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분들과 인터뷰하며 시나리오를 수없이 고쳤다”
  • 인터뷰어 서영수 감독·정리 김회권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2.02 17:45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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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생각>으로 돌아온 ‘착한 영화’ 만드는 이한 감독

‘그 사람들에게 설계도를 제시해나갈 방향을 이끌고 지시를 주는 사람.’ 수많은 사람과 협업하고 지휘해야 하니 기가 ‘센’ 영화감독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한 감독과 몇 마디 나눠보면 그런 선입견은 금세 바뀐다. 이 사람 참 순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 감독의 대표작은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투영한다. 530만 명을 넘기며 충무로에서 유아인을 주목하게 만든 <완득이>는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밝고 경쾌하게 풀어냈다. 데뷔작 <연애소설>은 차태현과 이은주, 손예진의 삼각관계를 그리며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추억 속에 그려냈다. 순한 사람이 그려낼 법한 영화다. 기본적으로 밝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끌어낸다.

그래서 이한 감독의 영화에는 ‘착한 영화’라는 명찰이 붙는다. 이번에도 그런 영화를 하나 내놨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만들었던 어린이합창단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오빠 생각>이다. 여기에는 젊은 배우의 선두 격인 임시완과 고아성을 캐스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했다”며 “떨린다”고 말문을 연 이 감독을 앞에 두고 최신 개봉작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빠 생각>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일단 초고를 받았다. 한국전 당시 실존했던 어린이합창단을 모티브로 한 영화였는데, 초고(草稿)를 읽으면서 그 시절에 그 전쟁 때문에 많은 아픔을 가졌던 아이들에 대해서 가여움을 느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되게 궁금했다. 초고를 받고 나서 어린이 합창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사람들을 막 움직이더라. 이유는 모르겠다. 목소리가 순수해서? 꾸밈없어서? 애들이 가지고 있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의 것들이 나를 막 건드리더라. 그래서 이건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들 캐스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쉽지는 않았지만 결정이 어렵진 않았다. 아역을 폭넓게 많이 봤는데 결정을 내릴 때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 애, 이 애 하며 명확하게 했던 것 같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정말 좋을 것 같다. 음악감독과 상의하면서 음악을 고를 때 <사운드 오브 뮤직>의 어떤 곡 같았으면 좋겠다며 고른 것도 있다. 흥미로운 건 과거 우리 노래 중에 조금 다르긴 하지만 실제로 있더라. 1920~30년대에 좋은 음악이 많아 깜짝 놀랐다.

한국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그 당시 상황을 다룬다. 스스로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직접 전쟁을 겪진 않았으니까 과거의 이야기로만,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하며 가장 많이 사전 인터뷰를 했다. 그 시절에 고아원에서 보모를 했던 분들, 고아 분들, 전투를 하셨던 분들. 그 과정에서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발발 원인부터 시작해서 그 시대를 겪었던 것들이 해소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다. 인터뷰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많이 고쳤다.

분단국가에 사는 영화감독이다. 영화적 소재로서의 분단 현실은 아픈 이야기지만, 사실 굉장히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에는 분단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건드렸나.

어떤 정치적인 상황이나 좌우 이념적인 것을 일부러 배제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인물들이 아픔을 겪은 건 결국 좌우 대립 때문에 생긴 전쟁일 수밖에 없다. 인물들이 겪는 아픔 속에서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 같다. 이미 전쟁은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굳이 그걸 해석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너무 정치색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전쟁 상황에서 어린이합창단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 현실에서 과연 그렇게 노래를 틀 정도로 여유가 있었을까 싶다.

그때 당시 합창단이나 악기를 가르치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 즐겁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슬픔을 잊어버릴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심리적 목적으로 노래가 굉장히 퍼졌다. 여유가 있어서 부르는 게 아니라 그 아픔을 노래를 통해 뱉어냈다. 비극을 통해서 자신의 슬픔을 정화시킨다는 점에서 노래에는 분명히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연극영화과 가는 걸 아버지가 허락하셨다고, 어머니가 가출하셨다. 하하. 어머니는 실제로 내가 영화 하고 있는 동안 내 자취방에 한 번도 안 오셨다. 그만큼 싫어하셨다. 졸업하고 처음에는 광고회사를 다녔다. 광고회사를 핑계로 집을 나와서 영화를 했다.

영화 전공학과를 두고 있는 몇몇 대학이 있는데, 한양대만의 학풍이란 게 있나.

