것이다. 폐의 흰색 부분(원으로 표기)이 결핵이다. ⓒ 서울대병원

 


증상이 다른 병과 구별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도 흔히 천식으로 오진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여성의 기관지에서 쌕쌕거리는 소리(천명)가 나서 천식 치료를 받다가 나중에 결핵으로 판명이 난 사례가 있다. 또 나이가 있는 남성은 결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폐암인 경우도 있었다.


병원에서 어떤 진단을 받아야 하나.

 

가슴 엑스선 사진을 찍으면 된다. 또 객담검사, 즉 가래에 특정 시약을 뿌려 세균이 있는지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도말검사와 균을 배양하는 배양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도말검사는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고 배양검사는 최장 2개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약 3년 전 결핵 신속 검사법(Xpert MTB/RIF)이 도입됐는데 2~3시간 만에 결핵 감염 여부는 물론, 내성균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검사법을 권장한다. 국내에도 보건소나 큰 병원에서 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결핵이 의심되면 일단 보건소를 찾는 게 이롭다는 말인가.

 

그렇다. 가까운 보건소에서 진단받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결핵으로 판명되면 치료도 보건소에서 받으면 된다. 단 내성이 있는 결핵균이라면 결핵 전문가가 있는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다.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나.

 

현재 나와 있는 결핵 치료제의 효과는 좋다. 그러나 복용 기간이 길어서 환자가 중도에 포기해버리는 게 문제다. 하루에 4가지 종류의 약 11~13개를 6개월 동안 먹어야 한다. 약을 먹고 10일 정도 지나면 증상이 좋아지니까 환자가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한다. 이런 경우 내성이 생겨 더 센 약으로 치료해야 한다. 내성균 치료는 18개월 이상 치료제를 먹어야 하고 게다가 첫 8개월 동안 주사도 맞아야 한다. 국내 결핵 환자의 절반은 내성균 보유자다. 약 복용이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WHO는 의료진이 보는 앞에서 환자가 약을 먹도록 규정해뒀다. 매일 병원을 방문해서 약을 먹으라는 것이다. 미국은 결핵 환자가 대부분 노숙자다. 병원에서 수프와 빵도 주니까 병원에 가서 결핵약을 먹는다. 아프리카에서는 병원이 멀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 결핵약을 먹는다. 그런데 우리는 생활이 바빠서 매일 병원을 방문해 치료제를 복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질병관리본부와 병원들이 결핵 전담 간호사를 두어 환자를 교육하고 전화 등으로 약 복용 여부를 점검한다.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는 전자 약통도 사용하고 스마트폰의 영상통화를 통해 환자의 약 먹는 모습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환자의 약 복용 여부를 100% 확신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약 복용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이에 관한 연구는 이뤄지고 있나.

 

결핵 치료제의 복용 기간을 현재 6개월에서 4개월 이하로, 내성균 치료제의 복용 기간도 최대 6개월 이하로 줄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2017년 중반께 결과를 내놓을 텐데 아무쪼록 기대한 결과가 나오면 세계 결핵 퇴치에 작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른 나라보다 국내에 환자가 많은 점은 결핵 연구에 도움이 된다.


결핵 완치율은 얼마나 되나.

 

결핵은 열심히 치료받으면 낫는 병이다. 큰 병원에서는 완치율이 90% 이상이다. 국내 평균적으로 4명 중 3명은 완치된다. 나머지 1명은 사망한다. 연간 국내에서 2000명 이상이 결핵으로 사망한다. 폐렴 사망자가 3000명 정도니까 적은 수치는 아니다. 메르스 사망 현황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 이 사망자들은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인데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결과다. 결핵 자체도 사망 원인이지만 균에 의해 망가진 폐에 2차 감염이 일어나거나 호흡곤란 등으로 사망에 이른다. 문제는 사망하기 전까지 5~10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균을 퍼뜨린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결핵에 대한 인식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생후 1개월 이내 BCG(결핵 예방백신) 접종 외에 뾰족한 예방책이 없는 병이므로 결핵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 이를 대한결핵협회가 해야 하는데 그동안 회장들이 결핵과 무관한 안과나 정형외과 의사였던 때문인지 결핵에 대한 계몽이 잘되지 않았다.


