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깊숙이 침투한 불법 도박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1.28 18:54
  • 호수 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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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원 규모 넘어선 국내 실태 점검

해외 원정 도박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고질이다. 유형도 매번 크게 다르지 않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재계 인사 등 사회 고위층들이 해외에서 ‘억’ 소리 나는 ‘판’을 벌였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는 자칫 국민들과는 동떨어진 얘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도박은 우리 생활과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말 발표한 ‘도박중독 실태와 예방·치료 정책 현황 및 과제’에 따르면, 국내 20세 이상 10명 중 8명이 사행(射倖) 활동을 한 번 이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도박은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지만, 그 실태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불법 도박 시장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국내 불법 도박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2013년 발표한 ‘제2차 불법 도박 실태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한 해에만 75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2008년 1차 조사 당시의 53조7000억원보다 22조원가량 증가한 셈이다. 이런 증가세를 감안해 불법 도박 규모가 이미 100조원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불법 도박에 맞설 근본적 대응 방안’을 통해 국내 불법 도박 시장 규모가 100조원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15년도 국가 예산인 376조원의 25%를 웃도는 액수다.

국내 불법 도박 시장의 판도가 하우스 등 기존의 ‘오프라인’에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도박’으로 바뀌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 뉴시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불법 도박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는 사실상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부처별로 다른 추정치를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획재정부는 불법 도박 시장 규모를 64조원으로, 국가정보원은 88조원으로 각각 추산하고 있다.

단속 기간 내 적발한 ‘사이버 도박’ 1조원 이상

그렇다면 국내 불법 도박은 주로 어떤 형태로 운영될까. 우선 하우스 등 과거 성업하던 ‘오프라인 시장’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그나마 성업 중인 도박장에서도 판돈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최근에 적발된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1월9일 수원에서 적발된 도박장에서 테이블에 오른 돈은 300만원 남짓이었다. 앞서 지난해 12월 말 경기도 광주에서 적발된 하우스에서도 오간 판돈은 2600만원이 전부였다.

국내 불법 도박 시장의 판도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사이버 도박’으로 넘어가고 있다. 사이버 도박은 판돈의 단위부터가 다르다.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달할 정도다. 사이버 도박 시장은 IT(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경찰이 사이버 도박 척결에 양팔을 걷어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2일부터 올 2월9일까지 100일간을 사이버 도박 집중 단속 기간으로 정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천명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사이버 도박 특별수사팀’을 편성해 대규모 해외 도박 사이트에 대한 기술·전문적인 추적·검거에 나섰다.

이후 경찰은 연이어 불법 사이버 도박 사이트를 적발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올 들어 1월20일에는 전남지방경찰청이 필리핀에 불법 사이버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개설하고 160억원 상당을 입금받은 일당을 붙잡았고, 1월18일에는 전북경찰청이 미국과 홍콩, 일본 등에 서버를 둔 800억원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을 검거했다. 울산경찰청도 1월12일 불법 사이버 경마 도박 사상 최대 금액인 4300억원대의 사설 마권을 유통시킨 이들의 덜미를 잡았다. 지난해 12월18일에는 태국·필리핀에 서버를 둔 1100억원대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적발했고, 같은 해 12월7일에는 판돈 5000억원대의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운영한 조직이 덜미를 잡혔다. 경찰이 이 기간 적발한 사이버 도박의 규모는 이미 1조원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사이버 도박이 기승을 부리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한탕’이 가능하다는 점이 거론된다. 정부가 관리하는 사행산업의 경우 예외 없이 베팅에 한도를 두고 있다. 강원랜드는 최대 베팅 금액을 30만원으로 규제하고 있다. 경마와 경륜, 경정 등의 최대 베팅액도 10만원으로 한정돼 있다. 도박중독자 양산을 막기 위한 장치다. 반면 불법 사이버 도박은 베팅에 제한이 없다.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구조다.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도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스마트폰이나 PC를 이용해 아무런 제약 없이 도박에 참여할 수 있다.

운영자 입장에서도 도박 사이트 개설과 관리에 드는 비용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실제 사이트 개설 비용은 300만원에서 1000만원 수준이고, 서버 관리비용도 한 달에 100만원에서 2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진행해 별다른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사이버 도박 사이트에 고객을 성공적으로 유치할 경우 수천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주무를 수 있다. 사이버 도박장 운영자들이 적발 직전까지도 호화로운 생활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 사이버 도박에 빠진 이들은 자산 탕진과 가정 파탄 등으로 피폐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도 적지 않다. 1월18일 부산에서 30대 남성이 사이버 도박으로 인한 빚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졌다. 앞서 지난해 12월28일에는 사이버 도박으로 수억 원대의 빚을 지고 있던 남성 두 명이 평택의 한 펜션에서 동반 자살한 일도 있었다.

합법 사행산업 규제 완화 필요성도 제기

인터넷을 통해 불법 사이버 도박 사이트에 접속한 화면. ⓒ 시사저널 이종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불법 도박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합법적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법적 사행산업에 대한 제재가 강하다 보니 풍선 효과처럼 불법 도박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독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강력한 단속만 외칠 게 아니라 불법 도박에 발을 들이는 이들을 합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강성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행산업에 대한 과도한 제재가 국민들이 합법적 사행산업보다는 불법 도박을 이용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하면서 “합법 사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불법 도박을 합법 영역으로 유입시킬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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