내가 다닐 때는 명확한 학풍이 있었다. ‘무조건 찍는다!’ 아마 그렇게 치열하게 찍는 학교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수업을 안 들어가고 무조건 찍었다. 수업을 안 들어가고 작품을 찍으면 칭찬받을 일이었다. 매일 과내에서 몇 편의 영화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가면 엑스트라로 시체가 돼 있다가, 다른 데서는 스태프를 했다가. 단편영화니까 좀 못찍어도 되고. 그래서 현장 두려움이 좀 덜했다. 많이 찍어본 거고, 많이 해봤으니까. 영화는 찍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스크린에 비췄을 때랑 찍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다르다.

배창호 감독 아래서 연출부로 일했다. 데뷔했을 때 지원사격은 있었나.

지원사격이라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80%는 배 감독께 배웠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쓰는 법부터 감독으로서의 자세나 주제 등. 내게는 은인이다.

1990년대 같으면 영화계에서 도제 시스템이 거의 무너졌을 때다.

거의 마지막 연출부였다. 약 6년 정도 배 감독 밑에 있었다. 그 아래서 두 작품밖에 못 했다. 하다가 안 되고 하다가 안 되고 한 영화가 많았으니까.

예전 도제 시스템 아래서 큰 감독들 중에서는 유능한 조감독이 데뷔를 하려고 하면 잡아두기 위해서 거꾸로 방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애소설>을 데뷔작으로 해야겠다고 결정한 이유도 되짚어보면 배 감독의 조언이 있었다. 처음에 코미디 시나리오를 써서 결과들이 좋았다. 공모에도 입상하고 어디서 영화로 만들자고도 하고. 그런데 배 감독이 ‘데뷔작이 굉장히 중요한데 제일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해. 안 그러면 한편 하고 끝날 수 있어’라고 얘기해주시더라. 내가 존경하는 분이었으니 저 말씀이맞는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진짜 코미디로 데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완득이>에서 유아인을 발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재적소에 잘 썼다. 선구안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신(scene)에 배우를 대입해본다. 왜냐하면 위험요소를 줄여야하니까. 100% 적합한 사람을 찾긴 쉽진 않지만 가장 위험요소가 적은 사람을 캐스팅하는 것이다.

에서 유아인(위)을 선택한 이한 감독은 에서는 임시완(아래)을 캐스팅했다. © 유비유필름ㆍNEW 제공

<완득이>에 출연했던 유아인과 김윤석, 이자스민이 지금은 모두 떴다.

특별한 감흥은 없다. 잘됐다는 생각은 든다. 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시기가 그 사람과 맞느냐가 문제다. 유아인은 영화 할 때부터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안 된다 하더라도 연기를 잘하는데 더 바랄 게 없었다. 그 나이에 유아인 같은 연기를 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다. 굉장한 가치가 있었다.

유아인은 지금 가장 잘나가는 배우다. 그때는 어떤 가능성을 봤나.

배우 유아인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적절히 조화돼 있었다. 남성성이라 하면 카리스마, 여성성이라고 하면 감수성인데, 이런 게 굉장히 조화로운 배우라고 생각했다.

간혹 감독들 중에는 백지 상태인 연기자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안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연기가 하루아침에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깊은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깊은 아픔을 끌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노력을 통해 비슷하게 갈 순 있겠지만, 그런 걸 느껴본 사람이 그런 연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연히 그런 성향을 발견했다면? 그렇게 만들 순 있겠지만 너무 위험하다. 하하.

합창단장 역에 임시완을 캐스팅했다.

<미생>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이 사람의 눈빛이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열심히 한다고 느꼈다. 저런 눈빛은 연기로 나오는 게 아니란 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저 눈빛이 영화 속 주인공인 한상열 소위와 굉장히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캐스팅하게 됐다.

연기자를 캐스팅하는 게 자신의 연출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나.

난 장르 영화가 아니라 주로 드라마를 하기 때문에 배우가 가장 중요하다. 숫자로 따지기 어렵지만, 적어도 60~70%가 아닐까 싶다. 배우 선택을 잘못하면 굉장히 어렵다.

자기만의 캐스팅 기준은 무엇인가.

무조건 신에 대입해본다. 캐스팅하기 전에는 그 사람이 했던 연기 장면을 모두 보면서 이런 연기는 가능하겠구나, 이런 건 잘 안 될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잘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대입해본다.

김려령 작가의 책 중 두 작품(<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을 같이 했다.

김 작가는 어느 쪽에 쏠려 있지 않고 사람을 바라볼 때 애정 어리게 바라보는 것이 글에서 느껴진다. 자기보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 자기보다 벌이가 시원찮은 사람들을 볼 때 보이지 않는 어떤 시선들이 있다. 그런데 김 작가는 애정으로 바라본다. 악인을 바라볼 때조차도 그렇다. 그건 어쩌면 내가 영화를 할 때 사람을 표현하고 싶은 방식이기도 하다. 한 작가의 작품을 두번이나 영화화하는 게 쉽진 않은데 얘기를 나눠보면 둘이 너무 잘 통한다. 과하게 얘기하면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 같다.

