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眞朴’ 소동
  •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6.02.04 14:39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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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진박(眞朴·진실한 친박)’이 있어서 시민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어느 날은 스스로 ‘진박’이라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이들은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텔레토비처럼 줄을 서서 사진도 찍었다. 뜬금없는 이들의 행동 때문에 대구 총선거 판은 일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 사태는 예견되었던 일이다. 얼마 전, 대구 출신 국회의원 한 사람이 ‘진박 감별사’를 자처해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한 적도 있었다. ‘진박’ 현상은 이번 총선거에서 최고의 트렌드가 될 수도 있다.

‘진박’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 있을지는 모르겠다.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나왔던 ‘친박연대’의 데자뷰인 것도 같은데, 곰곰이 따져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당시의 ‘친박연대’는 이른바 공천 학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사람들이 박근혜 전 대표의 후광을 이용한 것이었다. 박 전 대표는 이들에게 ‘살아서 돌아오세요’라는 메시지로 화답했다. 박 전 대표와 ‘친박연대’가 놓여 있던 상황은 대단히 어려웠으며 그들의 처지는 연민의 대상이었다. 그 측은지심이 ‘친박연대’에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진박’은 다르다. ‘친박연대’와 달리 지금의 ‘진박’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호가호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친이(명박)계’에 내몰리던 박 전 대표는 이제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의 ‘진박’은 대통령의 무시무시한 힘을 등에 업고 위력시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들의 행동은 결코 겸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선지 대구 시민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지역과 나라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지, 기껏 대통령과 친분을 드러내며 유권자들을 현혹하려는 것인가. 그렇게 곁불이나 쬐려는 사람들은 빤하다는 의견이 많다. 저런 식으로 선거가 진행되면 손해는 시민들이 뒤집어쓰게 된다. 비전과 정책 경쟁이 아니라 박 대통령과의 친분 경쟁을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소동의 적잖은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제18대 총선의 ‘친박연대’가 당시 주류이던 친이계가 만들어낸 것이었다면, 이번 총선의 ‘진박’ 소동은 사실 박 대통령 자신이 만들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충성심을 기준으로 ‘배신자 vs 진실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에 대해 한 번 더 정의함으로써 그것을 튼튼하게 다졌다. 박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할 때 지역 출신 국회의원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그 결의를 널리 알린 바도 있다.

대통령이 후반기 권력 기반을 든든하게 하고, 정책 수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국회로 보낼 수는 있다고 본다. 그렇더라도 바람직한 것은, 그 사람들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 나라를 위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자신을 홍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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