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콘텐츠로 소비자 ‘취향저격’
  • 장지연 인턴기자 (.)
  • 승인 2016.02.18 17:12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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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꿈꾸는 플리마켓의 청년 셀러들, 한 평 쇼룸에서 꿈을 브랜딩하다

최악의 취업난에 내몰리고 있는 청년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 도전하는 장소가 있다. 닷새간의 설 연휴 첫날인 2월6일을 시작으로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플리마켓(Flea Market)’이 열렸다. 찬바람 속에서도 플리마켓 진열대에 놓인 창작품들은 저마다 따뜻한 감성을 품고 있었다. 홍대입구·이태원·삼청동 등 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는 거리에는 주말마다 그 지역의 색깔이 녹아든 플리마켓이 열린다. 플리마켓은 본래 벼룩시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정기적인 행사로 안착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승화된 예술 시장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젊은 층에게 플리마켓은 중고 물품보다는 창작품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문화공간이자 소통의 장이다.

홍대입구의 한 플리마켓에서 만난 구보배씨(26·여)는 패션업계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거리로 나왔다. 구씨는 “원했던 직종이지만 1년 동안 허드렛일만 하면서 언제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그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자본금이 없어서 1년여 동안 플리마켓을 전전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 이 일이 좋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2월6일 서울 삼청동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 한 소비자가 핸드메이드 작품을 구경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플리마켓의 한 셀러가 현장에서 직접 그린그림을 판매하고 있다. 홍대 편집숍 ‘오브젝트’에 반려견 인식표를 포함한 ‘달밤피크닉’의 소품들이 진열돼 있다. ⓒ 달밤피크닉 제공


투자금 없이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

<대한민국 자영업 트렌드 2016>의 저자인 허건 행복한가게연구소 대표는 생계형 청년 창업자가 늘어나는 원인을 무엇보다도 취업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청년들이 플리마켓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 자체가 사업이다 보니 사람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시설과 콘텐츠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자본을 많이 투자해서 시설을 갖추기에는 위험 요소가 많다. 결국은 콘텐츠다. 최근에는 경험적 소비가 중요한데 그 대표적인 것이 플리마켓”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창업을 꿈꾸고 있는 청년들에게 플리마켓은 경험과 판로를 넓혀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어엿하게 대형 편집숍에 입점하게 된 디자인 소품 브랜드 ‘달밤피크닉’도 같은 꿈을 꾸던 세 자매가 플리마켓 경험을 기반으로 이뤄낸 결실이다. 이들 세 자매는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출발했다.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는 첫째 이가람씨(32)는 육아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휴직할 수밖에 없었고, 둘째 가은씨(30)는 다니던 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 가은씨는 “재취업을 생각했으나, 한순간에 간단히 직장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고 나니 회사에 소속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전공과 취업난 속에서 고민하던 막내 가란씨(26)는 “이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일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투자금 없이 시작한 그들에게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플리마켓밖에 없었다. 가람씨는 “2014년 12월부터 주말마다 플리마켓에 나갔다. 처음에는 주력 상품도 없이 핸드메이드 제품을 전부 가지고 갔다. 팔찌, 티코스터, 쿠션에 향초까지. 사람들이 뭘 파는 곳이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들은 “플리마켓을 통해 동종 업계 사람들과 고객들을 만나면서 아이템의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었다. 플리마켓 참가비로 1만~3만원 정도를 내고, 달랑 1000원짜리 소품 하나만 팔고 오기도 했지만, 그 경험이 아이템을 걸러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플리마켓을 전전했던 시간들이 그들이 만든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플리마켓 나갔다 오면 SNS에 바로 반응 떠”

직접 플리마켓을 주최하고 자신이 만든 가죽공예품으로 플리마켓 셀러로도 참가하고 있는 디퍼런트 마켓의 박기동씨(30)는 “공예작가들의 작은 브랜드는 시장 전체를 상대할 수 없다. 플리마켓에서 만나는 소비자들에게 철저히 홍보를 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단순히 판매가 아니라 다양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하고, 셀러들은 장사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영자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매출 면에서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브랜드의 가치로서 실패하면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고 플리마켓을 통한 브랜딩을 강조했다.

박씨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 만학도다. 광고 기획을 전공한 그는 플리마켓 전문 브랜딩업체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는 “SNS가 10%, 오프라인이 90%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을 통해 감동을 받아야 팔로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용자의 경험과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 또한 자신이 만든 가죽공예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가죽공예 체험을 제공하며 브랜딩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색다른 것을 연구하지 않는 작가가 많다. 공예에는 예술성이 들어가야 하고, 사람이 저마다 의미를 가지고 있듯 개성을 녹여야 진짜 공예가 된다”고 핸드메이드 제품에 대한 소신을 내비쳤다.

‘달밤피크닉’ 역시 핸드메이드를 기반으로 한다. ‘달밤피크닉’을 알린 대표 상품은 ‘반려견 인식표’다. 키우고 있는 반려견의 모습이 그려진 펜던트와 함께 각인판에 반려견의 이름이 새겨지자 이는 단순한 제품이 아닌 특별한 의미를 담게 됐다. 자랑할 만한 가치가 된 인식표는 인스타그램의 주제별 분류 기호인 해시태그를 달고 더 많은 고객층을 사로잡았다. 가란씨는 “플리마켓에 나갔다 오면 인스타그램에 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SNS를 하는 사람들이 애견 커뮤니티에 가입한 경우가 많다. 강아지도 품종별로 커뮤니티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홍보가 됐다”면서 “제품을 못 팔더라도 인스타그램 주소가 찍힌 명함은 소진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플리마켓에 계속 참여했다”고 말했다.

플리마켓이 활성화되면서 비슷비슷한 품목들이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고유한 아이템으로 브랜드의 차별성을 갖고자 했던 그들의 고민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최근 핵심 키워드가 된 ‘취향 공동체’를 통해 홍보 효과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을 통해 자주 노출되다 보니 디자인 도용으로 인해 한동안은 매출이 감소하는 타격도 뒤따랐다. 일종의 유명세를 치른 셈이다. ‘달밤피크닉’은 세 자매가 주로 새벽에 작업을 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작업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또 하나의 창업 현장인 플리마켓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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