© 시사저널 임준선

예전 영화 현장의 스태프들은 지금보다 학력이나 나이, 성장 환경의 편차가 굉장히 심했다. 초등학교도 안 나온 스태프부터 해외 유학파까지 한 현장에 뒤섞여 있다 보니 그걸 교통정리하기도 바빴다.

과거에 비하면 요즘은 정말 좋다. 내가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현장에 나가고 싶지 않을 때는 있어도 현장의 누군가가 문제라서, 혹은 현장의 무엇 때문에 나가기 싫은 적은 없다. 그리고 감독들이 자기 연출을 펼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왜냐하면 감독은 디렉션(방향성)만 주면 된다.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면 옛날에는 구현이 잘 안 됐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소품을 가져오곤 했다. 지금은 스태프들이 굉장히 전문화됐다. 미술이면 미술, 소품이면 소품, 촬영이면 촬영. 그러다 보니 구현이 안되는 게 별로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과거에는 어떤 화면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지만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지금은 딱 가보면 “고마워!” 이렇게 하면 된다.

그래도 현장에서 조금 더 좋아졌으면 싶은 것이 있을 것 같다.

걸림돌 중 하나가 프리프로덕션이라고 생각한다. 프리프로덕션이 얼마나 잘돼 있느냐에 따라서 영화 완성도가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이 기간이 짧다. 이유는 투자 시스템이다. 예를 들면 어떤 시나리오가 좋아서 투자사에서 하겠다고 했는데 캐스팅이 될 때까지는 돈을 안 준다. 프리프로덕션 비용이 없으니 제대로 할 수 없다. 정말로 같이 리스크를 부담한다면 여기서부터 해야 되는데 리스크를 처음에 잘 안 지려고 한다. 캐스팅되면 한달 후에 개봉일을 정하고 맞춰서 시작하자고 한다. 이러면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짧아진다. 프리프로덕션은 설계도를 탄탄히 하는 작업이다. 장소도 준비해야 하고 미술이나 소품 등 모든 부분을 준비하는 건데, 요즘은 지불이 안 되면 일을 안 한다.

첫 작품 <연애소설>을 했을 때 배우 손예진·이은주와 함께 했다. 당시 이은주는 어땠나.

개인적으로 가장 친한 여배우였는데 안타깝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좋아했다. 눈치는 조금 챘다. 이 사람이 정신적으로 힘들구나. 베이징 영화제를 같이 갔는데 예전이랑 너무 다르더라. 밥을 잘 못 먹더라. 밥을 아예 입에도 못 대더라. 평소에는 엄청 밝았다. ‘그렇게 밝고 맑은 사람이 어떻게 못본 지 1년 사이에 갑자기 저렇게 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우울감이 다 보이더라. 당시 매니저한테 물어봐도, 요즘 잠도 잘 못 자고 저희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문자만 서로 주고받고 그랬다. 평소엔 은주씨가 항상 먼저 만나자고 했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잘 못한다. 남자감독이 여자배우한테 만나자고 하는 게 좀 그래서 잘 안 하는데, 은주씨는 먼저 연락해서 “감독님 밥 사주세요” 그랬다. 같이 부대찌개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랬는데, 그때 이후로는 문자만 보내고 만나자는 얘길 안 했다. 내가 먼저 찾아갔어야 하는데.

부산영화제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요즘 즐길 만한 영화제가 없다.

부산영화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영화인들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산을 가득 채운다. 축제다. 다른 곳은 마켓이 중심이 되든가, 도시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부산영화제는 지향할 바가 굉장히 많다. 일반인들이 만드는 영화제니까.

만약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데, 상영하기로 한 영화를 갑자기 상영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부산영화제만의 색깔이 있다. 만약 누가 틀지 말라고 해서 안 하게 되면, 그건 자유로운 영화제가 아니다.

52회를 맞는 대종상 영화제도 마음이 아픈 부분이 있었다.

일단 색깔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 영화제도 대종상처럼 논란이 많다. 노인네들만 좋아하는 영화들만 타는 거 아니냐고. 근데 색깔은 명확하다. 정확한 색깔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카데미 영화상을 받기 위해서 거기에 맞춰 영화를 찍는다. 칸도 마찬가지다. 실험성·예술성 위주로 간다. 칸에 가기 위해 거기에 맞춰서 영화를 찍는다. 어느 영화제나 심사위원에 의해서 수상이 결정된다. 그걸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누구에게는 좋은 영화가 다른 사람에게는 안 좋은 영화일 수 있다. 그럼 대신 명확하게 영화제의 색깔이 있다면 다소 갸우뚱할 게 있더라도 시비가 좀 덜 붙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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