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임차인 외면하는 지자체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2.04 11:35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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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실건축비 아닌 표준건축비로 분양가 책정하는 관행에 방관 모드
오는 11월29일 분양 전환을 앞두고 분양가를 둘러싼 입주민과 업체 간 마찰이 일고 있는 경북 구미시 구평동의 부영임대2단지 아파트에 입주민들이 항의 차원에서 빨간 깃발과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연합뉴스

애초에 부영의 자산 부풀리기가 가능했던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 사업자는 해당 사업을 위해 택지를 구입할 때 한 번, 공공임대주택을 분양 전환할 때 또 한 번 지자체에 가격 요건을 올려 승인을 받는다. 지자체가  건설사의 분양 전환 가격 과다 책정으로 인한 부당이득 취득 과정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건설업체는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할 때 사업계획을 세운 후 건설 부지를 매입하게 된다. 이때 관할 지자체에 택지 취득에 대한 신고를 하면서 매입가격을 제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를 해당 택지의 실제 구매비용으로 본다.

택지에 건물을 짓고 임대하기 전 건축물에 대한 취득신고를 다시 하게 된다. 이때 해당 주소지에 지은 주택 규모와 건설 원가를 함께 신고한다. 택지 구매비용과 이 건축비용을 산술적으로 합하면 대략적인 건축 원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업계에서 실건축비를 산정할 때 이 방법을 쓴다. 임대주택법상 공공임대주택의 분양 전환 가격은 임대 의무 기간이 5년인 경우 건설 원가와 감정평가 금액을 산술한 가액(價額)으로 하고 있다.

부영의 경우 임대료와 보증금을 산정하면서 이 같은 실건축비가 아닌 표준건축비로 그 기준 금액을 설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부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공공임대아파트의 분양 전환 가격의 건축비에서는 표준건축비를 상한으로 하고 있다. 실제 건축비는 표준건축비 대비 85% 안팎으로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부영그룹 임대아파트의 경우 실건축비가 표준건축비의 62%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부실공사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택지 및 건축물 등기 단계에서 신고된 가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역할을 지자체가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건설업체의 택지 매입비 및 건설 원가 부풀리기 의혹이 불거져 나왔음에도 대다수 지자체는 방관자 모드를 취했다. 한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은 “많은 지자체가 임대인과 임차인 당사자들끼리 민사소송을 통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2015년 8월 국회 본회의에서 ‘뉴스테이법’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같은 해 12월29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경남도 개선책 시행, 진정성에는 의문

이 가운데 유일하게 경상남도만 임차인들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였다. 2013년 8월21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부당한 분양 전환 가격 산정으로 발생하는 임차인들의 피해를 해소하기 위해 ‘부당이득금 반환 지원 및 근본적인 개선 대책’을 내세우며 “세금과 마찬가지인 국민주택기금이 투입된 공공임대아파트의 분양 전환이 당초 정책 목표와는 다르게 일부 민간 건설사들이 부당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되고 있는데도 소극적인 행정의 결과로 이를 방치하는 사태가 계속되는 것은 시급히 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경남도는 이후 분양 전환에 따른 공공임대아파트 분양가를 표준건축비가 아닌 실건축비를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해 건설업체의 부당 이윤 취득 기회를 차단하는 개선책을 시행했다. 행정자치부(당시 안전행정부)는 이를 벤치마킹해 각 시·도에 이 같은 개선책을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경남도의 사례는 2014년 정부 우수 사례 홍보 콘텐츠 경진대회에서 안행부장관상을 받았다.

하지만 경남도의 분양가 개선책 시행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임대아파트전국회의 부영연대 이영철 대표는 “홍준표 지사의 개선책에는 새롭거나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2013년 8월21일 홍준표 지사가 개선책을 내놓은 이후 경남도는 분양 전환을 신청한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표준건축비로 올린 업체에 대해 실건축비로 조정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경남도 건축과 관계자는 “2013년 개선책 시행 이전에 분양 전환이 이뤄져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도가 나설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여전히 공공임대주택의 표준건축비를 분양 전환 가격으로 승인해주고 있어 불씨를 남기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29일 임대주택법 개정안(뉴스테이법) 시행으로 민간 임대주택의 분양가 자율화가 이뤄지면서, 신규 임대주택 물량에 대한 지자체의 승인 제한 자체가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부영공공임대아파트 주민집단소송 진행 중인 이영철 김해시의원 인터뷰

“홍준표 지사가 나서서 우리 임차인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게 있느냐고요? 전혀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실린 감정은 실망보다 분노에 가깝게 들렸다. 이영철 경남 김해시의원(무소속)과의 전화통화였다. 그는 임대아파트전국회의 부영연대 김해시 대표로 2012년 7월부터 4년간 부영을 상대로 건설원가 부당차익금 반환 주민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경상남도는 2013년 8월21일 부당한 분양 전환 가격 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임차인들의 피해를 해소하기 위해 ‘부당이득금 반환 지원 및 근본적인 개선 대책’을 수립ㆍ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던 사안이다.

“임차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해먹었다.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도에서는 중앙정부에 건의해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바뀐 것은 없다. 또 건축비 원가를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도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니까 내용적으로 다 맞지도 않았다. 주민소송 과정에서 법원을 통해 확인한 원가 자료하고 차이가 많이 났다. 홍 지사가 과연 임차인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건지, 소송에서 임대사업자에게 유리하게 해주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대법원 건설 원가 판결 따라 달라”

이 의원은 “예상보다 길어진 소송으로 인해 주민들이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미묘하게 바뀐 재판부 분위기다.

“부영 측에서는 재판 초기부터 일관되게 ‘실제 건축비가 표준건축비보다 더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관하고 있는 건축 원가 장부를 법원에 제출하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그러다 부영 측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판부에 ‘최초 건축 당시 건축비가 얼마 들었을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건축한 지 10년도 더 지났는데 당시에 얼마가 들었는지 감정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감정평가사들이 감정을 한다고 해도 그건 추산일 뿐이다. 재판부 역시 이 같은 부영 측 요청을 거부해오다가 갑자기 지난해 말부터 태도가 바뀌며 감정평가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부영 임대아파트에 대해 감정평가가 이뤄지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미 결과가 나왔다. 임차인들이 예상했던 대로 감정가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

민간의 전문 감정평가사들이 실시한 감정평가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건축 당시 표준건축비에 준하거나 일부 상회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결과를 두고 각급 지역 재판부의 평가는 갈렸다. 지난해 9월3일 창원지법 1심에서는 건설 원가 감정비용을 인용한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아파트의 세대별 감정평가 금액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고 분양 전환 당시의 건축비는 분양 전환 당시의 표준건축비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주민들은 반발했다. 반면 지난해 11월26일 의정부지법은 감정평가로 나온 금액을 추산 금액으로 치부하고 법원에서 인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1년 4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분양 전환 가격 산정의 기초가 되는 건축비는 표준건축비가 아니라 표준건축비의 범위 내에서 실제로 투입된 건축비를 의미한다”고 선고했다. 건축비의 상한을 의미하는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산정한 건축비와 실제 투입된 건축비의 차액만큼 분양 전환 가격이 과다 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다.

“가뭄의 단비 같은 판결이었다. 임차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2011년 건설 원가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만 따라달라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적·금전적으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하루속히 끝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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