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현대중공업의 ‘갑질’
  • 울산=박성의 시사비즈 기자 (.)
  • 승인 2016.02.25 18:45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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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청업체 직원 2명 자살…도급계약서 ‘날림 처리’ 의혹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12월 사내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지하면서 하청업체들이 줄도산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경영이 어려워 일감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협력사와 적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반박해왔다. 하지만 취재 결과, 현대중공업 본사 직원이 문자메시지를 통해 기성(조선업체 하도급대금의 일종)을 작업 후에 받아갈 것을 강요하고, 공사도급 기본계약서에 적시된 조항들을 지키기 않은 것이 확인됐다. 또 지난해 해양사업 실적문서에 기재된 도급업체와 실제 작업을 한 도급업체가 다른 것으로 밝혀져, 사측이 도급 관련 계약을 ‘날림’ 처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로 불거졌다.

현대중공업이 사내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지하면서 하청업체들이 줄도산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실들이 확인되고 있다. ⓒ 현대중공업 제공


계약서상 업체와 실제 작업한 업체 다르기도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한 총무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달 후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사내 하청업체 대표 서 아무개씨(63)가 차 안에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의 기성 삭감에 따른 경영난 탓에 두 명이 연이어 사망한 것이다. 이에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를 운영하다 폐업한 대표 21명으로 구성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해 12월21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이 계약서조차 갖추지 않고 협력사들에 일을 시키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며 기성 단가 책정 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모든 계약은 법 테두리 안에서 절차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취재 결과, 도급계약서는 공정이 진행된 후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중공업 간부가 하청업체 대표에게 “돈은 작업 후에 받아가라”고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선(先)시공 후(後)계약’ 행태는 현대중공업에서 관행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대표 이 아무개씨는 “현대중공업은 작업에 관한 절차를 무시한 채, 일단 일부터 하면 돈을 주겠다는 식의 행태를 보였다”며 “인력을 채용하고 공기에 맞춰 일을 끝내면 정작 돌아오는 돈은 투입된 금액에 한참 못 미쳤다”고 토로했다.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와 맺은 공사도급계약서를 위반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본지가 입수한 현대중공업 공사도급 기본계약서에 기재된 제11조(임금 등의 직접 지불) 1항에 따르면, 갑(현대중공업)은 을(하청업체)에 대한 공사대금으로 을을 대신해 을의 종업원에 대한 채무를 직접 지불할 수 있게 돼 있다. 조건은 △을이 파산 및 부도 등을 맞은 경우 △을이 종업원 임금을 당해 지급기에 지불하지 않은 경우 △을이 제3자 체불 상태에 있는 경우 등이다.

하청업체가 기성 삭감으로 폐업 위기에 몰리자, 현대중공업은 계약서를 외면했다. 채무 변제는 의무가 아니며, 조건 상황을 모두 고려할 경우 본사가 경영난에 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하청업체 대표들은 대출과 사채까지 써가며 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현대중공업 해양도장부가 지난해 작성한 실적문서에서는 오기(誤記)가 발견됐다. 실제 공사를 진행한 하청업체와 기재된 업체 이름이 달랐다. 자신의 업체가 실적문서에서 누락된 것을 확인한 이 아무개 대표가 이에 대해 항의하자 담당자는 “왜 기재가 잘못됐는지 알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단순 오기라기에는 틀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다른 업체명도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특정 업체 평판을 고의적으로 올렸거나 문서를 날림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라며 “실적은 하청업체에 중요한 문제다. 담당자는 왜 그렇게 기재됐는지 모르겠다며 추후 수정 여부 등을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업체는 결국 지난해 폐업했다.

현대중공업 간부가 하청업체 대표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 박성의 제공


“하청업체 줄도산 현대重 발목 잡을 수도”

사내 하청업체 대표들은 현대중공업이 경영난을 방패 삼아 갑의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일방적으로 예산 제도를 변경한 게 줄도산의 도화선이 됐다는 주장이다. 상호 합의가 아닌, 원청업체 임의로 대금을 책정한 결과 ‘적자 도미노’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김종이 대책위 본부장은 “2013년 이후 공사대금을 업체당 월 출근 인원 대비로 산정하기 시작했다”며 “출근 인원이라는 게 허점투성이다. 하청에서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야근과 주말특근을 진행해야 하지만 원청업체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작업한 인력만 인건비를 계상해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2014년부터 현대중공업이 특수선을 무리하게 수주하는 과정에서 업체당 인건비 대비 40~50%도 안 되는 용역비를 지급했다. 그 결과, 2013년 9개에 그치던 연간 폐업사가 2014년 15개 업체, 2015년에는 57개 업체로 늘어났다. 3년 동안 81개 업체가 폐업하며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만 52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매출 46조231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2.1% 감소했다. 영업적자는 1조5401억원, 당기순적자는 1조3632억원이다. 전년보다 적자 규모는 줄었지만 해양 프로젝트가 손실을 내고 있고 저유가도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긴축 경영 등을 이유로 하청업체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내부 혁신이 아닌 외부 환경을 탓하는 자세로는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현대중공업은 적자 위기를 외부로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조 원 규모의 적자가 하청업체의 기성을 삭감하고 계약을 소홀히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며 “저유가와 플랜트 부문 위기는 내부 혁신과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단순히 하청업체 수를 줄이고 그로 인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경영진의 안일한 대응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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