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음식인류학] ‘먹어줘야 할’타이밍에 명절이 있다
  • 이진아 | 환경·생명 저술가 (.)
  • 승인 2016.02.04 14:38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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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음식은 고칼로리 축적의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

‘홀리데이 웨이트(holiday weight)’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부활절·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등 명절 기간 동안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는 바람에 늘어난 체중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권 명절이라면 칼로리가 높고 양이 풍부한 음식을 준비하고 그걸 많이 먹도록 권장하는 분위기, 또 그럴 만큼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는 연휴를 뜻한다. 그래서 이 기간 중에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체중이 증가하게 된다.

 

명절 음식들은 왜 그렇게 칼로리가 높아서 연휴가 끝나면 살이 찌도록 만드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원래 명절 음식은 살을 찌우도록 고안돼 지켜온 음식이라서다. 그래서 살이 찌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명절 음식을 생각해보자. 떡·엿·술 등 탄수화물을 고농도로 농축한 음식이 있다. 고기류와 생선류, 채소들에 밀가루와 달걀을 씌워 넉넉히 기름을 두르고 지져낸 전이 생각난다. 그 밖에도 고기와 해물을 통째로 한 찜 종류가 떠오른다. 이런 식단에 채소는 약간의 나물과 김치로 들러리를 설 뿐이다. 식단 자체가 고칼로리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연합뉴스

서양에서도 명절 기간 중에는 평소 잘 먹지 않는, 아주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는다. 부활절에는 삶은 달걀을 응용한 요리를,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와 삶아 으깬 고구마 혹은 호박 파이를 먹는다. 크리스마스에 먹는 구운 칠면조나 통닭,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은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해진 메뉴다.

 

사실 크림과 초콜릿, 기타 식용 소품으로 장식된 화려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근대 시장경제의 산물이다. 그 이전 서구의 전통사회에서는 흑설탕 과일 푸딩을 먹었다. 이 푸딩은 지금의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부터 신년까지 이어지는 명절 기간 중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밀가루에 말린 과일과 흑설탕, 향료 등을 듬뿍 넣어 쪄내는 크리스마스 푸딩은 보기만 해도 살이 찔 것만 같은 모양을 띠고 있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일하고 먹고 쉬던 전통사회에서는 먹을 것을 장만하는 계절과 그렇게 장만된 음식을 저장해 소비하는 계절을 뚜렷하게 구분했다. 봄과 여름에는 나름으로 먹을 것을 필요한 만큼 섭취하기가 쉽지만 만물이 휴식하는 계절인 겨울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 수확기에 한 번 양껏 먹어줘 살을 찌워 몸에 영양가 저장량을 늘리고, 본격적으로 추운 겨울에 돌입하기 전에 또 한 번 고칼로리 음식을 실컷 섭취해 몸에 두둑이 축적해뒀다. 봄이 오기 직전인 그때 이용할 수 있는 식량으로 한 번 더 실컷 먹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먹어줘야 할 타이밍에 주요 명절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과 달리 전통사회에서 음식이란 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먹어야 한다는 절제의 미덕을 중시했기 때문에 고칼로리 음식을 실컷 먹는 것은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명절을 두어 특별히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모두가 일상에서 해방된 채 기쁜 마음으로 실컷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체중이 조금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사실 이때 살이 찌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생산과 저장 기술이 좋아진 덕에 사계절 구분 없이 식품이 공급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제철에 자연스러운 조건 속에서 생산된 먹거리가 사람에게도 가장 건강한 먹거리다. 계절을 거슬러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생산된 먹거리는 값이 비쌀 뿐 아니라 식료가 되는 동식물의 체내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만들어져서 그것을 섭취했을 때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제철 음식이 풍부하게 나는 가을, 그리고 그런 제철 음식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잘 저장했다가 만들어 먹는 겨울 명절에 많이 먹어 체내에 영양을 저장하는 편이 자연의 흐름에 맞는 건강한 음식 섭취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겨울잠을 자야 하는 곰도 아니고, 먹거리를 언제든지 풍부히 접할 수 있기에 현대인이 굳이 겨울을 나기 위해 영양분을 축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살이 찐다는 것은 거의 ‘루저(loser)’ 반열에 들어서는 것과 동일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신경 쓰여서다. 아무리 명절이고 겨울을 나는 데 생리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한들 비만이 반가울 리 없는 게 요즘 사람들의 마음일 터다. 오히려 명절에 금식이나 절식을 택하거나, 혹은 운동을 해 더 날씬한 몸매 갖기를 목표로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명절과 명절 음식의 의미는 시대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달라져간다.


 

이젠 명절에도 일상 음식을 먹어야

 

그런 분들을 위한 몇 가지 팁이 있다. 우선 명절에도 명절 음식이 아니라 일상 음식을 먹으면 된다. 우리 식단의 기본인 김치와 된장찌개는 비만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런 저장 식품에 들어가는 천일염에는 항(抗)비만 유산균이 있어서 비만을 억제하는 단백질인 오르티닌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고려대학교 연구팀이 확인했다.

 

명절 음식 중에서도 나물 종류는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 그리고 섬유질을 공급해준다. 체내에 쌓일 수 있는 독소를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비만 방지에 효과가 좋다. 또 명절 음식에 많이 쓰이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처럼 전통적으로 쓰여왔던 압착유는 체내의 불필요한 지방분이나 알코올을 분해해준다. 명절 음식 섭취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제일 기본이 돼야 할 것은 역시 정신 자세다. 요즘의 명절은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이 먹어두는 것보다 고단했던 한 해를 정리하고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으로 의미가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야 추운 겨울이 지나고 태양빛이 다시 풍부해질 때, 왕성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일에 임할 수 있을 테니까. 음식과 같은 신체적 충족보다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정신적 충족의 시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비만은 더 이상 명절의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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