수술이 아닌 약으로 치료하는 질병인데 환자가 굳이 대학병원까지? 찾아갈 이유가 있는가.

 

몇 해 전 호주 시드니에서 개업한 한국인 의사가 고발당했다. 하루에 8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잣대를 대면 국내 의사 대부분은 범법자다. 하루 1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3시간 기다리고 3분 진료받는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으니 자신의 병력과 증상을 충분히 전달하고, 진단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히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작 의사의 말은 짧고 온갖 검사만 받으라고 한다. 자신의 병을 정확히 진단했는지, 치료법은 최선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환자는 병원을 옮겨 다닌다.

사실 의사도 힘들다. 최근 46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외래진료 전후의 집중력과 불안감을 측정해본 일이 있다. 온종일 평균 4.7분에 1명씩 모두 91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그런 의사 3명 중 1명은 진료를 마친 후 집중력이 저하되는 증상을 보였다. 또 절반 이상에서 외래진료 후 감정 상태가 악화했다.

이런 상태에서 의사가 환자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병에 대해 성의 있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환자나 의사나 모두 피해자인 셈이다. 의료의 질보다는 많은 환자를 보도록 하고, 진찰과 설명보다는 검사비가 얼마인지를 따지는 의료제도가 문제다. 미국 의사는 평균 16분에 1명의 환자를 진료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단 4.7분 만에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진찰하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처방하고, 거기에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환자와의 진료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가.

 

나는 몇 개월 전부터 매주 목요일에는 신규 환자 1명에 15분씩 진료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동네 병원에서 결핵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나 치료 기록을 가지고 온다. 그것들을 살펴보면 진단과 치료가 잘못된 경우는 거의 없다. 즉 병원을 옮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15분 동안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치료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면 대다수는 다시 그 병원으로 돌아간다. 환자는 의사의 충분한 설명과 따뜻한 공감이 필요했던 것이다. 진료 시간만 늘리면 환자는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사용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고, 불필요한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국가 보험 재정 낭비도 줄일 수 있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1990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1999년 내과학 석사를, 2004년 내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서울대 의학연구원 폐 연구소 연구원을 지냈고 2001년부터 1년 동안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원으로 있었다. 과학기술우수논문상(2006년), 화이자의학연구상(2007년), 유한의학상 우수상(2014년)을 받았다. 현재 국제결핵연구소 이사진으로 있으면서 세계 결핵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 

 

환자들 사이에서 ‘가운을 입지 않는 의사’로 유명하다. 의사의 가운은 환자에게 권위적이라는 게 임 교수의 생각이다. 약 1년 전부터 ‘초진환자 15분 진료’를 실천하며 환자와 병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임재준 교수가 내성 결핵균에 감염돼 입원한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58세인 남성 환자 김 아무개씨는 3개월째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제가 듣지 않는 ‘내성 결핵균’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내성 결핵균은 1차 결핵약에 내성이 생긴 균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치료약을 먹던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하면 결핵균은 약에 내성을 띤다. 내성균은 2차 결핵약으로 치료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18개월 이상으로 길어지는 데다 최초 8개월은 주사도 맞아야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처음엔 기침이 심해 폐렴을 걱정해 입원했다가 결핵을 발견했다. 김씨는 이불을 몇 겹이나 덮고 있었지만 춥다고 했다. 이 환자를 찾은 임재준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청진기를 가슴 부위에 대고 숨소리를 확인했다. 배변에 이상이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를 확인했다. 임 교수는 “내성균이라서 오래 치료받아야 하는데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 때문에 이미 증세가 상당히 호전됐다”며 “내성균 치료는 결핵 전문의가 있는 큰 병원에서 치료하는 게 환자에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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