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서두르다 ‘균형외교’ 실종
  • 홍현익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7:57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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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대북 제재 합의 후 우리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

2015년 한 해 내내 미국 행정부는 줄기차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권했다. 이에 중국 지도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려를 표명해왔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3 No’(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로 요약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G2(미·중)에 대한 실용적 균형외교 기조를 지켜왔다. 그런데 북한이 1월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의 안보와 국익이라는 기준만으로” 사드 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이 안보리 대북 제재 도출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하자, 정부는 즉시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논의 개시를 발표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2월24일(현지 시각) 국무부 청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P 연합

이후 정부는 사드의 효용성을 강조하고 중·러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고 가능한 한 빨리 배치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중·러는 한국 대사를 초치(招致)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특히 중국은 반발의 수위를 높여갔다. 중국은 관영 일간지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사드의 한국 배치 시 한반도는 미·중 간 군사 바둑판이 될 것이고, 만약 한·미 연합군이 38선을 넘는다면 중국군의 개입 가능성이 있다고 압박했다. 또한 중국군은 사드를 벗어나기 위해 동북 3성에 공격 미사일을 증강 배치할 수밖에 없고 유사시에는 중국 폭격기가 한 시간이면 사드를 파괴할 수 있다고까지 위협했다. 마침내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사드 배치가 한·중 관계를 일거에 파괴하면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폭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안보리 대북 제재와 사드를 포괄적으로 연계 논의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중국은 미국의 고강도 제재안을 상당히 수용하면서 안보리 제재를 하되 6자회담과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북한과 대화도 하고 사드 배치도 유예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사드를 논의할 한·미 공동실무단 구성을 위한 약정 체결을 연기했고 그간 사드 배치를 적극 주장해온 해리 해리스 미군 태평양사령관도 “사드 협의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 논란’으로 실리 챙긴 중·미


물론 중국이 고강도 대북 제재에 협력하게 됐으므로 한·미 공조가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이끌었다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향후 사드 배치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든 한·중 관계는 민낯을 드러냈다. 양국 간 불신은 커졌고 중국이 한·중 경협과 안보 면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그렇게 바라던 한·미·일 안보 협력을 달성하고 있고 한·중 관계를 갈등 관계로 전환시킨 데다 사드는 언제든 원하는 시기와 방식으로 배치할 가능성을 확보한 셈이다.

 

중국은 안보리 제재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협상력을 확보하고 결국은 약소국 북한을 ‘희생’시키는 대북 고강도 제재에 동의하는 대신 ‘평화와 안정’을 내세우면서 남중국해나 사드 배치 저지,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모색 등에서 실리를 챙겼다. 반면 한국은 향후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 급변사태의 원활한 수습, 평화통일 등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들에서 중국의 우호적인 협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박근혜 정부 초기 미·중 양측으로부터 구애를 받던 한국이 이제는 미국에 생존을 위한 핵우산 등 안보 협력을 간청하면서 미국을 대신해 중국과 갈등을 벌이는 난관에 봉착한 듯하다.

 

우리가 이렇게 난관에 봉착한 원인을 잘 파악해 좀 더 현명하게 외교정책 기조를 취했다면, 손실을 최소화하고 국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외교의 개선점을 살펴보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해본다.

 

 

정부, 외교 유연성과 융통성 보여야


첫째, 국제정치 구조상 우리 민족이 분단된 데다 상호 대립·갈등까지 벌이면 우리보다 국력이 강한 주변국들에 농단을 당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우리의 국익을 지키려면 우선적으로 남북 관계를 적절히 관리·통제해 최소한 대결 국면에 처하지는 말아야 한다.

둘째, 정부가 외교의 유연성과 융통성을 보여 이명박 정부가 취한 5·24 조치를 이미 해제했더라면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가 가할 다양한 제재 수단을 확보했을 것이다. 과도하게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새롭게 취할 제재나 보복 조치가 우리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주는 개성공단 중단이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이 되기 어렵고 외교적 부작용이 큰 사드 배치 같은 차차선책밖에 없는 점이 안타깝다.

 

셋째, 사드 배치에 중국이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간의 친구(한국)가 반중(反中) 동맹의 일원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를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하기보다는 중국의 우려를 일부 이해하지만 이는 과도한 걱정이며 우리의 의도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자는 것이지 결코 중국에 위해를 끼치려는 것은 아니라고 꾸준히 설득하는 것이 현명하다.

 

넷째, 사드를 배치하더라도 비용 부담 문제와 중국의 반발을 감안하면 서두르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데, 1년 이상 전략적 모호성을 잘 견지하다가 갑자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고 미국보다 우리가 더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니 미국이 감당해야 할 중국의 포화를 우리가 받고 있는 셈이다. 이제라도 서두르지 말아야 하고, 설사 배치하더라도 이를 조건부로 하면 중국의 반발을 완화시킬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편입을 반대하는 것이므로 사드 배치 기간을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가 완성되는 시점까지로 한정하면 중국의 반발을 줄일 수 있다. 사드 배치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상응해 탄력적으로 추진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중국이 오히려 북한의 WMD(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좀 더 적극적으로 억지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안이다.

 

다섯째, 한반도에서 중·러가 바라는 것은 평화와 안정, 경제 협력이므로 정부는 대북 제재를 가하면서도 진정성을 가지고 남북 대화와 6자회담, 평화협정 협상을 병행 추진해 이들과 동일한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두 강국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북 제재 국면이 경과하면 6자회담과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동시 추진을 검토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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